입력 : 2022.04.19 07:14 | 수정 : 2022.04.19 15:34
[땅집고] 윤석열 정부가 들어서면서 문재인 정부의 부동산 정책적 기반을 제공했던 ‘한국부동산원’에 대한 책임 논란이 커지고 있다. 한국감정원을 모태로 출범한 한국부동산원(이하 부동산원)은 현 정부의 부동산 정책 실패에 직접적인 책임이 있는 기관으로 손꼽힌다. 부동산원은 ‘부동산 통계 조작’ 논란은 물론 부실 공시가격 산정으로 비판받고 있다. 부동산원은 공기업(준시장형 공기업)으로 정부가 기관장도 임명하는 등 사실상 직접 통제하고 있다.
전문가들 사이에선 “부동산원이 수행하고 있는 공시가격 조사와 주택 통계 업무는 이미 민간에서 다 수행하고 있고, 민간에 대한 신뢰도가 더 높다”며 “이런 상황에서 통계까지 조작하는 부동산원이 공기업으로 존재해야 할 이유는 없다”는 주장이 나온다.
문재인 정부 임기 동안 물의를 일으킨 부동산원은 이미 감사원 특감 대상으로 이름을 올렸다. 감사원은 올해 중·하반기 내에 ‘정부 주택 관련 통계’ 특감에 나설 계획이다. 이르면 6월 중 착수한다. 감사원은 이를 올해 주요 감사 계획에 포함했고 최근 대통령직인수위원회에도 보고했다. 정부 공식 주택 관련 통계 작성을 하는 곳이 바로 한국부동산원이다.
■“실수가 아니라 정부 입맛에 맞게 통계 조작”
부동산원에 대한 비판이 제기되는 첫 번째 이유는 ‘통계’ 때문이다. 부동산업계에서는 문재인 정부 집권기 동안 부동산원의 집값 통계가 실제와 차이가 많이 난다는 비판이 지속적으로 제기됐다. 2020년 7월, 김현미 당시 국토교통부 장관은 국회에서 “서울 집값이 (지난 3년간) 11% 올랐다”고 밝혔다. 당시 민간 조사기관에선 50% 안팎으로 집값이 치솟았다는 통계가 쏟아져 나오고 있었다. 당시 김 장관이 근거로 사용했던 통계가 부동산원의 통계였다. 2017년 5월부터 2020년 5월까지 부동산원 월간 매매가격지수 상승률을 근거로 제시한 것이다.
하지만, 같은 기간 민간 조사 기관인 KB국민은행은 ‘중위가격’ 기준으로 서울 아파트값이 53% 올랐다고 발표했다. 무려 5배 정도 차이가 났다. 정부 공식 통계가 엉터리로 밝혀지자, 정치권에선 “한국부동산원이 실수한 것이 아니라, 정부의 입맛에 맞게 고의로 통계를 조작한 것”이라는 주장이 제기됐다.
비판이 쏟아지자, 부동산원은 지난해 7월 집값 조사 표본을 2배 이상 늘렸다. 그리고 한 달 만에 서울 아파트 평균 매매가격이 19.5% 올랐다고 발표하면서 논란이 더 커졌다. 19.5% 상승률은 바로 직전 1~6월 전체 상승폭의 6배에 달하는 수치였기 때문이다. 연립·다세대 평균 매매가격도 표본을 늘리자 전달에 비해 서울이 28.1%, 전국 16%로 급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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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와 청와대, 더불어민주당은 부동산원 통계를 근거로 “집값이 안 올랐는데, 언론과 야당이 사실을 왜곡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정부 통계가 틀렸다는 사실이 드러났지만 통계를 제공한 한국부동산원은 사과 한마디 하지 않았다. 손태락 한국부동산원장은 지난해 10월 국정감사에서 엉터리 집값 통계에 대한 비판이 제기되자 “그간 표본 수가 적었고 통계작성 방식이 민간과 달라 차이가 있었다”고 했다.
■ 보유세 폭탄 야기한 ‘공시가격 인상’ 주범…전문성‧신뢰성 ‘제로’
문재인 정부 출범 전인 2016년과 비교해 보유세 부담이 2.76배(6조9364억원) 늘어난 데에도 한국부동산원이 관여하고 있다. 보유세를 구성하는 재산세와 종합부동산세는 ‘공시가격’을 기준으로 부과되는데 정부는 지난 5년 간 공시가격을 시세 수준으로 올리는 정책을 폈다. 한국부동산원은 정부의 공시가격 조사‧산정업무를 수행하는 기관이다.
업계에서는 한국부동산원이 공시가격 조사‧산정 업무를 수행할 수 있는 전문성과 신뢰도에 대해 근본적인 의문을 제기한다. 부동산원이 조사를 수행한 개별 조사원을 명시하지 않고 있어 조사원이 전문성을 가지고 있는지 알 수 없고 조사방식도 주먹구구식에 가까운데다 별도의 검증방법도 없다는 것.
지난해 3월 부동산원이 발표한 공시가격이 논란이 되자, 당시 원희룡 제주지사는 자체적으로 ‘제주공시가격검증센터’를 통해 다시 조사했다. 제주도는 재검증을 통해 “2021년 공동주택 공시가격’을 분석한 결과 같은 아파트, 같은 동에서 한 라인만 공시가격이 올라가거나 내려가는 사례들을 발견했다”고 밝혔다. 같은 기간 서울 서초구도 부동산 공시가격 검증단을 꾸려 조사한 결과 거래가격보다 공시가격이 더 높은 사례나 장기간 거래가 없어서 낮은 공시가격을 유지하다가 거래가 발생하자 공시가격이 100% 이상 올라버린 사례 등을 다수 찾아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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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시가격 산정 후 별도 검증방법이 없는 것도 문제다. 공시지가의 경우 조사를 수행하는 감정평가사와 이를 검증하는 감정평가사를 다르게 해서 객관성을 확보하는 반면 주택 공시가격은 한국부동산원이 조사와 검증을 모두 맡고 있다. 지난해에는 공동주택 공시가격을 산정하는 과정에서 조사원 한 명당 2만7300가구를 조사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부실조사 논란을 빚기도 했다.
감정평가업계 관계자는 “부동산원은 법적으로 전문 ‘감정평가3방식’(비용접근법·시장접근법·소득접근법)을 사용할 수 없어 시세를 기반으로 한 조사를 통해 공시가격을 산정한다는 입장인데, 관련 데이터와 가격 산출 방식을 공개하지 않고 있다”면서 “인력 부족을 이유로 현장 조사도 안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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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정부에서 부동산원이 각종 구설수에 오르자, 근본적인 수술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부동산학과 교수 A씨는 “한국부동산원 핵심 기능인 집값 통계작성과 공시가격 산정 업무는 각각 민간 기관과 감정평가법인에서 수행하고 있고, 민간에 대한 신뢰도가 더 높다”며 “부동산원을 이대로 놔두면 결국 윤석열 정부도 부동산원을 통해 통계를 입맛에 맞춰 발표하고 오류 투성이 공시가격을 발표하는 일을 반복할 우려가 높다”고 했다. /장귀용 땅집고 기자 jim332@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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