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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한복판이 이 지경"…광화문서 2km, 창신동의 처참한 민낯 [르포]

    입력 : 2026.11.06 06:00

    [종로 창신동의 오래된 숙제] ① 노후건축물 95%…금 간 계단·좁은 골목에 갇힌 주민들
    소방차 진입 어려운 곳 60%…잇단 화재에 안전 우려
    20년 가까운 개발 부침…동의서 재징구에 재개발 또 제동

    [땅집고] 지난 3일 서울 종로구 창신9·10구역 일대 골목길. 낡은 주택의 외벽 곳곳에 균열이 생겼고, 가파른 콘크리트 계단에도 금이 가 있다. /진광찬 기자
    [땅집고] 지난 3일 서울 종로구 창신9·10구역 일대 골목길. 낡은 주택의 외벽 곳곳에 균열이 생겼고, 가파른 콘크리트 계단에도 금이 가 있다. /진광찬 기자

    [땅집고] “2026년 서울 한복판에 이런 풍경이 있다니 믿어 지십니까?”

    5일 서울 종로구 창신9·10구역의 가파른 언덕을 오르던 강대선 창신10구역 재개발 추진준비위원장은 “창신동 전체 건물 건축연도 중앙값이 1981년”이라면서 이렇게 말했다. 광화문과 종로의 빌딩숲으로부터 2km 정도 떨어진 서울 도심이지만, 이곳의 시간은 1980년대에 멈춰 있었다. 반쯤 지워진 벽화와 쩍쩍 금이 간 저층 주택 외벽에 어깨를 부딪치며 폭 1~1.5m의 구불구불한 비탈길을 오르다 보니 10분 만에 숨이 가빠 왔다. 골목 한 편에는 창문에 덧댄 비닐이 찢어진 집, 출입문이 열린 채 내부에 쓰레기와 잡동사니가 널브러진 빈집도 있었다.

    창신동 주택가 한 곳에는 지난 9월 17일 발생한 화재의 흔적도 남아 있었다. 검게 그을린 주택 외벽와 깨진 창문이 보였고 에어컨 실외기 주변에는 끊어진 전선이 축 늘어져 있었다. 소방차가 진입할 엄두를 못낼 만큼 좁은 골목길이었다. 당시 소방대원들은 110m 떨어진 도로에서 소방호스를 들고 뛰어야 했다. 인근 주민은 “오죽하면 소방관들이 우리에게 재개발이 언제 이뤄지는지 물을 정도겠느냐”고 말했다.

    [땅집고] 서울 종로구 창신9·10구역 일대 사람 한 명이 간신히 지나갈 정도로 좁은 골목길이 노후 주택 사이로 미로처럼 이어져 있다. /진광찬 기자
    [땅집고] 서울 종로구 창신9·10구역 일대 사람 한 명이 간신히 지나갈 정도로 좁은 골목길이 노후 주택 사이로 미로처럼 이어져 있다. /진광찬 기자

    ◇불 나도 소방차 못 들어와… 대형 화재시 참사 우려

    창신동 주거지역은 6·25 종전 이후 한양도성 밖 산비탈에 피란민들이 모여 형성됐다. 1950~60년대에 지은 집도 흔히 볼 수 있을만큼 노후 주택이 밀집해 있고 도로나 공원 같은 기반 시설은 더욱 열악하다. 도심과 가까운 접근성 덕에 20년 전부터 재개발을 추진해왔고 2007년 뉴타운(재정비촉진사업)으로 지정됐다. 하지만 박원순 전 서울시장 당시인 2013년 뉴타운 지정이 해제됐고, 2014년 ‘기존 주거지를 보존·개선’하겠다는 도시재생 선도지역으로 지정되기에 이르렀다. 2020년까지 7년간 도시재생 사업으로 875억을 투입했지만 변한 건 거의 없었다.

    [땅집고] 지난 9월 17일 오후 8시쯤 서울 종로구 창신10구역 인근 한 다세대주택에서 화재가 발생했다. 당시 좁은 골목 탓에 소방차가 진입하지 못해 소방대원들이 약 110m 떨어진 도로에서부터 소방호스를 끌고 현장으로 이동해야 했다. /강대선 창신10구역 재개발 추진준비위원장 제공.
    [땅집고] 지난 9월 17일 오후 8시쯤 서울 종로구 창신10구역 인근 한 다세대주택에서 화재가 발생했다. 당시 좁은 골목 탓에 소방차가 진입하지 못해 소방대원들이 약 110m 떨어진 도로에서부터 소방호스를 끌고 현장으로 이동해야 했다. /강대선 창신10구역 재개발 추진준비위원장 제공.

    특히 화재 위험은 창신9·10구역 주민들의 가장 큰 걱정거리 중 하나다. 좁은 골목에 적치물이 쌓여 긴급 상황에서 대피하기 쉽지 않고, 노후 전기설비의 누전과 합선도 불안 요인이다. 강 위원장은 “이 일대 주택 60% 이상은 소방차 진입이 어렵다”고 말했다. 창신동에서는 2024년 12월 한옥 화재로 80대 여성과 7세 손자가 숨졌고, 지난해 10월 주택 화재로도 80대 남성이 사망했다. 주민들 사이에선 지난달 27일 강남구 구룡마을 판자촌에서 대형 화재가 발생했다는 소식이 전해진 이후 이곳에서도 언제 그런 일이 생길지 모른다는 우려가 높다.

    ◇정비사업 대상 건축물 95%…“재개발 기다리다 늙어 버렸다”

    창신동 주거지역은 경사 10도 이상의 구릉지에 밀집했고, 지형 높이 차이는 최대 70m에 이른다. 이런 가운데 창신9·10구역 도로 약 10㎞ 가운데 4㎞ 이상은 폭 2.4m 미만이라는 조사 결과도 있다. 2024년 발표한 신속통합기획 대상지로 창신동 일대를 지정할 당시 정비사업의 대상이 되는 ‘노후건축물’ 비율은 95%에 달했다. 노후건축물은 훼손·멸실로 인한 안전사고 우려가 있거나 내진성능 미확보, 설비 노후화 등으로 기능 유지가 곤란한 건축물 등을 말하는데 재개발 정비계획 입안에 필요한 일반적인 노후도 기준은 약 67%다.

    [땅집고] 서울 종로구 창신9·10구역 일대를 위에서 내려다본 모습. 가파른 산비탈을 따라 노후 저층 주택들이 빈틈없이 빼곡하게 들어서 있다. /강태민 기자
    [땅집고] 서울 종로구 창신9·10구역 일대를 위에서 내려다본 모습. 가파른 산비탈을 따라 노후 저층 주택들이 빈틈없이 빼곡하게 들어서 있다. /강태민 기자

    주거환경이 워낙 열악한 탓에 월세가 30만원 선으로 저렴한데도 곳곳에 빈집이 남아 있다. 좁은 골목 탓에 마을버스가 다니지 못하고, 지하철역에서 20분 넘게 언덕을 올라야 하는 집이 많아서다. 창신동은 1970년대 동대문 의류시장의 성장과 함께 봉제업 중심지로 떠올랐던 곳이지만, 인근 봉제공장 사장은 “과거 이 일대 공장의 60% 정도가 문을 닫은 것 같다”고 말했다. 노후 주택에는 저렴한 월세를 찾아 외국인 근로자 등 새로운 세입자들이 들어오고 있다.

    정비업계에서는 창신동 일대 주택·기반시설 등 주거환경을 개선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재개발이라고 입을 모은다. 하지만 주민들은 비슷한 상황에 놓인 많은 주거지역들이 뉴타운 사업이나 재개발을 통해 천지개벽하는 모습을 지켜 보며 함께 늙어 버렸다. 창신동에서 30년 넘게 산 60대 A씨는 자녀들이 스무 살이 되며 독립하자마자 서울 다른 지역으로 이사할 계획이다. A씨는 “집이 50년이 돼 가는데 곧 재개발 될거란 말이 나오니 새로 짓지도 못하고 조금씩 고치며 살았지만 이제는 포기했다”고 말했다. 집앞에서 고추를 말리던 70대 B씨는 “겨울 빙판길이 되면 아예 밖에 나올 엄두조차 못 낸다”며 “젊을 때는 아무렇지 않던 언덕인데 이제는 장을 보고 올라오려면 몇 번씩 쉬어야 한다”고 말했다.

    ◇봉제공장도 주민도 떠난 골목…재개발은 또 제동

    창신동 일대는 2021년 오세훈 서울시장이 재집권하면서 내세운 ‘신속통합기획’ 대상지로 선정된 이후 다시 한번 개발의 꿈을 꾸고 있다. 서울시가 정비계획 수립 단계부터 제시하는 공공성과 사업성을 고려한 가이드라인을 따르는 대신, 각종 인허가 절차 지원을 받아 정비구역 지정까지 걸리는 시간을 기존 5년에서 2년여로 단축하는 방식이다. 오 시장이 서울 주택 공급량을 늘리기 위해 고안한 제도라 ‘오세훈표 정비사업’이라고도 불린다.

    하지만 서울시의 신속 처리 방침에도 종로구청의 원인 모를 ‘발목 잡기’로 또 한번 아픔을 겪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대표적인 곳이 창신9·10구역으로, 지난해 11월 각각 2667가구, 1875가구 등 총 4542가구 규모의 정비구역으로 지정됐다. 하지만 종로구는 사업추진위에 이주 대책을 선제적으로 마련하라고 요구하거나, 사업추진위가 사업시행자 지정을 위한 법정 토지등소유자 동의율(75%)을 확보했는데도 근거 없이 소수 반대 주민을 설득하라며 사업시행자 지정을 미룬 바 있다. 최근 종로구가 동의서 징구 과정의 위법 소지를 이유로 신탁 사업시행자 지정 동의서 전면 재징구를 요구하면서 다시 제동이 걸렸다. 강 위원장은 "열악한 주거환경을 감수해온 주민들을 위해 재개발이 조속히 추진돼야 한다"고 말했다./chan2@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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