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22.11.28 07:30 | 수정 : 2022.11.28 07:31
인천시 미추홀구에서 발생한 집단 전세사기 피해 여진이 거세다. 사건 발생 수개월이 지났는데도 사태 수습의 기미는 보이지 않는다. 피해자들이 살던 집은 경매로 넘어가 새 주인이 나타나면 집을 비워줘야 한다. 정부가 뒤늦게 전세사기 방지 대책을 내놓았지만 피해자들에게는 먼 나라 얘기다. 땅집고가 미추홀구 집단 전세사기 피해자들의 안타까운 사연을 취재했다.
[미추홀구 전세사기 그 후] ①피해 주택만 19단지…전세사기로 동네 전체가 쑥대밭
[미추홀구 전세사기 그 후] ①피해 주택만 19단지…전세사기로 동네 전체가 쑥대밭
[땅집고] “전세사기 당한 뉴스 나오면 남 얘긴 줄만 알았지 내 얘기가 될 거라고 상상이나 했겠어요? 빌라나 오피스텔 사는 사람들은 사각지대에서 법적인 보호를 전혀 받지 못하는 상황이에요. 정부나 지자체에 절박하게 지원을 요청해도 특별한 해결 방법 없이 ‘힘내라’는 답변이 돌아오니 헛웃음만 나오던데요.”
지난 9월 인천 미추홀구에서 발생한 '깡통전세 사기' 피해 주택(아파트·빌라·오피스텔)은 19단지에 달한다. 이 중 618가구가 임의경매로 넘어갔고 이로 인해 발생한 피해금액은 약 426억원 규모로 추정된다. 연초부터 인천 경찰청에 전세 사기 관련 고소 건이 100건이 넘게 접수되자 인천 경찰청은 피해 지역 중개업소와 임대업자 주거지를 집중 수사하고 특별 단속에 나섰다.
인천 미추홀구 전세사기 피해자들은 지난 8월 자신들이 거주하는 주택 우편함에 법원경매 전문 공인중개사무소의 홍보 전단이 대량으로 꽂힌 걸 보고서야 정신이 번쩍 들더라고 했다. 홍보 전단에는 '당신의 아파트가 경매 물건으로 나왔으니 도움이 필요하면 연락하라'는 내용이 담겼다.
그때서야 등기부등본이 위조된 사실을 알았고 사기 피해 정황이 속속 드러나면서 시작부터 계획적으로 벌인 사기였다는 걸 알 수 있게 됐다고 했다.
지난 24일 땅집고 취재진이 만난 깡통전세 사기 피해자 A씨는 "경매 사이트에서 집이 낙찰될까 봐 하루하루 마음을 졸이면서 생활하고 있다"고 했다. 집이 낙찰되고 집주인이 바뀌면 강제 퇴거 조치로 인해 길어도 두세 달 안에는 집을 비워줘야 하기 때문이다. 지자체와 전세피해지원센터 등에 해결책을 문의해봐도 사기를 입증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비관적인 답변만 돌아올 뿐이라고 했다.
또 다른 피해자 B씨는 "경매로 넘어가더라도 우선변제권이 없어 보증금이 은행으로 다 넘어가고 나면 임차인이 받을 수 있는 돈이 거의 없다"며 "당장 애들을 데리고 월셋집을 전전해야 하는 상황이 닥쳐 막막하기만 하다"고 하소연했다. 전세 보증금으로 지불했던 8000만원 중 B씨가 돌려받을 수 있는 돈은 500만원이 채 되지 않는다.
현재까지 파악된 것 보다 피해 규모가 훨씬 클 것이라는 관측도 있다. 아직 본인이 전세 사기의 피해자라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한 임차인도 있고, 소송 비용과 긴 소송기간 등을 이유로 신고조차 않고 반포기 상태에 있는 임차인도 있기 때문이다. 주택도시보증공사(HUG)에 따르면 올들어 9월까지 전국에서 발생한 보증사고는 총 551건, 1089억원 규모다. 이 가운데 서울 강서구와 인천 미추홀구가 보증사고 발생 1위와 2위에 이름을 올렸다.
강서구와 미추홀구에 깡통전세 사기가 집중된 까닭은 오피스텔·빌라·나홀로 아파트가 밀집된 지역이기 때문이다. 가구 수가 많지 않은 이런 유형의 주택은 거래가 활발하지 않아 시세 파악이 어렵다는 맹점이 있다.
사기 가해자들은 이런 점을 노렸다. 시세를 알기 어려운 임차인들에게 시세보다 싸게 나온 주택이라고 계약 체결을 설득하고, 높은 근저당 액수를 우려하면 앞으로 문제가 생길시 이를 전적으로 책임지겠다는 내용의 '이행보증서'를 써주면서 임차인들을 안심시켰다.
임차인들은 일부 주택이 경매에 넘어간 후에야 임대인·중개인·관리소가 모두 한통속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고 한다. 수백세대의 임대차 계약을 오직 5~6군데의 중개소에서 진행했으며, 한 건물의 임대인이 다른 건물의 관리소장을 맡거나 중개보조인으로 활동하는 등 바지사장을 내세워 사기를 쳤다는 것이다.
피해자 A씨는 "소수의 가구에서 이런 일이 발생했으면 내가 멍청했구나 하겠지만 이렇게 집단적으로 계획하고 벌이는 사기를 누가 막을 수 있겠느냐"면서 "최근에 계약을 연장하면서 전반적으로 보증금을 1000만원씩 올렸었는데 이렇게 증액을 해놓고 이자를 안 내기 시작했다. 이 모든 정황이 임차주택을 전부 경매로 다 넘기려는 밑그림이었다고 생각한다"고 설명했다.
이런 집단 전세사기 사건이 발생해도 적극적인 법적 대응이 어렵다는 한계도 있다.
미추홀구 전세사기 피해자 C씨는 지난 16일 인천세무서에서 발급받은 ‘미추홀구 전세사기피해 대책위원회’ 고유번호증을 집어들며, “법률지원공단에서 집단적으로 대응을 해야 목소리를 낼 수 있다고 조언해 지난주에 미추홀구 전세사기 피해 대책위원회를 만들고 등록했다”고 했다. 그러면서 “이런 일을 겪으면서 소수가 목소리를 내면 절대 들어주질 않는다는 걸 알았다. 오죽했으면 생업에 바쁜 사람들이 모여 단체까지 만들었겠냐”고 속사정을 밝혔다.
피해자들은 다가오는 겨울이 두렵다고 했다. A씨는 “1년 중 1월이 가장 추울텐데 집을 비워줘야 하는 시기와 맞물리니 유독 더 추운 시기가 될 것 같다. 평생 모아둔 돈도 떼이고 집까지 뺏긴 상태로 거리로 나가야 하는데 앞이 캄캄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사기 피해를 입은 아랫집 20대 청년은 대출 만기까지 도래해 월에 200만원씩 갚아나가야 한다. 월급을 전부 빚 갚는 데 써야 하는 상황에 당장 만기 연장이라도 해줬으면 좋겠는데 정부가 도대체 무엇을 하고 있는지 모르겠다”고 답답함을 호소했다.
전세사기와 깡통전세로 인한 피해가 급속도로 늘어나자 정부가 부랴부랴 지원 대책을 내놓고 임대차 제도 개선에 나섰지만 피해자들은 당장 도움이 되는 게 없다고 했다. 전세사기 피해자를 돕는 전세사기 피해지원센터는 서울 강서구에 단 1곳만 운영되고 있으며, 해당 센터가 전국의 사기 피해를 담당하고 있어 피해자들이 도움을 받기 어려운 현실이다. /배민주 땅집고 기자 mjbae@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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