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23.08.14 14:25 | 수정 : 2023.08.14 16:09
[땅집고] “한국토지공사(L)와 대한주택공사(H)를 LH(한국토지주택공사)로 합병했지만, 실상은 무늬만 통합이었습니다. 그간 보직을 L과 H로 나눠, ‘이 자리는 네 자리 저 자리는 내 자리’ 해놓은 것입니다. 검단 사고 현장 당시에도 설계도면을 검토할 수 있는 인력이 없어서 10명을 증원했습니다.”
이한준 LH 사장이 11일 국민 앞에 고개를 숙이면서 속칭 'LH 사태'로 불리는 철근 누락 사태가 발생한 이유로 '내부 문제'를 꼽았다. 2009년 2개 정부 주요 공공기관이 합병하면서 LH가 출범했지만, 무늬만 통합했을 뿐 실상은 그렇지 않았다는 것. 그는 검단 아파트 주차장 붕괴 사고를 비롯해, 최근 논란이 된 ‘부실시공’ 역시 이러한 구조적 문제에서 기인했다고 지적했다.
이한준 LH 사장이 11일 국민 앞에 고개를 숙이면서 속칭 'LH 사태'로 불리는 철근 누락 사태가 발생한 이유로 '내부 문제'를 꼽았다. 2009년 2개 정부 주요 공공기관이 합병하면서 LH가 출범했지만, 무늬만 통합했을 뿐 실상은 그렇지 않았다는 것. 그는 검단 아파트 주차장 붕괴 사고를 비롯해, 최근 논란이 된 ‘부실시공’ 역시 이러한 구조적 문제에서 기인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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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업계에선 LH가 덩치만 키웠을 뿐, 내실 없는 조직으로 전락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LH는 통합으로 인해 토지 수용부터 아파트 분양까지 전 과정을 도맡게 됐다. 전문가들은 LH가 통합으로 인해 본연의 기능을 상실했고, 결과적으로 아파트 붕괴 사고라는 초유의 사태를 맞았다고 분석했다.

■ 부채 줄이기 급급했던 LH
LH는 2009년 10월 국내 주택·택지 조성 사업의 양대 산맥이던 한국토지공사(한토공)와 대한주택공사(주공)가 통합해 출범했다. 한국토지공사는 토지개발을, 대한주택공사는 주택 공급을 각각 맡았다. LH라는 이름은 ‘랜드(Land)‘와 ‘하우징(Housing)’ 이니셜 첫 자다.
정부가 두 공기업을 합병한 데에는 여러 이유가 있지만, 가장 큰 목적은 ‘부채율 감소’였다. 당시는 대대적인 공기업 혁신이 요구되던 때다. 바로 민간기업 부채비율(110%)에 비해 공기업 부채율(140%)이 훨씬 높았기 때문. 한토공와 주공은 그 중에서도 압도적인 부채율을 기록했다. 공정거래위원회에 따르면 합병 직전, 한국토지공사와 대학주택공사 부채율은 모두 400%를 넘었다. 부채 총액도 상당했다. LH 출범 당시 부채 총액은 약 100조원이 넘었다.
정부의 바램대로 LH는 출범 직후 ‘돈 먹는 하마’ 탈출에 주력했다. 당시 이지송 LH 초대 사장은 강력한 구조조정안을 펼치고, 전국의 모든 사업을 재조정하는 등 강도 높은 개혁 드라이브를 걸었다. 이러한 노력은 실제로 LH 경영 정상화를 이끌었다. LH는 출범 3년차인 2012년 2009년 말보다 부채비율이 70%포인트 줄었다고 밝혔다.
현재도 LH의 최대 목표는 ‘부채 감축’이다. LH는 2026년까지 부채 비율을207% 정도로 내리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LH는 부채를 줄이기 위해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오리사옥을 매각한다고 밝혔다. 이는 LH의 혁신 추진 계획안 중 하나다.

■ 공공에 집중한다더니, 돈 되는 건 다하네!
문제는 LH가 통합으로 인해 부채를 줄였지만, 여러 부작용이 속출하고 있다는 점이다. 현재 LH는 신도시 조성을 위한 토지 수용부터 최종 목적인 공공주택 사업까지 하고 있다. 이는 이권이 개입할 여지가 많아졌다는 의미다.
여러 문제점이 예상됐더 만큼, LH는 출범과 동시에 권한을 최소화하기로 했다. 당시 LH는 보금자리주택 공급에 역량을 집중한다며 민간과 경쟁관계에 있는 중대형 분양주택, PF사업 규모를 줄였다. 택지개발과 신도시개발, 재건축ㆍ재개발 등의 기능도 축소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취지와 달리 LH는 출범 직후부터 업무가 더욱 많아졌다. 공공재개발이 대표적. 정부는 합병 1년도 안 된 2010년 3월 LH가 재개발·재건축을 추진할 수 있도록 관련 법을 개정했다. 민간 영역으로 여겨지던 분야마저도, 공공기관의 진출을 허용하면서 사실상 일을 늘려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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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 두 기관 인력 융합은 제자리 걸음이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업계에 정통한 한 관계자는 “LH 출범 당시 규모에선 토공이, 인력 수에는 주공이 더 앞섰는데, 현재도 이로 인한 내부 경쟁이 비일비재한 것으로 안다”며 “이런 분위기가 지속되는 한, 내부적 합의가 원활히 되진 않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알리오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기준 LH 임직원 수는 1만935명이다. LH ‘공룡 조직’이라는 수식어가 붙는 이유이자, 융합이 절대적으로 중요한 이유다. 한 개발업계 관계자는 “한 배를 탄 5명 중 3명이 다른 방향으로 노를 젓는 것과, 1만명 중 6000명이 노를 젓는 건 천지차이”라고 했다.
■ 토지 개발ㆍ분양까지 모조리 ‘수익성’ 강조…전문성 뒷전된 이유
이에 업계에선 LH가 지나치게 많은 권한을 가지면서 기본 방향성인 공공성과 임직원 전문성까지 모두 상실하고 있다는 의견이 나온다.
두성규 목민경제정책연구소 대표는 “LH는 합병으로 인해 신도시 택지 개발부터 아파트 공급까지 전 과정에 대한 주체가 됐다”며 “문제는 LH가 토지 수용부터, 시행 및 개발, 분양까지 전 사업 발주자 위치에 놓이면서 사업 곳곳에 이권이 개입할 여지가 많아졌다”고 했다.
이어 “이런 상황에서 LH는 전 사업 분야에서 수익을 내야 ‘우수하다’는 평가를 받는다”며 “전문성을 갖춘 인력보다 높은 수익을 내는 인력이 인정받을 수 밖에 없다”고 했다.
권대중 명지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LH가 인력이 매우 많고, 다양한 권한을 가졌지만 마땅히 이를 감시할 기관이 없는 것도 문제”라며 “LH가 공공성 강화라는 본 기능에 충실할 수 있고, 우수한 임직원이 전관 업체로 가지 않도록 하는 환경이 필요하다”고 했다. /김서경 땅집고 기자 westseoul@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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