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설업체 미분양
국토해양부 조사 결과, 미분양 아파트는 16만595가구(7월 말 기준)로 이 조사가 시작된 1995년 이래 최대치다. 5년 전 3만8000가구였던 미분양이 그 사이 4배 이상으로 불어난 것이다. 건설업계는 신고하지 않은 물량까지 합하면 25만 가구가 넘을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단독주택 위주의 미국 등 선진국은 경기가 좋지 않으면 건설사들이 아예 추가 공사를 중단해 자금 투입을 최소화한다. 하지만 한국은 미리 분양하는 선(先) 분양인 데다 대규모 아파트 위주여서 중간에 공사를 중단할 수도 없다.
예를 들어 A단지에서 30%만 분양된 경우에도 나머지 70%의 미분양 물량의 공사비는 은행으로부터 돈을 빌려 계속 공사를 할 수밖에 없는 구조. 이 때문에 불경기에는 시간이 지날수록 공사비 대출이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자금난이 심화돼 연쇄부도로 이어질 수 있다.
특히 미분양 물량의 80% 이상이 이미 주택보급률이 100%가 넘어선 지방이어서 미분양이 장기화될 가능성이 높다. B건설사 관계자는 "미분양 물량 대부분이 수요가 많지 않은 지방 대형평형이기 때문에 미분양 사태가 장기화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삼성경제연구소 유정석 박사는 "경제 기반이 취약한 지방의 경우 현실적으로 건설이 지역 경제를 이끌어왔다"며 "미분양이 급증하면서 지방 경기 침체로 이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일부 건설사는 자금 마련을 위해 미분양 물량을 20~30% 할인된 가격에 팔고 있지만 할인판매가 기존 아파트 가격까지 하락시키고 이게 다시 미분양을 장기화시키는 악순환이 발생하고 있다.
최근 정부가 대책을 쏟아내고 있지만 큰 효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 정부가 '10·21 대책'에서 밝힌 2조원의 미분양 아파트 구입 대금으로는 현실적으로 2만 가구 구입도 어려운 실정이다.
● 전문가 제언
이용만 한성대 부동산학과 교수
건설사 위기는 국내 경제 전반에 부정적 영향을 가져온다는 면에서 지금이라도 신속한 대응이 필요하다. 또 이번에 방만경영을 한 업체들에 대한 구조조정의 기회로 삼을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해 가장 중요한 게 건실한 업체와 구조적으로 문제가 있는 업체를 구분해 내는 것이다. 단기 유동성이 부족해 흑자 부도를 낼 위기에 빠진 업체라면 적극 지원해야 한다.
반면 구조적으로 문제가 있는 업체라면 이 참에 구조조정과 퇴출의 계기로 삼아야 한다. 현 시점에서 특히 중요한 건 타이밍이다. 정부가 이에 대해 명확하고 투명한 원칙을 가지고 분류와 구조조정 작업을 신속히 진행해야 한다. 이런 작업과 대책이 지연되면 모든 업체가 다같이 위기로 빠질 수 있다. 정부의 과도한 주택 수요 규제도 적극적으로 풀어야 한다. 지금 같은 신용 경색과 실물 경기 침체 상황이 가속화되는 상황에서의 규제 해제는 집값 급등이 아니라 폭락을 막는 데 도움될 것이다. 정부는 집값이 폭락하고 건설업체들이 연쇄부도를 낸 다음에 뒤늦게 규제를 푸는 우를 범하지는 말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