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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고층 저주' 롯데 전철 밟지 않으려…105층 GBC 포기하는 현대차

    입력 : 2023.07.25 07:42 | 수정 : 2023.07.25 12:27

    3년째 터파기 공사만 하는 GBC
    실용주의 선택한 정의선 회장 전략일까

    [땅집고] 서울 강남구 삼성동에 공사 중인 GBC(글로벌비즈니스센터) 준공 후 모습./현대차그룹

    [땅집고] 현대차그룹이 추진하는 GBC(글로벌비즈니스센터) 사업이 초고층 설계 변경을 두고 이렇다 할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다. 지난 2014년 한전 부지를 사들인 이후 10년째 답보 상태로 최근까지도 초기 공정인 터파기 공사를 진행하고 있다. GBC는 105층 1개 동(업무·숙박용 등 부속건물 제외) 짜리 초고층 빌딩 건립을 목적으로 2020년 5월 착공했지만 사업성을 이유로 50층이나 70층 높이로 낮추고 건물 개수는 늘리는 방향을 검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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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대차그룹이 초고층 대신 저층 설계로 변경을 고려하면서 GBC사업을 질질 끌자 현대차가 이른바 ‘초고층의 저주’를 피하기 위한 전략이 아니냐는 분석이 나온다. 초고층의 저주는 도이체방크의 분석가 앤드루 로런스가 제시한 가설로, 초고층 건물 건설 자체가 경제위기를 예고한다는 것이다.

    가설에 따르면 수조원에 달하는 천문학적 비용이 들어가는 초고층 빌딩 건설은 주로 부동산 버블기에 추진되는데, 정작 건물이 본격화되거나 완공 시점에는 버블이 꺼지고 경제 불황을 맞는다. 초고층 건물은 자재비, 건축비가 많이 드는 데다 공간 활용이 어렵고 운영비가 많이 들어 사업성이 떨어진다. 사업성이 떨어져도 프로젝트가 추진되는 것은 호황이 계속 이어질 것이라는 무한 낙관론을 바탕으로 기업이나 국가가 위세를 과시하기 위해 사업을 밀어붙인다.

    대표적인 사례로는 미국 뉴욕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102층, 381m)이 있다. 1930년대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이 완공됐을 때 미국은 대공황을 맞았다. 1997년 말레이시아 페트로나스 트윈타워(88층, 451.9m)가 완공할 즈음에는 아시아 외환위기가 발생했다.

    사막에서 기적을 일으켰다는 칭송을 듣던 두바이도 ‘초고층의 저주’를 피할 수 없었다. 세계 최고층인 부르즈할리파(162층, 828m)의 마무리 공사가 한창이던 2009년 두바이는 국영기업의 모라토리엄(채무상환 유예) 선언으로 경제위기에 빠졌다. 아랍에미리트의 구제금융으로 위기를 넘겼으나 경제가 회복되는 데는 수년이 걸렸다. 부르즈할리파를 뛰어넘는 건물을 목표로 했던 사우디아라비아 제다타워(167층, 1007m)는 2013년에 착공했지만 불투명한 사업성에다 코로나 여파 등으로 2018년 1월 이후 공사가 중단됐다.

    [땅집고]지난 10일 찾은 서울 강남구 삼성동 GBC(글로벌비즈니스센터) 부지 모습. /배민주 기자

    전 세계 여러 사례가 방증하듯 현대차그룹 입장에서는 초고층 빌딩의 리스크를 안고 무리해서 사업을 추진할 이유가 없다. 특히 현대차그룹을 새로 이끌고 있는 정의선 회장 입장에서는 초고층건물은 구시대 재벌경제의 상징물일 수도 있다.

    건물 높이를 기업 자존심으로 여기던 1,2세 재벌회장과 달리 젊은 회장은 ‘선택과 집중’ 전략을 중심으로 한 실용주의를 선택하고 있다. 당초 GBC 사옥 예상 건축비는 약 3조7000억원대지만, 설계를 변경하게 되면 건축 비용이 약 1조원 이상 줄어든다.

    업계에서는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이 부친인 정몽구 명예회장의 역점사업이었던 초고층 빌딩을 사실상 포기했지만, 아버지의 체면을 고려해 포기선언을 늦추고 있다고 관측하고 있다. 정의선 회장은 초고층 빌딩의 설계 변경으로 시간을 벌면서 건물에 투자해야 할 막대한 재원을 다른 곳으로 돌리고 있다.

    그 결과 실적 부진을 면치 못하던 중국 사업장의 효율화를 높이는 동시에 전기차 시장이 급성장하는 미국 사업을 공격적으로 확장하면서 실적이 개선하고 있다. 적재적소에 인력을 배치해 위기를 돌파하려는 정 회장의 전략이 적중하면서 현대차그룹은 올 상반기 중국 시장에서 4년 만에 흑자 전환에 성공했다. 미국 시장에서도 올 상반기 사상 최대 실적을 기록했다.

    반면 초고층 빌딩인 ‘롯데월드타워(롯데타워)’ 건립을 밀어붙였던 롯데그룹은 수년째 실적 부진을 면치 못하고 있다. 롯데케미칼은 지난해 2분기부터 지난 1분기까지 4분기 연속 영업 적자를 기록했다. 롯데건설은 올해 초 메리츠금융그룹과의 1조5000억원 규모 자금 협약을 통해 단기 자금 사정에 숨통을 트긴 했지만, 여전히 PF 위기가 진정되지 않는 상황이다. 고물가와 소비 침체가 겹치면서 백화점 성장세도 주춤거린다.

    2017년 개장한 한국 최고층 빌딩인 롯데타워(123층, 555m)는 롯데그룹 창업주인 고 신격호 명예회장의 숙원사업이었다. 당시 서울공항 항공기의 안정성, 교통 혼잡 우려가 겹치면서 건축허가를 받는 데만 20년 이상이 걸렸고, 총 공사비로 4조 2000억원이 들었다.

    롯데그룹이 롯데타워 건설로 한국 최고층 빌딩이라는 상징성은 얻었지만, 천문학적 자금을 건물 신축에 투자하는 사이 사업다각화와 신성장 동력 확보에 뒤처졌다는 비판도 나온다. 초고층 빌딩 탓만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공사기간을 전후해 형제의 난, 사드보복, 면세점 취소 등 롯데그룹은 유례없는 암흑기를 보냈다. /배민주 땅집고 기자 mjbae@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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