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25.03.05 06:00

[땅집고] 2024년 DL이앤씨 정비사업 수주는 ▲잠실우성4차(아크로 잠실) ▲도곡개포한신(아크로 도곡) ▲자양7구역(e편한세상 광진 리버가든) 등 3건, 수주액 1조1809억원으로 10대 건설사 중 가장 적었다. 2023년 2조3274억원보다 1조원 이상 줄어든 금액이다. 올해는 서울 용산구 한남5구역 수주를 염두해 정비사업에서 약 3조원 수주를 목표로 잡았다.
DL이앤씨의 선별 수주 기조가 지난해 정비사업 수주가 줄어든 원인으로 꼽힌다. 자사 아파트 브랜드 ‘e편한세상’과 하이엔드 브랜드 ‘아크로’의 브랜드 가치 유지를 위해 수익성 높은 사업장에만 뛰어들었다는 설명이다. 다만 전체 매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2022년 65.9%, 2023년 58.4%에서 2024년 50%까지 줄어든 주택사업의 경쟁력이 약화하고 있다는 지적이 뒤따른다.
업계에서는 예전 같지 않은 브랜드 파워가 원인이라는 평가도 나온다. e편한세상은 수주 사업장에서 자사 하이엔드 브랜드 적용을 요구하며 갈등을 겪는 사례가 많아졌다. 서울 한강변, 강남권 단지에 적용되던 아크로는 지방으로 확장하면서 희소성이 떨어지기 시작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관련기사 : 래미안 위협했던 'e편한세상', 10년 만에 선호도 2위→10위 추락한 이유
한 업계 관계자는 “e편한세상으로는 수도권의 사업성 높은 정비사업을 수주하기 어렵고, 아크로만 짓는다면 하이엔드 브랜드로서 정체성을 잃을 수 있다”고 평가했다.
■ “e편한세상 말고 아크로 지어주세요”
e편한세상은 자사 하이엔드 브랜드 아크로에 밀려 서울, 경기 등 수도권의 사업성 높은 정비사업장에서 외면을 받고 있다. 올해도 주택 부문에서 선별 수주 전략을 이어가는 DL이앤씨로서는 난감한 상황이다.
e편한세상은 2000년부터 DL이앤씨 전신인 대림산업이 짓는 아파트에 붙은 브랜드다. 삼성물산 건설부문의 ‘래미안’과 함께 아파트명에 브랜드를 도입한 초기 사례로, 오랜 기간 높은 선호도 순위를 유지해왔다.
e편한세상의 입지는 아크로가 하이엔드 브랜드 재정비한 2010년대 등장한 이후 흔들리기 시작했다. 2016년 입주한 서울 서초구 반포동 ‘아크로리버파크’(☞단지정보 알아보기)가 국내 최고가 아파트로 거듭난 뒤 아크로가 가장 선호하는 브랜드 중 하나로 자리잡았다.

신규 사업 수주의 전제조건이 아크로 적용인 경우도 있다. 지난 2021년 수주한 서울 서대문구 ‘북가좌6구역’ 재건축 사업이 DL이앤씨 브랜드 딜레마의 시작이다.
당시 DL이앤씨는 단지명으로 ‘드레브 372’를 제안했으나, 아크로를 적용해달라는 조합원들의 요구가 많았다. 결국 ‘아크로 드레브 372’로 바꾼 것이 롯데건설과 수주 경쟁에서 승리한 요인이라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이후 e편한세상으로 수주한 사업장에서 하이엔드 브랜드 변경 적용을 요구하는 사례가 이어지고 있다. 서울 동작구 ‘노량진8구역’은 조합이 아크로 적용을 원하자 DL이앤씨가 공사비 77% 인상을 요구해 협의 중이다. 중구 신당 8구역은 아크로 적용, 공사비 인상 등에 대한 이견으로 2021년 DL이앤씨와 시공 계약을 해지했고, 최근까지 소송전을 펼치고 있다.
■ ‘아리팍’ 명성은 어디로? 아크로 희소성 하락 우려
아크로의 희소 가치가 하락할 수 있다는 우려도 뒤따른다. 업계에서는 “아크로 브랜드 남발로 희소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나오기 시작했다”고 밝혔다. 적용 기준이 명확하지 않은 것이 원인으로 꼽힌다.
사내 브랜드심의위원회에서 ▲입지 ▲시세 ▲독보적인 상품과 서비스 ▲랜드마크 디자인 ▲미래가치 ▲분양성 ▲혁신적인 기술과 품질 ▲품질기준 등을 기준으로 아크로 적용 여부를 결정해왔다.
초기에는 아크로리버파크를 시작으로 성동구 성수동 ‘아크로서울포레스트’(☞단지정보 알아보기), 서초구 잠원동 ‘아크로리버뷰’(☞단지정보 알아보기) 등 한강변에 아크로 단지를 조성했다. 그 외 상당수 단지가 서울 한강변이거나 강남권에 위치한 각 지역의 랜드마크 단지가 됐다.
그러나 하이엔드 브랜드로는 처음으로 지방에 진출한 것이 화근이 됐다. 2021년 부산 해운대구 우동 ‘삼호가든’(우동1구역) 조합에 ‘아크로 원하이드’를 제안해 사업을 수주했다. 현재는 해당 사업지 시공 계약 해지 절차를 밟고 있으나, 이후 부산 부산진구 범전동 ‘촉진3구역’, 수영구 망미동 ‘광안A구역’, 해운대구 중동 ‘중동5구역’, 대구 수성구 수성동 ‘수성1지구’ 등을 수주했다.

최근에는 재건축에 비해 기반시설이 취약한 지역에서 추진되는 재개발 사업지까지 아크로를 적용하기도 했다. 경기 안양시 동안구 호계동 온천지구재개발인 ‘아크로 베스티뉴’는 경기권 첫 번째 아크로 적용 단지로 주목 받았다.
지난해 11월 최초 공급 때 일반공급 217가구 중 본계약 체결율을 42%에 그치는 등 기대 이하의 분양 성적을 냈다. 4호선 범계역과 가깝지만, 평촌신도시 외곽에 위치해 학원가와 거리가 먼 것이 발목을 잡았다. 여기에 일반분양가 3.3㎡(1평)당 평균 4070만원, 전용 84㎡ 기준 15억원으로 안양 역대 최고가에 다수의 당첨자들이 부담을 느꼈다는 분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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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촌신도시의 한 통합재건축구역 관계자는 “아크로 베스티뉴는 평촌신도시와 그 외 지역의 경계가 되는 경수대로 바깥에 위치하고 학원가와 거리가 멀다”며 “역세권 단지로서 이점이 있지만, 학군이 중요한 평촌에서 초반 성적이 안 좋을 것을 예상했었다”고 밝혔다.
한 건설업계 관계자는 “아크로가 초반에 하이엔드 브랜드로서 입지를 탄탄히 했지만, 지방으로 적용을 확대한 것이 아쉽다”며 “올해 서초구 ‘아크로 드 서초’ 분양이 예정돼 있고, 용산구 한남 5구역 재개발 사업 수주 가능성도 높지만, 앞으로 브랜드 경쟁력 하락에 대해 제대로 고민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raul1649@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