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25.05.12 08:51 | 수정 : 2025.05.12 09:06
[땅집고] “앞으로 우리 단지는 자동차 2대 이상 보유 가구에 차량 주차비를 부과합니다. 2대 이상은 2만원, 3대 이상은 22만원입니다. 4대 이상은 52만원입니다. 5대는 등록이 불가능합니다.”

소득 증가와 기술 발전으로 차량 보유 가구가 늘면서 관련 분쟁 역시 커지는 모습이다. 주차장 논쟁이 대표적이다. 변병설 인하대 교수가 인천 연수구 아파트 입주민 300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공동주택 갈등 유형화 분석’ 연구에 따르면 주차장 관련 갈등(25%)은 흡연(31%)과 층간 소음(29%) 뒤를 잇는 갈등 소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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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관련 논쟁이 발생할 때마다 찬반이 팽팽하다. 공용 공간인 주차장에서 주차 자리를 찾기 위한 이른바 ‘뺑뺑이’를 도는 불상사를 막으려면 제약이 불가피하다는 여론이 지배적이나, 먹고 사는 문제로 불가피하게 2~3대를 보유해야 하는 경우를 고려해야 한다는 의견을 내는 이도 적지 않다.

■ ‘4대 보유 가구, 52만원’ 폭탄 고지서 날린 아파트
이런 가운데 최근 한 아파트가 차량 여러 대를 보유한 가구에 수십만원 주차요금을 내라고 고지한 사실이 알려져 갑론을박이 이어지고 있다.
국내 커뮤니티 ‘보배드림’에는 ‘우리 아파트 차량 주차비’라는 제목의 글이 올라왔다. 이 게시물은 게재 2일차에 조회수 11만1800여 건이라는 높은 조회수를 기록했다. 댓글 수백 개가 달리면서 ‘베스트 글’ 카테고리에도 올랐다.
작성자 A씨는 자신이 사는 아파트 주차요금으로 추정되는 한 장의 사진과 함께 “속이 시원하다. 3대부터 불허했으면 더 좋았을 듯”이라는 짧은 글을 남겼다.
그가 올린 사진에는 가구 당 주차 대수에 따른 요금이 적혀 있다. 차량 1대를 보유한 입주민은 무료다. 2대 보유한 입주민은 월 2만원, 3대를 보유한 입주민은 월 22만원을 내야 한다. 4대를 보유한 입주민은 무려 월 52만원을 부담해야 한다. 5대 이상의 차량 보유는 불가능하다.

■ 반복되는 주차 논란, 신축은 처음부터 규정 세운다
이러한 주차 논란은 처음이 아니다. 올해 2월 한 아파트는 가구 당 주차 요금을 올리겠다고 밝히면서 4 대 보유 가구에 41만4000원을 부과하겠다고 밝혔다. 이 단지의 경우 당초 3대 보유 가구에 3만1000원, 4대 보유 가구에 6만1000원을 부과해 주차 공간을 확보하려 했으나, 여전히 주차 갈등이 빚어지면서 요금을 대폭 올리기로 했다.
각 가구가 보유한 주차장 면적과 주차대수의 차이를 계산해 주차비를 산정하는 곳도 있다. 통상 주차장, 현관 등 공용 면적은 전용 면적이 넓을수록 크다.
서울 강동구 둔촌동에 위치한 1만2032가구 규모 아파트 ‘올림픽파크 포레온’의 주차 규정 역시 이러한 추세를 반영했다. 가구 당 면적에 따라 주차비를 차등 부과하겠다고 밝힌 것이다. 이 곳은 총 주차 대수가 무려 1만7893대로 많아 분쟁 소지 가능성이 높은 만큼 입주 시점부터 주차 규정을 세웠다. 이 단지 가구 당 주차 대수는 1.48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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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는 어떨까. 우리나라와 가까운 일본은 관련 규정이 훨씬 엄격하다. 우선 주차장이 없으면 아예 자동차를 구입할 수 없다. 일본의 공동주택인 맨션은 분양할 때 주차장 구입여부를 결정해야 한다. 한 번 정한 주차 자리를 바꾸는 것도 쉽지 않다.
땅값이 비싼 만큼, 주차 비용 시세도 높다. 도쿄 도심의 고급 아파트 주차비는 약 6만 엔(한화 약 60만5000원)에서 10만 엔(101만원) 선이다.
■ 자동차 수 75% 늘었는데, 법은 30년 전에 머물러 있다
우리나라의 주차장 분쟁이 많은 이유 중 하나는 현실과 동떨어진 법령 때문이다. 소득 증대와 기술 변화로 자차 보유 가구가 늘어난 것과 달리 관련법은 30년 전에 머물러 있다.
1996년 개정된 공동주택 주차장 설치 기준(대통령령)인 ‘주택건설기준 등에 관한 규정’에 따르면 가구당 주차 대수는 1대 이상, 가구당 전용면적이 60㎡ 이하면 0.7대로 기준이 더 낮다.
강산이 세 번 바뀌는 사이 자동차 등록 대수는 배로 증가했다. 통계청의 '1인당 자동차 등록대수 현황'에 따르면 2023년 기준 전국의 자동차 등록 대수(관용, 자가용, 영업용 포함)는 약 총 2595만 대다. 통계 작성 최초 시점인 2003년(1458만7254대) 대비 74.83% 늘었다.
네티즌 대다수는 주차장 제한이 필요하다는 데 공감했다. 네티즌들은 “우리 아파트도 이렇게 하면 좋겠다” “일 잘하는 아파트면 관리비 안 아깝다” “저 돈이면 3대부터는 거의 등록 안 할 것” 등의 의견을 보였다.
다만, 일각에서는 이러한 규정을 적용하되, 개인 사정을 고려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한 네티즌은 “일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여러 대를 등록하는 가구는 억울할 것 같다”고 했다. 이와 반대로 “차가 없는 가구는 관리비를 깎아줘야 한다” 등의 의견도 있다. /westseoul@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