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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넘치는 빈집 실태는] "1억8000만원 깎아줘도 안 팔려" 미분양이 운다

뉴스 전재호 조선경제i 기자
입력 2010.04.24 02:53 수정 2010.04.24 08:04

건설업계·지방경제 시름…
중도금 무이자·할인 분양 등 파격적인 혜택도 소용없어… "한 달에 한 채 겨우 팔아"
누가 미분양을 만들었나…
지난 정부때 부동산 과열 너도나도 여기저기 분양
건설사 “정책, 몇개월마다 바꿔 수요예측이 아예 불가능 했다”
결국엔 세금인가?…
건설사들의 경영실패를 국민 세금 투입해서 해결… 건설업계 구조조정 병행해야

경북 포항시 북구에 있는 A건설사의 모델하우스. 이곳은 지난 2월 초부터 손님이 뚝 끊겨 현재는 사실상 개점 휴업상태다. 모델하우스 직원 조모(38)씨는 "미분양 주택에 대한 양도세 감면 대책이 종료(2월 11일)되면서 찾아오는 손님도 없고, 문의 전화도 하루 두 건이면 많은 편"이라고 말했다. 직원들은 광고 전단을 들고 현장 영업에 나서고 있지만 2월 이후에는 한 달에 두 채 이상 팔아 본 적이 없다.

현재 대구·포항·천안 등지에선 주택경기가 극도로 얼어붙어 미분양 주택이 남아 있지만, 모델하우스 문을 닫아 버리는 곳도 있다. 어차피 모델하우스를 열어놔 봐야 유지비만 들어갈 뿐 주택은 팔리지 않기 때문이다.

◆넘쳐나는 미분양… 건설업체·지방경제 위기로

전국에서 넘쳐나는 미분양 아파트가 건설업체들을 고사 위기로 몰아가고 있다. 수요가 꾸준한 중소형아파트는 그나마 덜한 편이지만 중대형아파트의 상황은 심각하다. 국토해양부에 따르면 2월 기준으로 전국의 미분양 아파트는 총 11만6400여가구. 이 중 전용 85㎡(25.7평) 초과 중대형이 6만8000여가구로 절반 이상을 차지한다.

일부 대형 건설업체들은 미분양 아파트를 아예 전세로 내놓기도 한다. 하지만 지방에선 중대형아파트를 찾는 전세 수요자가 많지 않아 이런 방식으로 입주자를 모으기도 쉽지 않다. 아파트 분양광고대행사 'S&D'의 류진규 팀장은 "대구지역 대부분의 미분양 아파트는 132㎡(40평) 이상의 대형"이라며 "대형아파트는 중도금 무이자, 할인 분양, 발코니 무료확장 등 온갖 방법을 다 동원해도 사는 사람이 없다"고 말했다.

최근 대구 중앙을 관통하는 신천대로 주변에는 '1억8000만원 할인분양'이라는 현수막이 걸렸다. 이 아파트의 분양 가격은 4억원가량. 자금난에 몰린 건설업체들이 미분양 아파트 전문매입업자들에게 절반 가격에 100~200가구씩 한꺼번에 넘기는 소위 '통매각'을 하고, 이 업체들이 '박리다매(薄利多賣)'형 전략으로 할인판매에 나선 것이다. 업계 관계자는 "이정도로 할인을 해도 한 달에 한 채 팔기가 쉽지 않다"고 말했다.

지방뿐 아니라 최근에는 수도권에서도 미분양 아파트가 늘고 있다. 2월 기준 수도권의 미분양 주택은 총 2만7326가구로 전달보다 5.8% 증가했다. 이 때문에 건설업체들은 수도권 역시 미분양 대책을 세워 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수도권에선 지난해 연말과 올해 초 양도세 감면 대책 종료를 앞두고 건설사들이 '밀어내기 분양'에 나서면서 대거 미분양이 양산됐다.

미분양 아파트 문제는 개별 건설업체만의 문제로 국한되지는 않는다. 건설경기 침체가 지속되면서 지난달 건설업 취업자 수는 1만6000명가량 감소했다. 4대강 사업 등 공공사업이 한창이지만 주택 경기가 침체된 결과 취업자 수가 줄어든 것이다. B건설사 관계자는 "3~4년 전 분양에서 '대박'이 났던 아파트도 최근 주택경기가 침체되면서 계약을 해지하는 사례가 속출하고 있다"며 "이런 식이라면 주택 위주 업체들은 문을 닫아야 할 판"이라고 말했다.

주택 경기와 관련이 있는 후방 산업에도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 김선덕 건설산업전략연구소장은 "미분양 아파트가 늘어나면 건설사뿐 아니라 이사업·인테리어업·부동산중개업도 함께 침체돼 지역 경제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게 된다"고 말했다.

◆건설사, 대박의 꿈 좇다가…

미분양이 대거 양산된 것은 1차적으로는 수요도 없는 곳에 대거 주택을 지어 올린 건설사들의 책임이다. 건설사들의 발목을 잡고 있는 지방 미분양은 지난 2007~2008년 집중적으로 공급됐다. 이들 주택은 대부분 주택 경기가 한창 좋았던 2004~2005년에 계획됐던 물량이다. 장성수 주택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2003~2005년은 온 나라가 부동산에 미쳐 있었던 시기"라며 "노무현 정부의 지역균형개발 논리에 따라 전국 곳곳에 혁신도시, 기업도시 계획이 발표되면서 건설사들이 너도나도 아파트를 분양하기 시작했고, 투기 세력도 지방으로 몰려들었다"고 말했다. 당시엔 한 해 동안 400여개가 넘는 시행사가 생기기도 했다.

건설사들은 그러나 분양가 상한제, 총부채상환비율(DTI) 등 정책 변화라는 외부 변수 때문에 주택 미분양이 발생했다고 주장한다. 한 대형 건설사 관계자는 "주택을 공급하기 위해선 2년 이상 준비작업을 해야 하는데 당시 정부가 수개월 간격을 두고 규제대책을 발표해 경기는 좋았지만 제대로 된 분양 계획을 세울 수가 없었다"고 말했다. 건설사들은 또 지난 정부 당시 서울을 포함한 수도권은 각종 규제대책으로 묶여 있어 지방으로 내려갈 수밖에 없었다고 주장한다.

◆세금 투입하더라도 건설업계 구조조정 병행해야

정부는 미분양 때문에 건설사들이 힘들다고 할 때마다 세금을 들여 이들을 구제해줬다. 건설사들의 '자구노력'을 전제로 한다고는 했지만, 건설사들의 경영실패를 세금을 투입해 해결하는 것은 시장에 잘못된 신호를 줄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한 민간연구소의 연구원은 "건설업체가 무너졌을 때 생기는 비판보다 세금을 썼을 때 나오는 비판이 훨씬 적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 같은 지원은 앞으로도 계속 나올 수밖에 없을 것"이라면서도 "떼를 쓰면 정부가 들어준다는 인식은 생기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부가 재정을 투입해 계속 부실업체를 구해줄 경우 건설업계의 구조조정이 불가능하다는 비판도 나오고 있다. 박재룡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은 "미분양 주택으로 인한 문제가 확산되기 전 세금을 투입한 것은 어쩔 수 없다고 하더라도 정부는 건설업계의 구조조정을 병행해 한계 기업은 퇴출을 유도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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