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점점 어두워지는 '부동산 터널'
팔려는 집만 쌓이며 계속해서 값 내려
강남 대형 심리적 저지선 10억 무너져
건설사 연쇄부도 땐 금융 부실 우려도
경기도 분당에 사는 박모(34)씨는 올해 초 자신이 살고 있는 A아파트 105㎡(32평)를 7억원에 매물로 내놓았다. 3년 전 대출을 무리하게 받아 집을 샀는데 불어나는 이자를 감당하지 못해 집을 팔기로 한 것. 그러나 현재 매도 가격은 5억8000만원. 사려는 사람이 전혀 없어 가격을 수천만원씩 서너 차례 내리다 보니 최고가 대비 20% 가까이 낮아진 것이다.
분당뿐 만이 아니다. 서울 강남권과 양천구 목동, 경기도 과천·용인시 등 과거 집값 상승을 주도했던 '버블 세븐' 지역의 주택들도 가격을 대폭 내린 급매물만 거래되고 있는 실정이다. 호가(呼價) 중심의 통계로는 주택 가격이 약보합세 정도를 유지하고 있지만, 현장 중개업소들은 "체감 거래가격은 최고가 대비 20~30% 정도 이미 하락했다"고 밝혔다. 게다가 미분양 주택이 16만 가구를 넘어서면서, 팔리지 않는 새 아파트가 30% 할인된 가격에 '땡처리' 되는가 하면 건설업계의 자금 경색이 심화되는 등 부동산 시장의 추락은 끝이 보이지 않는다.
◆집값 추가 하락 가능성도 높아
서울 강남에서는 대형 아파트 가격의 심리적 저지선으로 여겨지던 10억원이 무너지고 있다. 작년 1월 11억8000만원까지 올랐던 서초구 잠원동 B아파트 132㎡는 현재 9억7500만원에 매물이 나와 있다. N부동산중개업소 김모(53) 대표는 "강남에서 40평대 아파트 가격이 10억원 이하로 떨어지면 매수세가 몰릴 것이라는 관측이 많았다"면서 "하지만 사려는 사람이 없어 가격은 계속 떨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정부가 양도세 완화 등 각종 경기 부양책을 내놓았지만 고가 아파트 하락세가 지속되는 것은 미국발 금융위기에다 실물 경제 침체가 겹치면서 추가 하락 가능성이 제기되기 때문.
'스피드뱅크' 박원갑 소장은 "정부가 부동산 규제완화책을 내놓아도 금리 오름세에다 경기 침체 가능성이 높아지면서 매수세력이 나서지 않고 있다"며 "급매물 가격으로만 보면 이미 주택시장의 붕괴는 시작됐다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지방 미분양, 땡처리·전세 전환
국내 대형 건설업체인 C사는 최근 부산에 지은 아파트 200여 가구를 분양가보다 30% 낮은 가격으로 분양대행업체에 통째로 팔아 넘겼다. 준공 후 미분양 아파트를 분양 대신 전세로 대체해 처분하는 건설사도 늘고 있다. 10~15% 할인된 가격에도 아파트가 팔리지 않자 2년간 임대해서라도 아파트 단지에서 빈 집을 없애겠다는 계산에서다.
D건설사는 올 상반기 대구 달서구에서 준공 후에도 입주가 되지 않은 아파트 81가구를 분양가(2억2000만원)의 3분의 1 수준인 전세금(8500만원)만 받고 모두 처분했다. 지난 2월, 같은 지역에서 아파트를 준공한 E건설사도 총 940가구 중 180가구가 빈 집으로 계속 남아 있자 이를 전세로 돌리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금융부실 가능성도 배제 못해
주택 가격하락으로 금융 부실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지난 달 서울중앙지법 경매 법정에서는 서울 도곡동 '타워팰리스'(165㎡형)가 19억3600만원에 낙찰됐다. 이는 감정가(28억원)보다 30% 이상 낮은 가격. 이로 인해 이 아파트 주인에게 돈을 빌려준 F저축은행은 결국 남은 대출금 중 4억원 이상을 돌려받지 못하게 됐다.
정부가 2006년부터 대출규제에 본격 나섰지만 규제 강도가 약한 저축은행 등은 집값 하락으로 가격이 대출금액을 상회한 곳도 많다. 건설업계 관계자는 "지금은 대형 건설사들도 자금 회전이 잘 안 될 정도로 건설 경기가 악화돼 있다"며 "이런 상황이 지속되면 건설사들의 연쇄 부도가 일어나고 금융기관의 부실이 심화될 수 있다"고 말했다.
연세대 서승환 교수는 "집값이 급등하는 것도 안 좋지만 더 큰 문제는 가파르게 하락하며 경제 전반을 불안케 하는 것"이라며 "시장이 정상적인 거래와 함께 서서히 안정을 찾을 수 있도록 정부가 관리·유도해 나가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