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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타운도 무산, 재개발도 제동"…18년째 제자리 창신동의 분노 [르포]

    입력 : 2026.11.09 06:00

    [종로 창신동의 오래된 숙제] ② 뉴타운 6년 만에 해제, 도시재생 10년 허송세월…다시 재개발 원점으로
    공사차량도 못 들어가는 골목…"집 고치려 해도 비용 감당 못 해"
    동의율 75% 확보했는데 전면 재징구 요구…4542가구 재개발 또 발목

    [땅집고] 지난 3일 서울 종로구 창신동의 노후 건물 외벽. 도시재생사업을 거친 지역이지만 건물 곳곳에 노후 흔적이 남아 있다. /진광찬 기자
    [땅집고] 지난 3일 서울 종로구 창신동의 노후 건물 외벽. 도시재생사업을 거친 지역이지만 건물 곳곳에 노후 흔적이 남아 있다. /진광찬 기자

    [땅집고] 6일 서울 종로구 창신9·10구역. 현장에서 만난 주민들의 불만은 하늘을 찌를 듯했다. 가파른 골목을 따라 낡은 주택들이 빼곡한 이곳은 2007년 뉴타운 지정과 해제, 도시재생사업을 거쳐 18년 만에 다시 재개발의 길이 열린 곳이다. 지난 6월, 재개발 동의율 75%를 달성하며 사업시행자 지정 신청과 함께 사업이 본격 속도를 낼 것이란 기대가 단번에 꺾였다. 사업시행자 지정은 넉 달 넘게 이뤄지지 않고 있다.

    주민들의 분노는 종로구청을 향했다. 구청이 동의서 접수 당시부터 세입자 이주대책 마련과 반대 주민 설득을 요구한 데 이어, 최근에는 동의서 징구 과정에서 위법행위가 있었다는 이유로 아예 동의서를 처음부터 다시 받으라고 통보했기 때문이다. 수백억원을 투입한 도시재생사업에도 낡은 주거환경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는데, 어렵게 재추진한 재개발마저 행정 문턱에 가로막힌 것이다. 한 주민은 “종로구가 마땅한 근거도 없이 잇따라 훼방을 놓고 있다”며 “구청장이 서울시장과 다른 당 소속이란 이유로 재개발을 멈춰 세우려는 것”이라고 말했다.

    관련기사 : "서울 한복판이 이 지경"…광화문서 2km, 창신동의 처참한민낯 [르포①]

    ◇875억 도시재생에도 신축 2.6%…주민 의견 배제 갈등도

    주민들은 박원순 전 서울시장 당시 ‘도시재생의 악몽’을 떠올린다. 창신·숭인 일대는 2007년 뉴타운으로 지정됐다가 주민 갈등 등을 거쳐 2013년 해제됐다. 이듬해 박원순 전 서울시장 시절 서울 첫 ‘도시재생 선도지역’으로 선정됐고, 2014~2020년 도시재생 관련 사업에는 약 875억원이 투입됐다. 이 돈은 주민공동시설, 봉제산업 지원시설 등에 쓰였다. 관련 사업은 담장에 벽화 그리기, 마을 꼭대기에 전망대 설치하기, 간판 교체하기 등에 그쳤다.

    창신동의 노후한 주택과 도로·공원 등 기반 시설을 그대로 둔 채 이뤄진 도시재생은 아무런 효과가 없었다. 서울연구원에 따르면 2015년부터 2019년 6월까지 창신·숭인 도시재생활성화지역의 건축물 신축은 60건(2.6%), 증축은 7건(0.3%)에 그쳤다. 같은 기간 서울 저층주거지 신축 비율 6.1%의 절반에도 못 미친다. 한 주민은 “무너져가는 건물에 간판만 새로 바꿔 다는 게 무슨 의미가 있느냐”며 “담벼락에 그린 벽화가 빛이 바래면서 분위기가 더 흉흉해졌다”고 말했다. 고지대에 설치해 둔 전망대도 찾는 사람이 거의 없다.

    도시재생은 주민의 의견을 반영한다는 명분조차도 지키지 못했다. 강대선 창신10구역 재개발 추진준비위원장도 도시재생 당시 주민들이 마을버스 운행을 위한 도로 개선을 요구했지만 사업에 반영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김제경 투미부동산컨설팅 소장은 “주민들이 도시재생의 민낯을 보고 불신을 갖게 된 것이 이후 서울 재개발 재추진에 영향을 미쳤다”고 말했다.

    [땅집고] 서울 종로구 창신동 재개발 구역. /땅집고DB
    [땅집고] 서울 종로구 창신동 재개발 구역. /땅집고DB

    ◇18년 만에 재개발 재추진…75% 동의에도 종로구 제동

    창신동 일대는 2021년 오세훈 서울시장 취임 이후 도시재생지역도 민간 재개발 후보지로 신청할 수 있도록 규제가 완화되면서 전환점을 맞았다. 주민들은 2022년 10월 재개발 후보지 선정을 신청했고, 같은 해 12월 신속통합기획 후보지로 선정됐다. 2024년 11월 신통기획안이 마련된 데 이어 지난해 11월 창신9구역 2667가구, 창신10구역 1875가구 등 총 4542가구 규모의 정비구역으로 지정됐다.

    그러나 뉴타운·도시재생의 아픔을 극복하려는 노력은 시행자 지정 단계에서 멈췄다. 창신9·10구역 추진 측은 지난 6월 각각 토지등소유자 동의율 75.86%, 75.38%를 확보해 신탁방식 사업시행자 지정을 신청했다. 모두 법정 기준을 넘겼지만 종로구는 세입자 이주대책을 선제적으로 마련하고 반대 주민들과 추가 협의할 것을 요구하며 지정을 미뤘다.

    업계에서는 도시정비법상 법정 동의율 충족 이후 반대 주민들과 별도로 합의해야 한다는 요건이 없다는 점을 지적한다. 이에 지난 8월 주민들은 사업시행자 지정을 촉구하는 탄원서 약 2500장을 제출하고, 서울시도 세 차례 신속한 처리를 요청했지만 상황은 달라지지 않았다. 한 재개발 찬성 주민은 “법에서 정한 동의율을 넘겼는데도 반대하는 사람들을 더 설득하라면 모두가 찬성할 때까지 기다리라는 것이냐”며 “구청이 법대로 판단해야지 왜 주민들에게 계속 새로운 숙제를 내주느냐”고 반발했다.

    ◇넉 달 만에 동의서 재징구 요구…서울시도 행정 지연 지적

    수개월간 사업시행자 지정을 미뤄온 종로구가 지난달 23일 내놓은 결론은 동의서 전면 재징구 요구였다. 구청은 추진 측이 약 4000만원 상당의 빌트인 가전과 발코니 확장 등을 약속하고, 동의하지 않으면 청산될 수 있다고 안내한 행위가 도시정비법 제132조 위반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기존 동의서로 사업을 진행했다가 소송이 제기되면 2~3년이 지연될 수 있는 만큼, 2~3개월을 들여 동의서를 다시 받는 편이 낫다는 입장이다.

    반면 추진 측은 확정적인 금품 제공을 약속한 것이 아니라 향후 제공할 혜택을 안내했을 뿐이라고 반박한다. 법무법인 자문에서도 위법성이 없다는 의견을 받았다는 입장이다. 종로구 정비사업 자문단에서도 법적 문제가 없다는 의견이 다수 제시된 것으로 알려졌다. 추진 측은 일부 홍보행위의 위법성 여부와 이미 확보한 동의서 전체의 효력은 별개라며, 구청이 전면 재징구를 요구하는 것은 과도하다고 주장한다.

    서울시도 종로구의 행정 지연 문제를 공식적으로 지적했다. 시는 지난달 27일 ‘정비사업 업무 처리기준 표준화 추진계획’을 발표하면서 창신9구역을 지연 사례로 직접 거론했다. 사업시행자 지정에 법정 처리기한이 없다는 이유로 일부 자치구가 관련 절차를 수개월간 미뤄왔다는 것이다.

    이에 서울시는 신탁업자 등 사업시행자 지정에 ‘30일 이내 처리’ 기준을 신설했다. 관계기관 협의는 원칙적으로 10일 이내에 마치고, 보완 요구는 최대 2회로 제한하기로 했다. 기한 내 회신이 없으면 별도 의견이 없는 것으로 간주하는 절차도 도입했다. 국토교통부에 처리기한 법제화도 건의했다. /chan2@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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