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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당 2억 아파트에 치매 노인 오지마" 재건축 갈등 불씨 데이케어센터

    입력 : 2025.08.21 06:00

    극으로 치닫는 데이케어센터 갈등
    치매센터 들어온다는 소식에 발칵

    [땅집고] 초고령화 시대, 노인 시설 수요가 증가하는 가운데 강남 재건축 단지에서 데이케어센터 갈등이 불거졌다. 빠른 정비사업을 위해 노인 시설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주민들이 대부분이나, 일부 주민을 중심으로 ‘내 집 앞에는 안 된다’는 님비(Not In My Backyard) 현상이 일고 있다.

    [땅집고] 서울 서초구 '신반포7차' 아파트 외벽에 걸린 현수막. /강태민 기자

    ◇ ‘치매아파트 반대’라는 강남 재건축 아파트

    서울 서초구 잠원동 한신7차. 입구 ‘치매아파트 반대’라고 적힌 입간판이 있었다. 단지 후문에도 ‘데이케어센터 추진이 무산됐다’는 내용의 커다란 현수막이 걸렸다. 아파트 재건축 조합이 정비사업 수익성을 높이기 위해 어르신이 이용하는 데이케어센터를 유치하기로 하자, 이를 반대하는 주민들이 곳곳에 현수막을 달았다.

    한신7차는 강남권 최초 공공재건축 추진 단지다. 최근 이 단지 재건축 조합은 법정상한용적률 300%보다 높은 360%를 적용하는 대신 단지 내에 노인여가복지시설, 데이케어센터를 조성하는 내용을 포함해 서울시와 사전기획안을 확정했다.

    계획 발표 이후 주민 의견이 양분됐다. 일부 주민들은 대다수 어르신이 차를 타고 데이케어센터에 와서 외부 차량 진출입이 많아지고, 노인 시설 유치로 인해 아파트 가치 하락이 우려된다고 주장 중이다.

    잠원동 ‘한신7차’ 입주민 A씨는 “치매 어르신들은 한적하고 공기 좋은 지역에서 지내는 게 낫지 않겠나”라며 “이 곳은 3.3㎡(1평) 당 2억원 수준으로 땅 값이 비싸고 복잡한 곳이라서 치매 시설이 적합하지 않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땅집고] 서울 서초구 '신반포7차' 아파트 전경. /강태민 기자

    반대로 빠른 사업 추진을 위해 공공재건축을 택한 만큼, 어르신 시설을 받아들이자는 주민도 있다. 잠원동 ‘한신7차’ 입주민 김모씨는 “인허가권자인 서울시가 데이케어센터를 지으라면 지어야 하지 않겠나”라며 “대책 없이 무작정 노인 시설을 반대했다가는 재건축 사업이 또 미뤄질 것”이라고 했다.

    한신7차는 1980년 지어져 입주 50년차를 바라보는 노후 아파트다. 전용 107~140 ㎡로 이뤄진 중대형 아파트라서 수십년 전부터 사업성이 높다는 평가를 받았으나, 여태 재건축 사업이 걸음마 단계다. 비슷한 시기에 조합 설립을 했던 한신4지구가 ‘메이플자이’로 탈바꿈하고 입주한 것과 대조된다.

    [땅집고] 서울 서초구 '신반포7차' 아파트 후문에 '데이케어센터 추진 무산'이라고 적힌 현수막이 걸려 있다. /강태민 기자

    ◇ 재건축만? 공공분양사업도 ‘노인 시설 NO’

    재건축 단지에서 어르신 전용 시설 유치로 인해 주민 반대가 일어난 것은 처음이 아니다. 앞서 영등포구 여의도동 대표 재건축 단지 중 하나인 시범아파트 역시 같은 문제로 주민 갈등을 겪었다. 서울시가 데이케어센터 기부채납(공공기여)을 요구하자 시범아파트 주민들이 아파트 외벽에 ‘반대’ 현수막을 거는 등 갈등이 격화했다. 결국 주민들이 이를 받아들이기로 하면서 논란이 종지부를 찍었다. 올해 2월 정비구역 지정과 정비계획 고시 단계를 넘는 등 속도를 내고 있다.

    [땅집고] LH는 경기 성남 낙생공공주택지구 내 도시계획 중 일부를 변경했다. 유치원을 없애고 노유자 시설 부지를 옮기는 내용이 포함돼 있다. /LH

    최근에는 정비사업 뿐 아니라 공공주택 분양 사업에서도 노인 시설을 둘러싼 갈등이 벌어졌다. 경기 성남 낙생공공주택지구 신혼희망타운 사전청약자들은 한국토지주택공사(LH) 측에 ‘단지 옆 부지에 치매전문요양원을 건설하는 토지이용계획을 철회해달라’고 요청했다. 유치원 자리가 갑자기 노인 시설 부지로 바뀌었다는 것이다. LH가 유치원을 초등학교 내에 조성하기로 해 주민 불편이 없을 것이라고 밝혔으나 사전청약자의 불만이 좀처럼 사그라들지 않고 있다.

    관련 기사 : 오세훈 시장 "데이케어센터 없이 신통기획 없어…초고령화시대 필수 인프라"

    ◇ 5명 중 1명 노인, 도심 수요↑

    업계에서는 어르신 시설을 둘러싼 갈등이 심화한다는 전망이 나온다. 서울 외곽에 위치한 어르신 시설보다 도심에 위치한 시설의 수요가 훨씬 높아서다. 이용자 대부분은 노후에도 본인이 생활해왔던 곳에서 거주하려는 경향이 짙다. 이는 서울시가 기부채납을 통해 어르신 시설을 확충하려는 배경이기도 하다.

    앞서 오세훈 서울시장은 “공공기여를 통해 초고령사회에 필수인 어르신 돌봄시설을 우선 확보하겠다”며 “이런 시설을 거부하는 곳은 앞으로 개발 이익이나 주민 편의시설 유치 우선순위에서 밀릴 것”이라고 했다. 서울시는 2000가구 이상 아파트 재건축 사업에 노인요양시설 설치 의무화를 추진 중이다.

    전문가들은 공공성만 강조할 경우 재건축 사업이 위축되고 주택 공급에도 차질을 빚을 수 있어 원만한 합의가 필요하다는 의견을 냈다.

    송승현 ‘도시와경제’ 대표는 “초고령화 시대에 진입했지만, 사회적 약자라는 점에서 ‘노인’ 시설을 기피하는 인식이 여전히 있다”며 “주택 가격이 높거나 추가 상승에 대한 기대감이 있는 지역을 중심으로 이러한 반대 기류가 더욱 강하게 나타날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한편, 우리나라의 경우 전례 없는 속도로 초고령화 사회에 빠르게 진입하면서 어르신 시설 수요가 급증하고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올해 6월 말 기준, 노인 인구(65세 이상) 수는 1055만명으로, 전체 인구(5116만명)의 21% 수준이다. /westseoul@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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