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25.03.31 06:00
[아파트 브랜드 전문가-조현욱 송도랜드마크시티(SLC) 상무 인터뷰②] 브랜드 후발주자, 선두주자 좇다간 ‘2중대’ 취급…”무기 갖춰야”

[땅집고] “한국토지주택공사(LH)는 아파트 브랜딩의 대표적인 실패 사례입니다. 택지지구 내 가장 좋은 입지에 괜찮은 상품을 싸게 파는데 왜 ‘휴거’(휴먼시아 거지), ‘엘사’(LH 사는 거지) 같은 소리를 듣게 된 걸까요? 나름대로는 브랜딩을 한다고 아파트 브랜드를 5번이나 바꿨는데, 결국 브랜딩 방법이 완전히 틀렸다는 뜻이죠.”
(☞관련기사: '힐스테이트' 1등 만든 전문가…"압구정은 디에이치·래미안도 식상해")
아파트 브랜드 마케팅 전문가로 꼽히는 조현욱 송도랜드마크시티(SLC) 상무는 땅집고와의 인터뷰에서 “후발주자인 2군 아파트 브랜드는 선두주자들과 다른 요소를 강조해야 살아남는데, 요즘 건설사들은 네이밍만 바꾸고 있으니 외면을 받는 것”이라며 이같이 말했다.
그는 “후발주자는 선두주자들을 따라가기 시작하면 절대 잘 될 수가 없다”며 “2군 브랜드일수록 브랜드 역량을 잘 키울 수 있고, 전문가를 키워야하는데 홍보팀이나 주택팀에서 대충 브랜딩에 나서다보니 브랜딩이 약해지는 악순환이 이어진다”고 충고했다. <이하 일문일답>
-업계 10위 밖만 넘어가도 아파트 브랜딩이 쉽지 않아 보이는데.
“2군 건설사들의 접근 방식이 잘못됐다고 본다. 사실 브랜딩은 오히려 후발주자가 이길 확률이 높다. 선발주자는 지켜야하는 입장이지만, 후발주자는 선발주자를 공략할 부위가 많다. 정면으로도, 옆으로도, 뒤로도 싸울 수 있을 정도로 무기가 정말 많다. 그런데 싸울 장소나 무기보다는 단순히 아파트 네이밍만 하는게 문제다.
브랜드를 하나 만들었으면 실체가 있어야 하는데 없으니 고객들한테 안 와닿는 것이다. 선발주자와는 색다른 실체가 있어야 하는데, 그게 없다. 고객이 좋아하지만, 선두주자나 다른 건설사가 하지 않는 ‘한 방’이 있어야 한다. 네이밍만 하는 것은 브랜딩이 아니다. 후발주자가 선발주자를 따라가는 순간 오히려 ‘2중대’ 취급을 받으며 돈과 시간만 소모한다.”
-후발주자 아파트 브랜드가 강력한 브랜드가 되기 위해서는 어떤 전략을 취해야 할까.
“단순하게 고객들이 원하는데 선발주자 브랜드가 제대로 못하는 것을 하면 된다. 2000년 초반 삼성과 대림(현 DL이앤씨)이 IMF 이후 인터넷이 대중화 되기 시작할 때 ‘첨단’ 이라는 요소로 선두주자가 됐다. 반에서 학생 중에서 공부를 10등 이상하더라도 운동을 잘하거나 노래를 잘 부르면 반에서 인기 학생이 될 수 있다. 꼭 공부만으로 상위권에 들 필요가 없다.
또한 브랜딩은 빅모델TV 광고 등 돈을 많이 써야 한다고들 생각하는데 실제론 그렇지 않다. 2014년 힐스테이트 브랜드와 현대와의 연결고리를 강화하고, 영어로 된 CI를 한글로 바꿨다. 여기에 사업지 명칭을 전환했다. 비용을 거의 사용하지 않고도 힐스테이트를 7위에서 1위로 만든 것이다. 그만큼 전략적으로 접근해야 한다. 누구나 할 수 있을 것 같지만, 생각을 하고 실천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
후발주자 브랜드들은 인지부조화도 사용할 수가 있다. 인지부조화는 소비자와 인식과 다른 행보를 보여서 인식에 각인시키는 것이다. 1등 브랜드는 명확한 이미지가 있어 인지부조화 활동이 힘들지만 후발주자 브랜드는 그것이 가능하다. ”
-디에이치도 같은 방법으로 브랜딩을 한 건가.
“디에이치를 분양한 단지는 개포주공3단지를 재건축한 ‘디에이치 아너힐즈’다. 당시 디에이치가 고급 아파트 브랜드로 제대로 포지셔닝 하기 위해서는 소비자들의 주목이 필요했다. 그때 활용한 것이 인지부조화 방법이다. 그 당시 개포동은 소위 ‘개도 포기한 동네’라고 불리던 시기다. 개포 3단지를 평당 3000만원대 후반으로 분양하던 반포보다 비싼 평당 4000만원에 분양했다. 이런 인지 부조화 메시지를 통해서 강남 고객들의 이목을 끌었다.
디에이치 아너힐즈가 분양하자 마자 소비자들은 도대체 평당 4000만원 아파트가 어떻게 지어졌는지, 더욱이 개포라는 지역에서 그것이 가능한지를 확인하기 위해서 모델하우스에 모여들었다. 우수한 상품성을 확인시키면서 디에이치 아너힐즈는 평균 경쟁률 100:1 이라는 성과를 냈다. 이런 과정을 통해 디에이치는 누구나 다 아는 고급 아파트 브랜드의 선두주자가 됐다.”
-새로 나오는 아파트 브랜드가 시장에서 자리를 잘 못 잡는 이유는.
“매년 새로운 브랜드가 등장한다. 빅모델을 사용해 요란하게 TV 광고도 한다. 그러나 대게 몇 년이 지나도 자리를 잡지 못한다. 이는 건설사들이 네이밍만 하고 이를 알리기만 하면 된다는 생각에서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에 생긴 결과물이다. 가장 대표적인 실패 사례가 바로 LH다.
LH는 5번에 걸쳐 새로운 브랜드를 만들었지만, 아직도 자리를 잡은 브랜드는 없다. 심지어 입주자들이 LH 브랜드 사용을 거부하거나, 다른 시공사 브랜드나 제 3의 브랜드를 사용하기를 원하기도 한다. 이 문제는 결국 브랜딩에 대한 전략 부족과 함께 브랜드마케팅 전문가의 부재 때문이라고도 본다.
강력한 브랜드를 만들기 위한 전략은 사실 단순하다. 우리 브랜드를 사야 할 이유를 제공해주는 브랜드 컨셉을 설정하고, 이를 구체화하는 브랜드 실체를 만들어줘야 한다. 브랜드를 만든 이후에는 매년 새로운 요소를 일관성 있게, 체계적으로 제공하면 된다. 사실 브랜드마케팅 전문가가 필요한 곳은 1군의 선발주자가 아니라 후발주자인 2군 건설사들이다.
그런데 후발주자들은 대개 브랜드 전문가를 욕성하기 보다는 비용 절감을 위해 브랜드에 대한 투자를 줄이고, 내부 인력을 쓴다. 브랜딩도 단순히 이름을 짓고 비싼 비용을 들여 연예인 광고만 한다. 이들은 브랜드를 수주를 위한 영업의 툴로만 사용한다. 그러다 보니 브랜드의 가치가 떨어지는 악순환이 반복된다. 대부분 2군 건설사들이 겪는 문제다. 강력한 브랜드를 육성하기 위해서는 브랜드 가치 향상 시키고, 브랜드 가치 하락을 방지하기 위한 탑 매니지먼트의 관심이 우선이다. 브랜드 담당 부서와 영업 파트와의 원할한 소통이 있어야 한다.” /pkram@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