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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동산, 活路를 열자] [4] 新도시 지정 남발… 아파트 부지 36곳(건설사 계약 해지) 허허벌판

뉴스 홍원상 기자
입력 2013.09.30 03:00

[수도권 주택공급 정책 실패]

수요 예측 제대로 못하고 수도권 외곽·중대형 위주 공급
2기신도시 상당수 미분양 몸살… 파주 운정신도시 아파트 부지
토지대금 5년無이자 적용해도 3곳 모두 청약률 '제로'

지난 26~27일 경기도 파주 운정신도시에서 한국토지주택공사(LH)는 건설업체를 대상으로 아파트 부지 3곳을 청약받았다. 최근 침체된 경기를 감안해 해당 부지에 중소형 아파트를 짓도록 했고 토지 대금도 5년 무이자를 적용했다. 결과는 참담했다. 청약률 '제로(0)'. 이곳에 아파트를 짓겠다는 건설사가 한 곳도 없었다.

석 달 전 상황도 비슷했다. 같은 지역에서 상가 등이 들어서는 상업용지 24필지를 입찰에 부쳤는데 한 곳도 팔리지 않았다.

부동산 호황기에 무더기로 지정됐던 수도권 2기 신도시가 공급과잉과 경기 침체 여파로 미분양 몸살을 앓고 있다. 신도시 건설이 서민 주거 편의보다 밀어내기식 공급에 초점이 맞춰지면서 판교·위례 등 입지가 좋은 일부 신도시를 제외하고 대부분 소비자에게 외면받고 있다. 이미 입주를 마친 아파트의 30%가량이 주인을 찾지 못했고 일부 지역은 주민 반대로 사업이 백지화됐다.

경기 파주 운정신도시 청암초등학교 인근 아파트 건설현장 주변을 주민이 걸어가고 있다. 아파트 준공이 늦어지면서 상가 등 기반시설의 건설도 늦어져 먼저 입주한 주민들이 큰 불편을 겪고 있다. /주완중 기자

2기 신도시는 2003년 노무현 정부가 서울의 집값 급등을 억제하기 위해 경기도 김포·화성·파주·판교·평택 등지에 대규모 주택 공급 계획을 발표하면서 시작됐다. 2006년 판교 분양 당시만 해도 2기 신도시의 미래는 장밋빛 일색이었다. 판교의 첫 민간 아파트 청약 경쟁률이 최고 868대1을 기록하면서 '로또 아파트'라는 말도 나왔다.

하지만 2기 신도시는 애물단지로 전락했다. 인천 검단2지구를 비롯해 경기 오산·충남 아산 등은 아예 취소되거나 사업이 축소됐다. 건설사들이 사들인 아파트 부지 역시 계약이 해지되는 바람에 허허벌판으로 남은 땅만 36곳에 달한다.

①수요 없는 지역에 공급 남발

2기 신도시가 경쟁력을 잃게 된 것은 정부가 주택 수요자 니즈(needs)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채 신도시 지정을 남발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서울 강남권과 버블세븐 지역을 대체하려고 주택 공급에만 급급한 나머지 정확한 입지 분석이나 수요예측 없이 개발이 쉬운 수도권 외곽 지역만 골라 지으면서 소비자에게 외면받았다는 지적이다.

1기 신도시(29만가구)의 2배 이상(59만가구)인 물량을 단기간에 밀어내기식으로 공급한 것이 집값 급락과 미분양 문제를 키웠다는 평가도 나온다. 두성규 건설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엎친 데 덮친 격으로 2008년부터 수도권에 보금자리주택(32만가구)이 나오면서 상황이 더 악화됐다"고 말했다.

수도권 2기 신도시 사업추진 현황 그래픽

②시장 변화 외면… 중대형만 치중

서울 올림픽대로에서 인천 쪽으로 가다 고층 아파트 '숲'이 우거진 김포 한강신도시에 들어서면 도로 곳곳에 '4000만원으로 바로 입주' '최대 2억원 할인'이라고 적힌 현수막이 어지럽게 걸려 있다. 이미 완공된 아파트 중에 3000가구 이상이 미분양으로 남아 있자 건설사들이 극약처방을 내놓은 것. 이 할인 분양 아파트들의 공통점은 중대형 주택(전용 85㎡ 초과)이라는 것이다.

중대형 아파트는 2기 신도시를 천덕꾸러기로 전락시킨 또 다른 요인이다. 부동산 경기가 호황일 때 수요자들이 집값이 더 많이 오르는 중대형을 선호하자 정부와 건설사는 중대형 공급에 경쟁적으로 나섰다. 하지만 곧바로 불어닥친 글로벌 금융 위기로 부동산 거품이 꺼지고 소비자들의 시선이 소형 주택으로 돌아섰지만, 정부 정책은 이런 추세를 따라가지 못했다는 지적이다.

③사업 중단·땅값 상승만 부추겨

2기 신도시 개발이 2000년대 중반 동시다발로 추진되고 해당 부지를 서둘러 사들이는 바람에 땅값 급등과 분양가 상승을 불러왔다. 2002년만 해도 ㎡당 보상비는 10만원 미만이었지만 2007년에는 ㎡당 30만원을 넘어선 것. 서울에서 먼 곳에 조성되면서 도로·전철 등 교통 시설 비용도 전체 사업비(98조원)의 3분의 1(30조원)을 차지했다. 이 비용은 아파트 건설비에 고스란히 반영되고, 결국 분양가 상승으로 이어지면서 미분양만 쌓였고 일부 지역은 사업이 전면 취소됐다. 2016년 말까지 아파트 2만1200가구를 짓기로 한 검단2지구는 지난 3월 지역 주민들의 반대로 사업이 백지화됐다. 아산 탕정2지구와 오산 세교3지구도 지구 지정이 해제됐다.

주거복지연대 장성수 전문위원은 "정부가 분양가상한제와 신도시 건설을 통해 신규 주택 공급을 인위적으로 조정하면서 민간 건설사들이 자율적으로 사업을 벌이지 못하고 시장도 정상 작동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건국대 조주현 교수는 "택지 공급 시기를 지역별로 조정하는 등 순차개발로 물량을 분산시켜야 한다"면서 "기존 도심에도 재개발·재건축, 노후 주택 개·보수 등을 통해 주택 공급을 효율적으로 늘려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2기 신도시
경기 분당·일산 등 1기 신도시 개발이 끝나고 나서 다시 집값이 급등하자 노무현 정부가 2003년부터 경기 판교·동탄·광교·김포·파주 등 수도권 일대에 새로 건설한 신도시를 말한다. 1기 신도시는 대체로 서울 도심에서 반경 20㎞ 이내에 있고, 2기 신도시는 대부분 30㎞ 이상 떨어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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