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26.10.06 06:00
부동산 절연·대출 축소로 서민 주거 사다리 파괴
세계적 석학의 '지대추구론' 거꾸로 해석한 이론가
현장 무시한 관념적 정책, 국민을 실험 대상 삼아
[땅집고] 서민 전세 대출 지원과 1주택자 세제 혜택은 진보·보수 정권을 불문하고 유지되어 온 최소한의 사회적 합의였다. 무지막지한 규제로 주택시장을 누르려 했던 문재인 정부 시절 집값이 폭등할 때조차 서민의 주거 사다리인 전세 대출과 실수요자 세제 혜택만큼은 건드리지 않았다. 시장경제의 원리가 아니라 서민과 실수요자들에게 불편을 주면 정권 지지율이 폭락, 선거에서 심판받을 수 있다는 우려가 깔려 있었다. 한국 뿐만 아니라 선진국의 주택정책에서 일관되게 관철되는 원칙이다.
이재명 정부는 이 금기를 과감하게 깨부수고 있다. ‘부동산과 금융의 절연’, ‘1주택자 장기보유특별공제 축소’, ‘전세대출 축소’ 등 과거 정부는 물론 전 세계 그 어떤 정부도 엄두도 내지 못하던 강경책을 총동원하고 있다. 토지거래허가제를 빙자한 아파트 거래 허가제는 전세계 어떤 정부도 감히 시도해보지 못한 국민 괴롭히기 끝판왕 규제이다. 이런 정책의 결과물이 대통령 지지율 급락이다. 규제 정책의 이론적 제공자가 청와대 정책실장(전 경제성장수석)으로 전격 발탁된 하준경 실장이다.
하 실장의 논리는 단순 명쾌해 현혹되기 쉽다. 낮은 보유세와 손쉬운 대출이 부동산 불패 신화를 만들었고, 혁신 기업으로 가야 할 자금을 부동산으로 돌려 국가 성장을 막는다는 것이다. 과도한 주거비가 저출산과 양극화를 초래한다고 봤다. 사실상 부동산을 ‘만악(萬惡)의 근원’으로 규정한 것이다. 세금과 대출 규제로 투기를 뿌리 뽑아야 성장이 열린다는 것이 하 실장의 지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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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그의 논리는 사실관계 오류와 과장, 현실을 무시한 ‘방구석 워리어’의 공상에 가깝다. 하 실장의 이론대로라면 부동산에 발목이 잡힌 ‘헬조선’이 세계 10대 무역대국으로 성장했을 리 없다.
단순한 이론으로 현실을 재단하고 유토피아를 만들려는 시도는 언제나 비극적 부작용을 초래하며 실패로 끝났다.
하 실장은 한 기고문에서 “미국은 보유세 1.4%를 부과해 토지 가치를 회수한다”며 미국식 보유세를 ‘글로벌 스탠다드’로 떠받들었다. 하지만 하 실장이 찬양하는 미국 현지는 어떠한가. 뉴욕, 샌프란시스코, LA 등 대도시는 집값 폭등으로 도심 한복판에 텐트를 치는 주거 난민이 속출하고 있다. 보유세 1.4%가 집값을 잡는 만능열쇠였다면, 미국 주택시장의 거품과 2008년 리먼 브라더스 사태는 설명할 길이 없다. 학자로서 가장 경계해야 할 게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한 ‘팩트 짜깁기’이다.
미국의 주택 보유세는 집값을 잡는 무기가 아니라 지자체의 교육·치안을 위한 지방세다. 주(州)마다 실효세율과 공제 제도가 천차만별임에도 이를 단정적으로 ‘1.4%’라 일반화하는 것은 학자로서 무책임하다. 영국·이스라엘처럼 거주세를 채택하거나 중국 상하이처럼 1주택자 보유세가 없는 해외 사례는 입을 다문다.
하 실장이 과거 글에서 전매특허처럼 내세우는 ‘지대추구(Rent-seeking)’ 이론도 아전인수식 해석의 전형이다. 앤 크루거, 윌리엄 피셸 등 세계적 석학들이 규명한 지대추구론의 본질은 ‘정부의 규제가 인위적 공급 희소성을 만들어 초과이익을 낳는다’는 데 있다. 피셸의 ‘홈보터 가설’이나 글레이저의 도심 규제 분석 모두 규제를 완화해 공급을 늘리는 것을 해법으로 제시한다.
하지만 미국 브라운대 박사 출신인 하 실장은 이 이론들을 자신 마음대로 비틀었다. 규제 혁파 대신, 아파트 소유자 전체를 특권층으로 몰아세우며 더 강한 규제와 세금 폭탄을 정당화하는 도구로 변질시킨 것이다. 이는 토지 사유제를 만악의 근원으로 보고 지대 환수를 주장했던 19세기 헨리 조지의 도그마와 판박이다.
하 실장의 이론적 편향과 독선은 그가 부동산 비전공자이기 때문에 가능했을 것이다. 서울대와 미국 브라운대학교에서 공부를 했지만, 그의 전공은 혁신 성장론이다. 어설픈 이론으로 현실 경제를 재단하는 것은 학자들의 특권이다. 그러나 그는 이제 학자가 아닌 한국 경제를 좌우할 경제 사령탑이다.
현장 경험이 없는 학자 출신의 ‘규제 만능주의’는 위험천만하다. 선진국의 주택 정책가들은 금리·유동성·인구·공급이 얽힌 집값을 세금으로 잡을 수 있다고 장담하지 않는다. 집값을 통제하겠다던 문재인 정부의 김수현 전 정책실장조차 퇴임 후 “정부는 집값을 잡겠다는 약속을 하지 말아야 한다”는 반성문을 남겼다.
편향된 이론에 빠진 학자가 주도하는 정책의 부작용은 이미 시장을 덮치고 있다. 무차별 대출 규제는 실거주 서민을 금융권 밖으로 밀어내는 ‘대출 절벽’을 불렀고, 실거주 요건 강화는 전세 물량을 잠그며 서민의 주거 사다리를 허물고 있다. 시장의 역사를 무시한 관념적 정책은 국민에게 세금 폭탄과 주거 불안을 남길 뿐이다. 국민은 학자의 이론을 검증하기 위한 실험 대상이 아니다. /hbcha@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