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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동산, 活路를 열자] [3] 집값 상승기 대출방식 고수한 은행, 리스크는 대출자에 떠넘겨

뉴스 이석우 기자
입력 2013.09.25 03:01

[후진적 주택금융이 문제]

주택대출, 단기·변동금리 위주… 집값 오를 땐 쉽게 갚았지만 시장 침체기엔 상환 부담 커져
정부·금융기관·개인이 집값 변동 리스크 공유하는 장기 모기지상품 개발할 필요

국가별 일시상환 주택 담보대출 비중 그래프

"정부에서 지원하는 금리 1%대 모기지 대출이 나왔다고 해서 은행에 알아봤더니 우리 집은 돈을 너무 많이 벌어서 해당 사항이 없다고 하데요. 맞벌이로 겨우 먹고사는 우리 집이 난데없이 '부자' 축에 끼게 됐어요."

맞벌이를 하는 김모(49)씨는 서울 광진구의 2억7000만원짜리 전세 아파트(84㎡)에 산다. 중소기업 부장인 김씨는 연봉이 4900만원, 회계사무소에서 서무로 일하는 부인은 연봉 2500만원으로 부부 합산 연소득이 7400만원가량이다.

김씨는 최근 집주인으로부터 전세금 6000만원을 올려 달라는 통보를 받고 이참에 대출을 받아 집을 사기로 했다. 그러나 정부에서 내놓은 손익·수익 공유형 모기지 상품은 부부 합산 연소득 7000만원 이하라는 제한이 있어 김씨는 지원 자격조차 없다. 김씨는 "나이 50이 다 돼 맞벌이로 7000만원 버는 게 부자라고 할 수 있느냐"고 푸념했다.

◇주택 구매 여력 있는 중산층은 공유형 모기지 신청 자격 없어

정부가 8·28 전·월세 대책으로 도입한 연금리 1~2%대 수준의 저금리 모기지 상품은 다음 달 은행을 통해 판매된다. 국민주택기금을 활용해 향후 20년 동안 집값이 오르거나 내렸을 때 수익과 손익을 기금과 공유하는 방식으로 금리를 1%대까지 낮춘 것이 특징이다.

그러나 이 대출 상품은 가구 연소득 7000만원 이하라는 제한이 있어 실제 주택 구매 여력이 있는 중산층 가구엔 '그림의 떡'이나 마찬가지다. 정부는 소득 7000만원 이상인 가구는 신용도도 높고, 연체율도 낮아 민간 금융기관이 수익·손익 공유형 상품을 만들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그러나 금융권은 절대로 불가능하다는 입장이다.

지난 22일 서울 종로구 청운동 주민센터 앞에서 세입자협회와 금융정의연대 회원들이 정부의 전세 대출 확대 방안을 비판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 /뉴시스

시중 은행의 상품 개발 담당 부행장은 "주택 시장 전망이 불확실하고, 수익성 악화도 발등의 불인데 은행이 수익·손익 공유형 상품을 만드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정부에선 우리 금융기관의 이 같은 태도에 대해 불만을 쏟아낸다. 국토부는 전·월세 대책을 발표하면서 "집값이 하락해도 대출을 해준 금융기관은 사실상 리스크를 부담하지 않고, 모든 리스크는 소비자에게 떠넘기는 대출 관행이 있다"고 지적했다.

◇한국 주택금융은 투기성 자금을 공급하는 구조

우리나라 금융기관의 주택금융 상품의 구조는 집을 사기만 하면 가격이 오르던 시절의 특성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지난해 말 기준으로 은행권의 주택담보 대출 잔액은 314조원. 이 중 10년 이내에 대출을 갚아야 하는 단기 대출이 129조2000억원으로 41.4%에 달한다. 3년 이내에 갚아야 하는 대출금도 87조2000억원으로 27.7%에 달한다. 대출금 중 일시상환대출의 비중도 33.7%나 된다. 미국이 9.7%, EU 국가들이 7.5%인 것과 비교하면 3~4배 이상 높다.

집값이 오르던 시기에는 다소 무리하게 대출을 받더라도 집값이 올랐기 때문에 3~4년 뒤에 집을 팔아 대출을 갚는 것이 가능했다. 하지만 2000년대 후반부터는 주택 시장 침체로 더 이상 이런 구조는 기대하기 힘들다. 명지대 부동산학과 이상영 교수는 "우리나라의 주택금융은 과거 집값 상승기에 '투기성' 자금을 공급하는 후진적 대출 방식을 지금도 유지하고 있어 단기·일시상환대출 비중이 높다"고 말했다.

그러나 외국은 다르다. 미국의 은행은 상환 기간이 20~30년씩 되는 장기 주택담보 대출을 주로 판매한다. 프레디맥(FreddieMac), 연방주택대출은행 등 주택금융 전문 기관은 은행에서 이 채권을 사들여 채권 형태로 만들어 금융시장에 판매한다.

또 영국에선 정부와 금융기관, 개인이 주택 구입에 따른 손해와 이익을 공유하는 대출 상품이 인기를 끌고 있다. 영국이 올해 도입한 손익 공유형 모기지(Home Equity Loan) 프로그램은 정부가 주택 구입비의 20% 한도에서 저리의 자금을 지원하고, 나머지는 주택 구입자가 대출과 자기자본으로 충당해 집을 구입하는 구조다. 이 대출의 경우 생애 최초 주택 구입자는 소득에 관계없이 대출 신청을 할 수 있다.

◇정부·금융기관·개인이 손익 공유하는 금융상품 필요

전문가들은 주택 시장을 정상화하기 위해서는 우리나라에도 정부와 금융기관, 개인이 수익과 손익을 공유하는 장기 모기지 상품을 개발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현대경제연구원 박덕배 박사는 "정부가 국민주택기금 자금을 20~30%가량 지원하면 정부·은행·개인이 함께 손익을 공유하는 금융상품 개발이 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

금융기관이 전·월세 시장 안정을 위해 임대 사업자에 대한 금융 지원을 강화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주택산업연구원 권주안 선임연구위원은 "금융기관이 임대 사업자에게 대출해주고 부동산에 대한 지분을 공유해 손익을 나누는 적극적인 대출이 필요하다"며 "이를 위해서는 금융기관이 부동산 시장 분석 능력을 키워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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