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23.10.24 07:59 | 수정 : 2023.10.24 09:47
[혼돈의 부동산 시장] 한국도 독일 따라갈까?…2차 집값 폭락의 조건
[땅집고] 올 상반기 급반등했던 서울 아파트 가격 상승세가 주춤하면서 ‘거래 절벽’, ‘2차 집값 폭락’ 등 다시 비관론이 고개를 들고 있다.
금리인상 여파로 지난해 22% 폭락했던 서울 아파트 실거래가는 1~8월 12% 급등해 ‘V자’ 반등에 성공하는 듯했다. 미국발 금리 인하에 대한 기대감, 원자재 가격 상승과 분양가 인상, 정부의 경기부양책 및 저리의 특례보금자리론, 주택 공급감소 등이 원인이었다.
그러나 최근 서울 아파트의 미계약이 급증하고 거래감소 등 급반등하던 집값이 주춤하고 있다. 단기간 급등에 따른 가격조정, 미국발 고금리 장기화 가능성, 이스라엘 하마스 전쟁에 따른 세계경제 불안, 경기 침체와 수출 부진 등이 겹치면서 집값 오름세 심리가 다시 차갑게 식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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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130까지 치솟았던 매수심리(KB국민은행 조사)가 작년 말 15.8까지 급락했다가 올 8월에 47까지 회복했다. 그러나 이후 37까지 내렸다. 해외에서도 홍콩, 독일이 상반기 급반등후 급락세를 보이는 ‘2차 집값 폭락’ 현상이 발생하고 있다. 한국도 미국식 반등세가 이어질 것인가, 홍콩이나 독일식 2차 집값 폭락이 발생할 것인가?
■IMF형 대폭등이 어려운 이유
올 상반기 집값이 급반등하면서 IMF외환위기 이후 같은 집값 대폭등 가능성도 일각에서는 제기됐다. 1997년 IMF외환위기로 금리가 치솟고 기업 연쇄부도 충격 등으로 집값이 폭락했다. 당시 국가 부도 위기에 직면하면서 한때 환율이 달러당 2000원대까지 치솟았다.
대출 금리가 20%대까지 오르면서 1998년 서울 아파트 가격은 14.6% 폭락했다. 하지만 폭락세는 1년도 지속되지 않았다. 1999년 서울 아파트 가격이 12.5% 올랐으며 2001년(19.33%)과 2002년(30.79%) ‘집값 대폭등’으로 이어졌다. 당시 집값 대폭등은 1990년대 분당 등 5대 신도시 건설로 인한 집값의 장기침체, 외환위기 조기 극복, 급격한 금리인하. 경제 회복, 대출규제 완화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했다. 집값이 안 오르면 이상한 상황이었다.
자금 상황은 IMF전후 한국 경제나 주택 시장과는 비교할 수가 없을 정도로 다르다. IMF 전후 한국은 경기 침체에서 경기 호황, 고금리에서 저금리, 대출 규제에서 대출 확대로 이어졌다. 현재 한국 상황은 집값이 폭등한 상태에서 저성장의 지속, 가계부채 증가에 따른 대출규제 강화. 고금리의 지속 등 당시와 정반대 상황이다.
■ 금융위기형 W자 폭락이냐?
‘V자 급반등’ 대신 리먼쇼크형 ‘W자 침체’ 가능성도 거론되고 있다. 2008년 리먼 쇼크로 인한 금융위기로 집값이 폭락했다, 실거래가 통계로 서울 아파트는 2008년 10.2% 폭락했다가 2009년 21% 폭등했다.
그러나 2010년 -3.14%, 2011년 -2.99%. 2012년 -7.3% 하락세가 이어졌다. 이 과정에서 강남권 아파트도 고점에 비해 반토막 가까이 떨어진 경우도 있다.
당시 급반등했던 집값이 2차 폭락으로 이어진 이유는 뭘까.
첫째, 미국과 유럽의 경기 침체 영향을 받았다. 한국 집값 폭락의 촉발점은 글로벌 금융 위기(리먼 사태)였지만, 2010년대에도 남유럽 재정위기로 이어지는 등 글로벌 경기침체가 심화됐다.
한국은 리먼쇼크를 어떤 나라보다도 조기에 극복했지만, 수출 비중이 높아 해외 경기 침체 여파를 피할 수는 없었다. 2004~2007년 매년 4~6% 성장률을 이어가다가 2008년 3%, 2009년 0.8%로 급락했다, 2010년 6.8%로 회복됐지만 대외 변수 등으로 2011년 이후 2~3% 저성장이 굳어졌다. 경기 침체가 지속되면 집값 상승 기대감이 줄어들 수 밖에 없다.
둘째, 당시 미분양 아파트가 16만 가구를 넘어설 정도로 공급과잉 상태였다. 미분양 영향으로 건설사와 저축은행 연쇄부도가 이어지면서 투자 심리가 싸늘하게 식었다.
셋째, 이명박 대통령의 반값 아파트 정책이 효과를 발휘했다. 정부는 서울 강남권에 분양가가 저렴한 토지임대부 주택과 보금자리주택을 속도감 있게 대거 공급했다. 분양가가 저렴한 공공주택이 쏟아지면서 분양가가 비싼 민간 아파트들이 외면받으면서 가격 하락 기대감이 커졌다.
현재 상황은 리먼쇼크 전후와 유사한 측면도 있고 정반대인 측면도 있다. 해외 경기 침체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지만, 공급 측면에서는 상당히 다르다.
■주택 부족 폭등론의 허와 실
2010년도에는 공급 과잉 우려가 컸지만 지금은 공급 부족에 의한 집값 폭등론이 나온다. 인건비, 자재비 상승으로 인한 분양가 인상도 기존 주택 집값을 자극할 수 있다.
한국의 주택공급량(인허가 기준)은 연간 52만가구이다. 2015년과 2016년에는 각각 76만 가구와 72만 가구까지 급증했다. 2020년 45만가구까지 줄었다가 2021년 54만가구로 늘어났지만, 2022년 52만가구로 감소했다.
올해 상반기 인허가 물량은 전년 대비 27%, 착공 물량은 50% 각가 감소했다. 공급 과잉이 아니라 공급 부족이 우려된다. 리먼 쇼크 때와 달리, 미분양도 감소 추세이다. 올 2월 7만5000가구까지 늘었던 미분양 주택이 8월에 6만2000가구까지 감소했다.
공급이 부족하면 주택가격은 무조건 상승하는 것일까. 그렇지 않다. 주택은 수요와 공급에 의해 결정되는데, 공급보다 더 빠른 속도로 수요가 줄면 공급 부족이 아니라 공급 과잉이 된다. 보통 경제 위기가 발생하면 집값이 폭락하는데, 주택 공급이 과잉된 것이 아니라 경기 침체에 따른 불안 심리로 주택 수요가 급격하게 위축되기 때문이다.
■경기 불안이 최대 변수…한국, 독일 따라가나?
최근 집값 상승세가 주춤하는 이유는 경기 침체 가능성 탓이다. 미국발 고금리 지속 가능성이 높아지고, 이스라엘 하마스 전쟁, 미·중 갈등 심화 등 경제불안 요인이 속출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민자 유입 등으로 임대료가 급등하고 주택 공급 부족에 시달리는 독일의 경우, 상반기 집값이 상승했다가 급락하는 제2차 집값 폭락에 직면했다. 독일 집값이 다시 급락세로 돌아선 것은 경기 침체 탓이다. 독일은 올해 2분기 국내총생산(GDP) 증가율이 전 분기 대비 0%에 그치면서 ‘유럽의 병자(病者)’라는 오명을 얻고 있다. 독일은 제조업 비중이 높고 자동차 산업에 수출이 편중돼 있고 중국 의존도가 높다. 미·중 간 패권 경쟁으로 보호무역 장벽이 높아지면서 독일의 경제 구조는 강점이 약점으로 바뀌었다.
독일처럼 제조업 중심 국가인 한국도 반도체 비중이 지나치게 높고 중국 수출의존도가 높다. 한국 경제 상황은 낙관보다 비관에 가까워지고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지난 6월 우리나라의 올해와 내년 잠재성장률을 각각 1.9%, 1.7%로 추정했다. 2024년에는 결국 우리나라 잠재성장률(1.7%)이 G7 중 하나인 미국(1.9%)보다도 낮아지는 셈이다. OECD의 2001년 이후 24년간 추정치 통계에서 한국의 잠재성장률이 G7 국가를 밑도는 경우는 처음이다.
한국 경제 성장의 동력인 수출이 무엇보다도 불투명하다. 올 상반기 수출이 12.4% 줄며, 한국은 세계 10대 수출국 중 유일하게 두 자릿수 수출 감소를 보였다. 향후 집값은 반도체 등 수출이 결정적 변수로 작용할 수 있다. /차학봉 땅집고 기자 hbcha@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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