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22.11.30 08:01
인천시 미추홀구에서 발생한 집단 전세사기 피해 여진이 거세다. 사건 발생 수개월이 지났는데도 사태 수습의 기미는 보이지 않는다. 피해자들이 살던 집은 경매로 넘어가 새 주인이 나타나면 집을 비워줘야 한다. 정부가 뒤늦게 전세사기 방지 대책을 내놓았지만 피해자들에게는 먼 나라 얘기다. 땅집고가 미추홀구 집단 전세사기 피해자들의 안타까운 사연을 취재했다.
[미추홀구 전세사기 그 후] ③국가 상대로 사기행각 가담하는 전세사기 피해자들
[미추홀구 전세사기 그 후] ③국가 상대로 사기행각 가담하는 전세사기 피해자들
[땅집고] "전세보증보험 통해서 보증금만 받으면 된다니 이게 나라 상대로 사기를 치라는 말 아닌가요? 피 같은 세금이 이렇게 사기꾼에게 흘러가는 게 맞나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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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4일 땅집고가 인천 미추홀구 전세사기 피해 상황을 알아보기 위해 만난 피해자 A씨는 지금까지 드러난 규모는 빙산의 일각일 뿐 추가 전세사기 피해가 앞으로도 꾸준히 줄을 이을 것이라고 했다. 그 근거로 전세사기가 발생했던 B 아파트를 비롯한 다수의 아파트가 지금도 매물 거래 사이트에 버젓이 전세 거래 매물로 올라와 있다는 이유를 들었다. A씨는 "지금도 피해 아파트들을 대상으로 전세 계약이 이뤄지고 있지만, 계약 당사자들은 아직 자신이 피해자라는 사실을 꿈에도 모르고 있을 것이다"라며 추가 피해에 대한 우려를 내비쳤다.
피해자들이 컨설팅 업체의 꾀임에 속아 국가를 상대로 사기행각을 벌이는 가해자가 되기도 한다.
미추홀구 전세사기 피해자들에 따르면 다수의 컨설팅 업체들이 전세사기를 당한 피해자들에게 접근해 집을 싸게 사는 방법이나 주택도시보증공사(HUG)의 전세보증보험 가입을 유도하며 신규 전세 계약을 맺는 방법을 권한다고 했다.
건물에 설정된 근저당 금액을 갚아주고, 물권이 깨끗해진 상태의 매물로 만든 뒤 전세 가격을 올려 보증보험을 끼고 새로 대출을 받아 계약을 맺도록 제안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하면 주택이 경매로 넘어가더라도 근저당 금액이 없어 우선변제권에 따라 임차인이 1순위로 보증금을 돌려받을 수 있다. 대출 이자나 세금 같은 부대비용으로 인해 신규 계약을 망설이는 임차인에겐 이자나 세금을 돌려주는 ‘페이백’ 형식의 계약을 제안하면서 범법행위에 가담하게 했다.
이렇게 발생한 피해는 고스란히 국가의 몫이 된다. 임차인은 보증보험에 가입된 상태이므로 보증금을 돌려받지만, HUG가 대위변제를 해주는 식으로 피해금액을 떠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임차인이 매매가 2억원인 부동산을 보증보험을 낀 상태로 전세 2억5000만원에 계약했다 전세 사기를 당한다면 HUG는 2억5000만원의 전세보증금을 피해자에게 반환해야 한다. 여기에 실제 채권추심과정에서 드는 비용 등을 고려하면 1억5000만원 정도의 금액이 회수가 어려워 주택 1채당 평균 약 1억원 이상 손실이 발생하는 구조다.
실제로 임차인을 보호하기 위한 전세보증금반환보증보험이 전세 사기에 악용되는 사례는 급증하는 추세다. HUG에 따르면 지난해 5790억원 규모의 보증보험 사고가 발생했다. 이는 2018년 규모인 792억원에 비해 3년 만에 7배 이상 늘어난 것이다. 올해 파악된 보증보험 사고 규모는 최소 6000억원 이상인 것으로 알려졌다.
올해 초 조정된 보증보험 가입조건이 전세사기 급증에 영향을 줬다는 비판도 있다. 국토부와 HUG는 지난 1월 임대사업자의 부채비율이 100%인 경우에도 보증보험 가입을 한시적으로 허용했다. 부채비율이 100%를 초과해 보증에 가입하지 못하는 임대사업자를 고려한 조치였으나 이를 오히려 악용하는 사례들로 인해 보증보험 사고 규모를 키우는 결과로 이어졌다.
피해자 C씨는 “미추홀구 전세사기가 터지면서 컨설팅 업체들이 해당 지역 임차인들에게 접근하는 사례가 많았다”면서 “당시에 근저당액을 갚아줄 테니 대출을 받아 보증보험을 드는 조건으로 신규계약을 맺자는 제안을 받아들인 가구들도 꽤 있는 걸로 알고 있다. 그들 입장에서는 사기 일당의 범법행위에 가담한 것이 되기 때문에 전세 사기 피해가 널리 알려지는 것을 원하지 않고 새로 맺은 계약이 만료되면 조용히 보증금만 반환받아 나가기를 원하는 상황이다”라고 설명했다.
피해 지원을 받기 위해 수차례 정부와 지자체에 지원을 요청했던 피해자 A씨는 “이런 컨설팅 업체의 제안이 임차인 입장에서는 혹할 수 있겠지만 이건 나라 상대로 세금 빼먹는 사기나 다름없다. 정부고 지자체고 다 방관하고 있다고 생각한다”며 “컨설팅 업체를 빙자한 사기꾼들은 돈만 돌려받으면 되지 않느냐는 식이다. 상담을 위해 찾아간 지자체 주무관은 상황 파악을 전혀 못하고 ‘임대인이 보험을 끼고 100원짜리를 110원에 빌려주는 게 사기는 아니지 않느냐’고 말해 어이가 없었다” 고 목소리를 높였다.
사기로 인한 보증보험 사고를 방지하기 위해 보증보험 문턱을 높여야 한다는 개편 필요성은 꾸준히 제기되고 있다. 하지만 임차인 보호가 허술해질 수 있는 만큼 보완장치가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HUG 관계자는 “지난 9월 발표된 전세사기방지 대책에 따라 전세 보증 시 집값 산정을 공시가격의 140%로 낮추는 방안을 채택했다”며 “현재 발생하는 보증보험 사고들은 민사 문제가 함께 얽힌 사안들이라 HUG 자체적으로 보완책을 마련하기엔 어려운 부분이 있다”고 전했다.
전세 사기로 발생하는 임차인들의 피해는 상당하다. 임차인 입장에서는 전세금을 반환받는다고 할지라도 전세금을 돌려받기까지 걸리는 2~3년 동안 전세대출의 이자 및 연체 이자와 내용증명, 공시송달을 위한 법무비 등을 부담해야 한다. 앞서 정부가 전세사기 피해 방지대책으로 임대차 계약 전 집주인의 세금체납 여부와 은행 등이 선순위로 설정한 전·월세 보증금이 있는지 확인할 수 있도록 했지만, 정보제공을 집주인에게 강제할 수 없고 공개를 거부하는 집주인 처벌 조항이 마련되지 않아 그 한계는 여전할 것으로 보인다. /배민주 땅집고 기자 mjbae@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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