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에서도 철근 누락 사건 있었다…'살인건물' 재조명

[땅집고] 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발주한 무량판 구조 아파트 6곳 중 한 곳에서 철근을 누락한 것으로 나타나면서 해외에서 ‘건설강국’으로 불렸던 K건설의 민낯이 드러났다.

일본의 과거 사례를 참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지진이 많은 일본에서 내진 설계를 위조한 아파트와 호텔 건축물이 대거 건축검사를 통과한 것으로 드러나 ‘안전강국’ 이미지가 바닥으로 추락한 적이 있다. 일본은 이 사건 이후 건축 관련 법을 다시 재정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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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일본 국토교통성(국교성)은 지바현 이치가와시에 있는 1급 건축사 자격을 가진 아네하(아네하건축사무소) 씨가 건축물의 내진강도를 위조해 구조계산서를 만들었다고 밝혔다. 처음 밝혀진 부실 건물은 수도권 아파트 20개 동과 호텔 1곳 등 22개였다. 아네하 씨는 당시 기준과 달리 건축물이 진도5에도 견딜 수 없도록 부실하게 건축물 구조계산서를 조작했다. 21개 동 중 완성하지 않은 아파트 한 동은 완전히 해체하고, 호텔 한 곳은 영업을 완전히 중단했다.

당시 설계를 맡은 아네하 건축설계사무소는 싸게 많이 짓기 위해 규격보다 적은 철골ㆍ철근을 쓰거나 기둥 두께를 가늘게 하는 소위 ‘철근 아끼기’에 나섰다. 이 회사는 불법적인 방법으로 서류를 위조한 혐의를 받았다. 이미 완공했거나 지어지고 있는 건물의 내진강도는 최악의 경우 기준치의 26%에 밖에 미치지 않는 수준이다. 중급 정도의 지진에도 무너질 수 있어 ‘살인 건물’이라는 멸칭이 붙었다.

아네하 건축설계사무소는 지난 10년간 일본의 22개 기초.광역 지자체에서 194건의 건축 설계에 관여한 유수의 업체였다. 당시 부실시공 건축물로 드러난 아파트 1개 동은 일본주택건설산업협회가 수여한 ‘우수사업상’을 받은 단지였다. 이처럼 부실 건물 위조서류가 지자체 등 시공ㆍ준공검사를 무사히 통과한 사건은 일본 사회에 큰 충격을 줬다.

사건은 일본 열도 전역으로 퍼졌다. 2006년 일본 국토교통성이 ‘내진 강도 위장 사건’과 관련해 아파트 약 400개 동을 조사한 결과, 이미 조작 위험이 있는 221개 동 중 15개 동은 ‘내진 강도 부족의 위험이 있다’고 판정했다. 내진 강도가 기준치의 절반 수준인 건축물도 있었다. 특히 당시 조사에서 아네하 건축설계사무소 뿐 아니라 다른 건축설계사무소들도 원가 절감을 위해 내진 설계 관련 구조계산서를 위조한 것이 사실이 속속 드러났다.

아네하 씨는 2006년 3월 자살했다. 시공 또는 착공 중이었던 13건 가운데 5건이 해체됐고, 상당수 건물은 10여 년이 지난 현재까지도 소송이 진행 중이다.

내진 강도 위장 사건의 시발점은 부동산 경기 침체다. 당시 일본 건설사들은 분양가를 낮추기 위해 너도 나도 공사비 원가 절감에 나섰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일부 설계회사들이 사업수주를 위해 철근 양을 절반 이하로 줄여서 설계한 것이다.

사건을 계기로 일본정부는 건축기준법, 건축사법, 건설업법에 대한 전체적인 개선을 위해 ‘구조계산적정성판정제도’를 도입했다. 기술사ㆍ건축사의 경력기간을 7년으로 늘려 취득 자격기준을 강화하고, 구조설계1급 건축사와 설비설계1급 건축사 자격을 신설해 분야별 전문성을 강화했다./박기람 땅집고 기자 pkram@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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