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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로7017 철거 논란…시장 치적쌓기용 랜드마크는 이제 그만

    입력 : 2023.09.04 07:26

    [땅집고] 박원순 전 서울시장은 2014년 서울역고가도로를 미국 뉴욕 ‘하이라인파크’처럼 만들겠다고 밝혔다. 높은 건물들이 적정한 그늘을 만들어 줘 유명 산책로가 된 뉴욕의 하이라인파크를 서울에 도입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서울로7017’엔 땡볕을 피할 곳이 없다. 결국 이곳은 여름엔 덥고 겨울엔 추운 콘크리트 덩어리가 됐다.

    오세훈 현 서울시장은 2011년 재임 당시 한강공원에 한강르네상스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호주 오페라하우스를 본떠 ‘세빛둥둥섬’을 만들었다. 이곳은 명품 브랜드 ‘펜디’ 모피 패션쇼를 열며 화려하게 개장했다. 하지만, 제대로 운영할 주체조차 찾지 못했다.고 잠수교 옆에 지어진 인공섬답게 매년 여름 물난리를 겪으면서 ‘침수 명소’란 비아냥도 나왔다. 요즘은 결혼식장으로 전락했다는 평가다.

    [땅집고] 2019년 4월 22일 오후 서울 낮 최고기온이 28도까지 치솟은 가운데 콘크리트 열기로 데워진 서울 중구‘서울로7017’이 한산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고운호 기자

    ■ 랜드마크 만든다면서 베끼기만

    서울시가 ‘랜드마크 짝퉁 도시’라는 비판을 받고 있다. 전현직 시장들이 해외 랜드마크를 우후죽순 벤치마킹하고, 시장이 교체되면 전직 시장의 설치한 시설을 방치한 결과이다. 서울로7017과 세빛둥둥섬, 동대문디지털플라자(DDP) 등이 대표적이다. 이러한 초대형 건축물을 짓는 데는 수백억원부터 많게는 수천억원 예산이 투입되지만, 정작 이용자 수와 인지도가 기대에 미치지 못한 실정이다. 서울로 7017년처럼 철거설에 휩싸이거나 ‘세금 낭비’ 지적을 받는다.

    [땅집고] 세빛둥둥섬 야경. /서울시

    막대한 예산을 투입하고도 제대로 된 랜드마크를 못 만든 이유는 무엇일까. 전문가들은 전현직 시장들이 지역 특성이나 전문가 의견을 고려하지 않은 채 외관만 화려한 랜드마크를 도입한 결과라고 지적했다. 시장 임기 내 결과물을 보이기 위해 졸속으로 사업을 추진하면서 가장 중요한 과정이 누락됐을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한 건설업계 관계자는 “랜드마크를 계속 만든다는 자체가 제대로 된 랜드마크가 없다는 방증”이라며 “랜드마크를 짓던 중 다음 시장이 들어서면 그 사업이 찬밥 신세가 되는 것도 문제”라고 말했다.
    [땅집고] 서울로7017 조경. /서울로7017 백서

    ■ 철거설 나오는 ‘서울로 7017’

    최근 철거설이 나온 서울로7017은 박 전 시장이 2014년 선거 당시 내세운 ‘서울역 하이라인’ 공약의 결과물이다. 그의 시정 철학 ‘도시 재생’을 반영한 것으로, 폐철로 부지에 나무를 심고 휴식 공간을 조성해 만든 뉴욕 공원인 하이라인파크를 모방했다. 시에 따르면 서울로7017 총사업비는 597억원이다.

    이곳은 고가도로 재활용이라는 취지를 살렸지만, 개장 이후 실사용자 편의성을 고려하지 못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서울로7017 이용자 수는 바깥 활동이 어려운 여름이나 겨울엔 더욱 줄어든다. 이곳을 이용하면 만리재로에서 남대문역까지 약 1km를 한 번에 이동할 수 있으나, 보행 도중 내려갈 방법이 없다. 눈이나 비를 피할 곳은 물론, 땡볕을 막아줄 큰 나무도 없다. 이번 철거설 역시 이용자 수가 적다는 점에서 출발했다.

    [땅집고] 서울역고가도로와 뉴욕 하이라인 철도교 특성 비교 표. 서울로7017은 설계 당시부터 여름과 겨울을 대비한 구조물이 필요하다는 지적을 받았다. /서울로7017

    오 시장이 만든 인공섬 ‘세빛둥둥섬’은 당시 시민 제안(떠다니는 섬)을 채택한 것이나, 완공 이후엔 수변에 들어섰다는 점에서 호주(오스트레일리아) 시드니 대표 상징물 ‘오페라하우스’를 벤치마킹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1973년 오페라하우스가 모습을 드러내면서 호주의 이미지는 남반구의 한 나라에서 세련된 오페라의 도시로 탈바꿈했다. 지어진 지 40년이 됐어도, 아직 오페라하우스를 보기 위해 몰려드는 관광객이 수백만명에 달한다. 이로 인한 관광수익과 고용 창출 효과도 상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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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빛둥둥섬은 상습 침수 구역인 반포 한강공원 인근에 조성돼 장마철엔 접근이 금지된다. 이곳은 ‘부유식 수상 구조물’로 설계돼 물에 떠있으나, 섬까지 가는 길목이 물에 잠긴다. 서울시 관계자는 “새빛섬은 홍수가 나서 수위가 높아지면 구조물도 같이 상승하는 ‘부유식 수상 구조물’로 설계돼 침수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땅집고] 집중호우로 한강 수위가 높아진 가운데 서울 반포대교 옆으로 세빛둥둥섬이 떠있는 모습. /조선DB

    세빛둥둥섬은 총 면적 2만382㎡ 규모에 공연·전시·컨벤션 시설을 갖췄다. 개장 초기엔 1년에 수백억원을 호가하는 높은 임대료와 초기 인테리어 투자비 등을 감당할 운영사를 찾지 못해 운영난을 겪었다. 2013년 9월 서울시와 사업시행자 ‘플로섬’이 무상사용 기간을 30년에서 20년으로 줄이고 이후 서울시에 기부채납하는 조건으로 합의하면서 문을 열었다.

    이곳은 서울도시주택공사(SH)가 사업에 출자했다는 점에서 한때 ‘세금둥둥섬’으로 불렸다. 시에 따르면 총 투입된 사업비는 500억원이다. 2006년 당시엔 50억원을 투입해 2500㎡ 규모(바지선 2척)을 조성하기로 했으나, 규모가 1만㎡로 커지면서 사업비용이 늘었다. SH는 현재 세빛섬 지분 29.9%를 가진 2대 주주다. 1대 주주 효성티앤씨 지분율은 62.25%다.

    세계적인 건축가 자하 하디드가 설계한 DDP(동대문디자인플라자)도 4000억원 이상이 투입된 랜드마크다. 시에 따르면 DDP 공사비로는 2007년 당시엔 3441억원이었으나, 문화재 발굴 등으로 인해 4212억원으로 올랐다. 일각에선 이용자가 적다는 지적이 나오지만, 일평균 3만명 이상이 방문하고 있다. 서울시 관계자는 “매년 150억원 이상 발생하는 자체 수입으로, 시설관리유지 경비와 인건비 등을 충당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곳은 한때 오 시장 작품이란 이유로, 천덕꾸러기 신세로 전락했다는 평을 받았다. 서울시 관계자는 “박 전 시장은 오 시장의 ‘디자인 서울’ 정책을 사실상 폐기하고 DDP에 행사나 임대 시설을 유치하는 데 집중했기 때문에 DDP가 활성화되지 못한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땅집고]'한강 르네상스 2.0' 프로젝트를 통해 발표된 서울의 새로운 랜드마크 '서울링(왼쪽)'과 다이슨 공기청정기 제품 DP04 (오른쪽)의 모습.

    ■ 이번엔 英 모방…전문가 “랜드마크 목표에 ‘시민’ 고려해야”

    오 시장의 역점사업인 ‘서울링’은 영국 ‘런던아이’를 차용할 전망이다. 런던아이는 지난 2000년 영국 런던 정부가 ‘런던을 새롭게 바라본다’는 의미를 담아 만든 대관람차다. 건설 당시 세계 최고 높이 대관람차로 화제가 됐는데, 세계 각국에서 휠(wheel) 관람차의 시초로 꼽힌다. 오 시장은 올해 초 런던아이 탑승 후 “(서울링 인근의) 하늘공원이나 노을공원도 결코 관광의 측면에서 불리하지 않다”며 “런던아이를 직접 타보고 나니 (서울링의 성공에) 좀 더 확신을 갖게 됐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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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문가들은 서울시가 무분별한 랜드마크 건립을 경계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임기 내에 치적을 쌓으려다 세금만 축내는 초대형 건축물이 줄줄이 생길 수 있다는 것. 한 도시재생 전문가는 “과장된 이미지의 랜드마크 시설 조성과 관광객 유치에 중점을 둔 정책들은 장소마케팅에 관한 기존 비판을 고려하면서 추진해야 한다”며 (랜드마크 건립 목표를) 도시 경쟁력 항상이 아닌 서울시민 삶의 질 개선에 둬야 한다”고 조언했다.

    부작용을 줄이기 위해선 사업 계획을 세울 때부터 꼼꼼한 의견 수립 과정을 거쳤어야 하지만, 사업성을 우선하느라 중요한 과정이 빠졌다는 지적도 나왔다. 조원철 연세대 건설환경공학과 명예교수는 “세빛둥둥섬을 만들 당시 현 위치인 잠수교 남단은 북단에 비해 와류(소용돌이)가 많이 생기는 곳이라는 점을 근거로 동부이촌동 인근에 지을 것을 제안했으나, 반영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이어 “안그래도 물이 세게 흐르는 지역에 인공섬을 설치했으니, 침수 등 문제점이 생길 수 밖에 없다”며 “공무원들이 탁상행정만 할 게 아니라, 많은 경험을 가진 전문가의 의견을 반영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랜드마크가 모방 건축물이 될 수 밖에 없는 이유가 시민 의식 때문이라는 의견도 나왔다. 천의영 경기대 건축학과 교수는 “새로운 시도를 실패했을 때 공무원들이 짊어지는 책임이 너무 크다”며 “해외 성공 사례가 없으면 공무원들이 쉽게 추진할 수 없는 분위기에서 발전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김서경 땅집고 기자 westseoul@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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