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집고

"한국인들은 쓸데없이 공간을 넓게 쓰려고 하죠"

뉴스 김리영 인턴기자
입력 2017.11.12 06:55
2017 조선일보 라이프쇼에서 임형남 가온건축 대표가 강연하고 있다. /김연정 객원기자


협소주택 등 작은 집 열풍의 선두주자로 꼽히는 임형남 가온건축 대표. 그는 최근 열린 ‘2017 조선일보 라이프쇼’에서 단순하면서도 모든 것을 갖춘 집과 삶의 방식에 대해 강연했다.

임 대표는 1999년 아내이자 동료인 노은주 건축가와 함께 가온건축을 설립한 후 2011년 문화체육관광부 공간디자인대상, 2012년 한국건축가협회 아천상 등을 수상했다. 작은 집 짓기를 시작한 것은 6년 전이다.

■최소한의 공간에 모든 걸 갖춰야

임 대표는 전 세계적으로 각광받고 있는 작은 집의 개념을 소개했다. 그는 “2008년 서브프라임모기지 사태 이후 미국에서는 젊은층 중심으로 ‘작은 집 운동’이 벌어졌다. 주택 대출 이자를 감당하지 못할 정도의 부동산 위기를 겪은 이들은 자신이 소화할 수 있는 크기의 집에서 살아갈 것을 주장하고 있다”며 “좋은 집은 최소한의 공간에서 필요한 것을 모두 갖춘 집”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공간에 대한 개념을 바꿔볼 것을 제안했다. 임 대표는 "작은 집을 지으면서 우리나라 사람들이 쓸데없이 공간을 넓게 쓰는 경향이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고 말했다. 예를 들어, 쓰지도 않는 거실을 크게 만들고, 잘 보지도 않는 TV를 거실에 놓는다. 침실에 들어가는 침대는 꼭 크길 바라고, 손님방 하나 정도는 만들기를 원한다는 것이다.

“한국 사람들에게 집이란 침대와 소파, 주방가구를 놓을 공간으로 인식되면서 큰 집이 필요하다는 고정관념이 형성됐다. 그러나 한 공간이 거실과 주방, 침실이 될 수도 있다. 보통 밥을 먹으면서 TV를 보기 때문에 부엌과 거실이 합쳐진 '멀티스페이스(복합 공간)' 하나면 충분하다. 이렇게 줄이다 보면 1인당 4인 가족 기준으로 건평이 25평만 되도 충분하다. 집은 물리적인 면적보다 심리적인 면적이 더 중요하다.”

그렇다면 면적과 보여지는 것에 치중된 집이 아닌 편안하고 나의 동선(動線)에 최적화된 집은 어떤 모습일까. 임 대표는 그동안 10평 남짓한 크기로 직접 설계한 몇몇의 작은 집 이야기를 펼쳤다.

■들꽃 품은 240만원짜리 마당

250만원으로 만든 들꽃집 마당. /가온건축 제공ⓒ박영채 작가


올해로 지은 지 3년된 ‘들꽃집’은 턱없이 부족했던 공사비로 어렵게 마당을 만든 현장이었다. 임 대표는 건축주가 원하는 것을 실현하기 위해 정말 고군분투했다고 했다.

사실상 폐허였던 이곳은 건축주가 대학생 시절 서울 성북동 마을을 지나면서 마음에 담아뒀던 장소다. 경기 안양에 살던 아파트를 처분하고 어렵게 공사비를 마련한 건축주는 임 대표에게 3층 집 건축을 의뢰했다. 거실과 주방, 다락방과 작은 누마루까지 갖춘 알찬 공간이 만들어졌다. 마지막으로 마당을 만들어야 했는데, 공사가 막바지에 접어들자 딱 240만원이 남았다.

그 돈으로는 도저히 조경 공사를 할 수 없었다. 임 대표는 이곳 저곳에서 조언을 얻어가며 아이디어를 발휘하기 시작했다. 결국 마당에 들꽃을 심기로 한다. 야생에서도 잘 자라는 들꽃은 복잡한 시공이 필요하지 않았고 비용도 들지 않았다. 남은 240만원으로는 감나무 한그루를 사서 심었다. 여유롭지 못한 형편이었지만 건축주는 원하던 멋진 마당을 갖게 됐다.

■절경이 한 눈에 들어오는 집…충남 ‘금산주택’

충남 금산주택 내부에서 바깥 경치를 바라본 모습. /가온건축 제공ⓒ박영채 작가


충남 ‘금산주택’은 10평짜리 한옥집이다. 설계만 9개월이 걸렸다. 임 대표는 주변의 산과 들이 아름답게 둘러싼 풍경을 집에 담아내기 위해 산의 모습과 바람이 흐르는 방향을 관찰하고 그려내기만 수십 번 거듭했다. 그 결과 주변 풍경을 빌리는 ‘차경(借景)’이란 한옥의 미학을 제대로 구현해낼 수 있었다.

10평짜리 한옥인 금산주택 내부. /가온건축 제공ⓒ박영채 작가


그는 “한옥의 여러 문들은 마치 폴딩 도어처럼 접었다, 폈다를 반복하면서 공간을 만들어내고 숨긴다. 안방이 공부방이 되기도 하고, 침실과 거실로 변하기도 한다. 또 바깥의 바람을 막아주기도 하지만 아름다운 풍경을 담아내는 프레임이 되기도 한다”고 했다. 목조 주택으로 집에 들인 자재와 구조는 복잡할 것이 없지만 눈에 들어오는 풍경만큼은 화려한 한옥집이 완성됐다. 임 대표는 이 주택으로 2011년 한국공간디자인대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연무에 휩싸인 금산주택. /가온건축 제공ⓒ박영채 작가


■창고를 개조한 29살 동갑내기 부부의 신혼집


창고를 개조해 지은 언포게터블 전경. /가온건축 제공ⓒ박영채 작가


주택 ‘언포게터블’은 대구의 낡은 창고를 개조해 젊은 건축주의 신접살림을 차릴 공간으로 꾸민 집이다. 대구의 아파트 한 채를 살 자금을 어렵사리 마련한 두 사람은 아파트보단 직접 지은 집에 살고 싶었다. 그들은 임 대표에게 낡은 창고 하나를 바꿔달라고 부탁했다.

언포게터블 집의 외벽에 그려진 그림. /가온건축 제공ⓒ박영채 작가


임 대표는 이곳을 복층(復層) 30평 주택으로 설계했다. 공간이 더 있었지만 공사비에 한계가 있어 앞으로 부부가 노력해서 더 시공할 수 있도록 남겨뒀다. 1층은 주방과 서재로 꾸미고 2층은 거실과 응접실을 만들었다. 집 일부 공간에 프로젝터를 달아 영화관처럼 큰 화면으로 영상을 볼 수 있도록 꾸몄다. 밖은 모두 논밭으로 봄·여름·가을·겨울의 변화를 모두 감상할 수 있었다. 창밖의 풍경을 편안하게 볼 수 있도록 창옆에 걸터앉을 수 있는 공간도 만들었다.

언포게터블 주택 내부에는 영화를 볼 수 있는 프로젝터가 설치됐다. /가온건축 제공ⓒ박영채 작가


언포게터블 주택의 2층 거실. /가온건축 제공ⓒ박영채 작가


임 대표는 서울 제기동 약재골목에 만든 신혼집과 광주광역시 무등산에 지은 노화가의 집, 충남 공주의 작은 카페 등 직접 설계한 협소주택을 소개했다.

임 대표는 "최근 작은 집 열풍을 주도하는 건 신혼부부"라고 말했다. 그는 "요즘 20대 젊은 신혼부부가 서울에 살기엔 집값이 비싸기도 하고, 남들과 다르게 살고 싶기도 하다 보니 지하철이 다니는 가평, 강촌, 용문, 양평 등에 땅을 싸게 사서 집을 짓는 경우가 많다"며 "이럴 경우 땅값을 제외하고 평당 600만원쯤 든다"고 말했다. 그는 "물론 집을 짓는다는 건 환금성은 보장하기 어렵지만, 웬만한 서울 전셋값보다 저렴하게 개성 있는 주거 공간을 마련할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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