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포인트레슨] 암도 이겨낸 ‘경매 고수’ 이선미씨
이선미(44)씨의 삶은 ‘파란만장’이라는 수식어가 어색하지 않다. 집안 사정 때문에 공장을 다니며 고등학교와 대학교를 야간으로 졸업했다. 억척스럽게 사회 생활을 했지만 돌아온 것은 이혼과 암 선고였다. 그는 “정말 열심히 살았는데 삶은 별로 좋아지는 게 없더라”고 했다.
한때 통장 잔고가 20만원이 안 되던 이씨는 지금은 아파트·빌라·상가 등 시세로 30억원이 넘는 부동산을 보유한 ‘경매 고수’가 됐다. “경매를 통해 평생 먹고 살 수 있는 방법을 알게 됐다”는 그를 땅집GO(realty.chosun.com)가 만났다.
■“암환자란 사실 잊을 만큼 경매에 빠져”
이씨가 부동산 경매와 인연을 맺은 계기는 2009년 봄 지방 출장길에서였다. 우연히 경매 관련 책을 읽고, 독학으로 공부를 시작했다. 공부한 지 6개월도 안된 그해 8월 대전의 한 빌라를 6030만원에 덜컥 낙찰받았다. 무모하게 저질렀는데 낙찰받고서 통장 잔고가 단돈 20만원이었다. 이후 몇 건을 더 낙찰받아 수익도 조금 냈지만, 바쁜 회사 업무에 자연스럽게 손을 놓게 됐다. 그러다가 병원에서 다시 경매에 대한 의욕이 살아났다고 한다.
-병원이라니요.
“2012년 암 진단을 받았다. 설명하기 복잡한데 간암의 일종이다. 그해 12월 수술을 했고 1년쯤 항암치료를 했다. 입원 치료 중 병원 책꽂이에서 다시 부동산 경매 책을 보게 됐다. 곧바로 경매 관련 책만 20권 이상 주문해서 읽었는데 ‘해볼 만 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아픈 게 문제가 아니라 아들과 딸까지 세 식구 밥벌이를 하는 게 급했다. 부동산 경매에 올인하기 위해 10년 다니던 의류 회사를 그만뒀다. 2013년 5월엔 머리에 두건 쓰고 경매 강의 들으러 다녔다.”
-두건은 항암치료 때문인가.
“그렇다. 같이 강의 듣던 사람들은 내가 패션 아이템으로 두건과 모자를 쓰는 줄 알았다더라. 수업에 들은 거 써먹어 보려고, 혼자 법원 가서 입찰도 하고 그랬다. 입찰에서 떨어져도 내가 암 환자라는 사실을 잊을 만큼 경매가 재밌었다.”
-종잣돈은 어떻게 마련했나.
“2006년 이혼하고 남은 건 인천의 35평짜리 아파트 1채였다. 두 아이를 위해 끝까지 손대지 않으려 했지만, 방법이 없었다. 아파트 팔고, 인천의 작은 빌라로 이사했다. 보증금 2000만원에 월세 50만원짜리였는데, 창문을 열어 손을 뻗으면 앞 건물에 닿을 정도였다. 이사하면서 종잣돈 1억원을 만들었지만 아이들에게 정말 미안했다.”
본격적으로 경매에 뛰어든 이씨는 수도권에서 빌라·아파트 등을 집중적으로 낙찰받았다. 낙찰받은 집을 수리해 되파는 경우가 많았는데, 이에 대해 그는 “부동산 상품의 가치를 높여 그 차익을 챙긴 방식”이라고 했다. 2014년 5월엔 부동산 경매 노하우와 자신의 투자 경험을 담은 ‘싱글맘 부동산 경매로 홀로서기’라는 책도 냈다.
-현재 보유한 부동산은.
“아파트, 빌라, 상가 등 전부 합치면 16채 정도다. 시세로 따지면 30억원 조금 넘을 것 같다. 올 들어 토지도 몇 개 낙찰받았다. 고정적으로 들어오는 수입은 월 500만~600만원 정도인데, 계속 투자하면서 거래가 생기면 차익을 내는 식이다.”
■“빌라 선호도 낮지만 女心 잡으면 성공”
이씨의 투자 대상은 주로 아파트와 빌라다. 그는 “사실 투자 대비 수익률은 빌라가 더 좋다”면서 “아파트는 대출을 받아도 내 돈이 6000만~7000만원은 들어갈 때가 많은데, 빌라는 아파트 절반 정도 투자금만 있어도 된다”고 말했다.
그런데 빌라는 아파트보다 선호도가 낮아서 거래가 잘 안 되는 게 약점으로 꼽힌다.
-빌라는 선호도가 떨어지지 않나.
“나는 빌라의 약점을 역이용했다. 빌라를 찾는 사람들은 아파트보다 기대치가 낮은데, 그 기대치만 넘어서면 금방 새 주인을 찾는다. 구매자 입맛에 맞으면 빌라는 저렴한 가격이 오히려 강점이 된다. 나는 주방을 카페처럼 만든다든지, 여자들이 좋아할 만한 인테리어 포인트에 신경을 썼다. 주거용 부동산 상품의 최종 구매 결정은 주로 여자들이 하는 점을 공략했다.”
-빌라는 환금성도 떨어지지 않나.
“빌라 낙찰받으면 살던 사람 내보내고, 내가 인테리어 싹 끝내기 전에는 절대 중개업소에 안 보여준다. 어수선한 상태의 집을 보여줘 봤자 부정적인 선입견만 생긴다. 인테리어 공사를 마치면, 중개업소에 우리 빌라를 팔아달라고 어필하는 방법이 따로 있다.”
-어떤 방법인가.
“집 사진을 찍어서 A4 용지 크기로 전단을 만들고, 책받침처럼 빳빳하게 코팅을 했다. 이런 전단을 100장 정도 만들어서 금요일 밤에 딸과 함께 동네 일대를 돌아다니며 부동산 중개업소마다 밀어 넣었다. 코팅된 전단이 특이해서인지, 아니면 정성이 갸륵하다고 생각해서인지 100장 돌리면 10군데 정도에서는 전화가 오더라. 그래서 매매·임대가 잘 되는 편이다.”
이씨는 인터넷 카페(행복재테크)를 통해 경매 관련 강의도 한다. 그는 “제가 초급반 강사인데 수강신청을 받으면 1~2분 만에 마감될 만큼 꽤 인기가 있다”면서 “지방은 물론이고 중국, 미국에서도 강의 들으러 오는 분이 있었다”고 했다.
-부동산 경매 매력은.
“최근 2~3년 사이에 부동산 경매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 폭발적으로 늘었다. 저금리에 은행에 못 가는 돈이 부동산 시장으로 흘러들어오는데, 특히 30~40대들이 노후 준비로 경매를 선택하는 것 같다. 과거 회사생활 할 때는 내가 노력한 만큼 제대로 보상을 받는지 의문이 들었다. 암에 걸린 것도 이런 스트레스가 원인이지 않았을까. 부동산 투자에도 분명히 스트레스가 있지만, 노력의 5~6배는 보상으로 돌아오는 것 같다.”
-건강은 이제 괜찮나.
“아직 완치 판정을 받은 것은 아니지만, 거의 정상이다. 경제적 여유가 생긴 것, 아이들이 하고 싶어하는 것을 마음껏 지원할 수 있는 게 좋다. 난 경매를 통해 평생 먹고 살 수 있는 방법을 알게 됐다고 확신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