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 미분양 쌓여… 다 짓고도 빈 아파트 3만4000가구
지난 2일 오후 대구시 달서구 성당동. 지어진 지 20년쯤 돼 보이는 허름한 주택과 상가들 한가운데 말끔하게 단장한 '미니 신도시'급인 7000여 가구의 대단지가 들어서 있었다. 하지만 입주를 시작한 지 10개월이 넘었는데도 단지 안팎은 황량함 그 자체였다. 저녁이 되자 분위기는 더욱 을씨년스러웠다. 밤 10시쯤, 아파트 한 동 전체에서 창 밖으로 불빛이 새어 나오는 집은 불과 2~3채였고 가로등 불빛만으로는 반대편에서 다가오는 사람들 얼굴조차 쉽게 구분하기 힘들 정도였다.
새로 형성된 상가들도 상황은 마찬가지. 주변 수퍼마켓과 호프집, 제과점, 세탁소들도 찾아오는 손님은 거의 없고 불만 환하게 밝히고 있었다. 지난 4월 이곳에 이사 온 김모(여·27)씨는 "밤에는 여자 혼자서 산책하거나 엘리베이터를 타기가 무서울 정도"라고 말했다.
끝이 보이지 않는 주택경기 침체로 아파트 미분양 사태가 장기화되면서 지방에 '불 꺼진 도시'가 늘어나고 있다. 3~4년 전 착공 당시 대거 미분양됐던 아파트들이 속속 완공되고 있지만 여전히 입주자를 채우지 못하고 있다.
지난 2006년 가을에 완공된 충남 서산의 한 아파트 역시 입주를 시작한 지 2년이 다 돼 가지만 전체 2000가구 중 70% 정도가 여전히 불 꺼진 상태로 남아 있다. 단지 안에 마련된 상가도 썰렁하기는 마찬가지다.
이곳에 사는 이모(53)씨는 "입주한 주민이 적다 보니 상가 임대가 잘 안 되고, 상권이 제대로 형성되지 않아 입주민의 생활이 불편해지는 악순환이 계속되고 있다"고 말했다.
국토해양부에 따르면 지난 1월 2만544가구였던 지방의 준공 후 미분양 아파트는 지난 5월 2만723가구, 6월 3만4029가구로 급격히 증가했다. 더욱이 미분양 사태가 단순히 건설사의 자금 압박과 입주민의 불편을 넘어 주변 상권까지 무너트리면서 지역 경제 침체로 이어지고 있다. 지역 주민을 먹여 살릴 대표 산업이 없는 지방에서 건설경기마저 무너지면 그동안 근근이 버텨오던 영세 산업들이 도산 위기에 처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대구의 한 건설광고대행사 대표는 "이런 상황이 몇 달만 지속되면 현재 40명인 직원 수를 절반으로 줄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김선덕 건설산업전략연구소장은 "최근 건설사들이 자금난 해소를 위해 미분양 아파트를 전세로 임대할 정도로 '아파트는 지으면 팔린다'는 신화는 이제 끝났다"며 "건설 경기는 물론 연관 산업들도 꽁꽁 얼어붙으면서 지역 경제가 서서히 죽어가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