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내 마감재로 어떤 나무를 쓰면 좋을까. 벽돌은 어떻게 쌓아야 더 효과적으로 연출할 수 있을까. 집짓기나 리모델링, 인테리어에 관심은 많지만 막상 실행에 옮기려면 막막한 게 현실입니다. 조선일보 땅집고(realty.chosun.com)는 건축출판사 감씨(garmSSI)와 함께 나무, 벽돌, 콘크리트 등을 독창적 방법으로 사용한 건축가를 만나 그들의 작업에 담긴 건축 재료 응용법을 소개합니다.
[심영규의 建築재료 이야기] ③벽돌에 대한 고정관념을 깨다
이정훈 건축가는 벽돌의 물리적 성질과 쌓는 방법에 관심이 많다. 다양한 틀어쌓기와 자르기를 시도해 디자인이 돋보이는 건물을 설계했다. ‘커브하우스’는 쌓기 방법을, ‘타임스태킹’은 반복을, ‘스케일링하우스’는 다양한 크기로 자르는 실험을 진행했다. 그에게 벽돌의 매력과 미래에 대해 물었다.
■크로싱브릭스 건축개요
설계: 이정훈
위치: 서울시 강남구 역삼동
대지면적: 330.6㎡
연면적: 859.86㎡
건축규모: 지하 1층, 지상 5층
구조: 철근콘크리트
마감: 흑색벽돌
완공: 2015년 9월
사진: 남궁선
-완공 프로젝트 중 벽돌을 활용한 작업이 많다. 특별한 이유가 있나? 벽돌의 매력은?
“작은 단위인 픽셀의 조합으로 전체적인 형태를 만든다는 점이다. 콘크리트처럼 무거운 질감이 아니라, 먼저 덩어리를 만든 후 잘게 쪼개 픽셀을 조합해 덩어리로 재구축하는 과정이 인상적이다. 그림에 비유하자면 노출콘크리트가 한 획씩 긋는 수묵화라면, 벽돌은 점묘화같다. 벽돌은 수작업을 거쳐 정교하게 만들고, 수정이 가능하다는 점도 매력이다.”
-조적(組積)에 특별히 관심이 많은 듯하다.
“조적은 하나의 겉포장이자 표피이면서도 무게를 지탱하는 구조체가 된다. 하나씩 일일이 쌓아가는 과정이 매력적이다. 우리 설계사무소는 그래픽 작업 위주의 복합적인 패턴을 선호한다. 그러다 보니 도면이 많고 복잡해 시공이 완벽하게 이뤄지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벽돌은 수공예적 가치가 가장 잘 드러나는 재료다. 틀어쌓고, 비켜쌓는 등 복잡한 건축가의 생각을 시공자가 수작업으로 쌓아야 한다. 현장에서도 건축가의 개입이 필수적이다. 건축 재료로 벽돌을 주로 사용하는 스위스에서는 로봇이 시공한다. 최근 벽돌제조 공정을 보면 해외 기술을 도입한 최첨단 기계장비를 사용하지만 정작 시공은 수공예다.”
-벽돌은 단순해 보이지만 최근 여러 크기와 색 그리고 질감의 벽돌이 다양하게 개발되고 있다. 벽돌의 물성 중 주로 어떤 부분을 보고 선택하며 관심을 두고 있나?
“상품평이나 후기 등을 통해 힘을 견디는 ‘압축강도’, 수분을 얼마나 함유하고 있는가를 나타내는 ‘함수율’, 색감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한다. 독특한 형태의 주형틀을 만들어 새로운 모양의 벽돌을 주문 제작하려고 계획 중이다. 벽돌을 각각 다른 크기로 자르고 양각과 음각으로 쌓아 독창적 형태를 만드는 방법에도 관심이 많다. 벽돌이 직사각형이라는 생각 역시 고정 관념이다. 사각형 창을 통해 들어오는 빛을 보면 빛에 대한 정의가 관념적으로 생긴다. 벽돌의 모양에 따라 생기는 그림자가 다양해진다. 이처럼 벽돌은 적층을 통해 새로운 형상을 만들 수 있는 유일한 재료다.”
■스케일링하우스 건축개요
설계: 이정훈
위치: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운중동
대지면적: 256.3㎡
연면적: 213.69㎡
건축규모: 지상 5층, 지하 1층
구조: 철근콘크리트
마감: 현무암벽돌
완공: 2013년 9월
사진: 남궁선
-한국은 벽돌의 종류가 제한적이고 업체들도 영세하다.
“스위스 건축가 피터 줌토르가 설계한 독일 ‘콜룸바 미술관’은 건축가의 역량과 기존의 오래된 유적이 함께 어우러져 걸작이 됐다. 국내에서는 주로 기성품을 가져다 쓴다. 벽돌을 주문하려면 최소 6만장을 넘게 찍어야 하는데 일반 주택 공사에 주문 제작한 벽돌을 쓰는 건 불가능하다.
시공 과정에서도 크기, 질감, 색상 등을 바꾸면서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친다. 수분을 머금고 내뿜는 특성을 가진 벽돌은 방수(防水) 재료가 아니기 때문에 건물 내외를 방수처리하는 기술이 별도로 필요하다. 외부의 열, 추위를 차단해야 하는 친환경적인 ‘패시브 주택’에는 방수는 물론 단열까지 고려한 시공을 해야 한다. 벽돌은 충분히 매력적인 재료인 동시에 많은 과제를 안고 있는 재료다.”
-국내에선 쌓는 방법이 제한적이다.
“벽돌 조적을 돕는 철물 개발도 생각했다. 문제는 단가다. 제품을 개발하려면 구조 성능부터 세부적인 시험 성능을 점검해야 한다. 이런 문제가 해결된다면 벽돌의 가능성은 무궁무진하다. 그럼에도 구조를 계산하고, 새로운 철물이나 철골 재료를 사용하면 공사비가 상승할 수밖에 없어 현실적인 한계에 부딪힌다. 일부 건축가들은 벽돌로 고층 건물도 디자인한 사례가 있다.”
■커빙하우스 건축개요
설계: 이정훈
위치: 경기도 용인시 수지구 신봉동
대지면적: 529㎡
연면적: 186.33㎡
건축규모: 지상 3층
구조: 철근콘크리트
마감: 노출콘크리트, 벽돌
완공: 2012년 11월
사진: 남궁선
■타임스태킹하우스 건축개요
설계: 이정훈
위치: 서울시 종로구 구의동
대지면적: 196.3㎡
건축규모: 지상 2층, 지하 1층
구조: 철근콘크리트
마감: 붉은벽돌
완공: 2014년 2월
사진: 남궁선
-벽돌은 지진에 취약하다고 하는데 안전은 어떤가?
“지진이 잦은 일본에서 벽돌 건물을 찾는 건 쉽지 않다. 그만큼 벽돌은 지진에 취약하다. 지진에 완벽하게 대응할 수 있는 구조는 없다. 완벽한 내진(耐震) 성능을 갖췄더라도 외벽은 파손되기 마련이다. 획기적인 대안은 없지만, 벽돌을 쌓을 때 사용하는 철골 등을 규격화해 구조 손상을 최소화해야 한다. 벽돌 가운데 구멍에 철골을 넣어 보강하는 시도가 가능하다.”
-벽돌은 유리나 콘크리트, 철에 비해 낡고 오래된 재료라는 인식이 있다. 벽돌이 새로운 재료로 다시 주목받을 가능성은?
“벽돌제조 회사들이 건축가들과 협업해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야 한다. 한국의 벽돌 제조 시장은 영세한 업체가 많아 투자 여력이 없다. 특별한 건축가나 독창적인 디자인으로 주목받아도 그걸로 그치고 2차적인 무언가로 이어지지 않는다. 시장의 생태계가 순환돼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다. 지금같은 방식으론 벽돌 제조 시장에 비전이 없다. 새로운 시도가 없는 건축가들의 태도 역시 문제다.”
이정훈 조호건축사사무소 대표는 성균관대에서 건축과 철학을 전공했고 프랑스 파리건축학교를 최우수로 졸업했다. 반 시게루, 자하 하디드사무소 등에서 실무를 익혔다. 2013년 미국 건축잡지 ‘아키텍추럴 레코드’(Architectural Record)에서 차세대 10대 건축가로 선정됐다. 감각적인 재료 사용과 파격적인 디자인으로 주목받고 있다.
심영규 프로젝트데이 건축PD는 한양대 건축공학과를 나와 건축전문지 공간(SPACE)에서 기자로 일했다. 현재 ‘건축재료 처방전’ 감(GARM)의 편집장이며 전시와 출판뿐 아니라 비즈니스플랫폼도 기획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