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26.11.04 06:00
실거주 의무에 전세 품귀…매매 쌓이고 거래는 뚝
대출 규제로 매매는 5억 급락…퇴로 없는 이재명 정부 정책
[땅집고] “1만2000가구가 넘는 아파트에서 전 평형 통틀어 당장 입주할 수 있는 전세 매물이 10개도 안 된다는 게 말이 됩니까. 대출은 막히고 토지거래허가제까지 겹치면서 전세가 씨가 말랐어요.” (둔촌동 김영 다원공인중개사무소 대표)
3일 오전 찾은 서울 강동구 둔촌동 ‘올림픽파크포레온’. 국내에서도 최대 규모를 자랑하는 1만2032가구 아파트 단지에서 전세 매물을 찾기가 소위 ‘하늘의 별 따기’다. 2024년 11월 입주를 시작한 이 단지는 2년 만에 첫 전세 계약 만기를 맞았지만, 현지 공인중개업소에 따르면 당장 입주할 수 있는 전세 매물은 전 평형을 통틀어 10개 안팎에 불과하다. 집주인들이 직접 입주하기 위해 전세 물량을 거둬들이면서 기존 세입자들은 살던 집을 떠나거나 더 작은 평형으로 옮겨야 하는 처지에 놓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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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둔촌주공 살리려 유예한 실거주 의무…2년 뒤 전세난으로
전세 매물이 급감한 가장 큰 배경은 일반분양 수분양자들에게 적용된 ‘실거주 의무’다. 2024년 2월 국회를 통과한 주택법 개정안은 분양가상한제 아파트의 실거주 의무 시작 시점을 ‘최초 입주 가능일’에서 ‘최초 입주 가능일부터 3년 이내’로 늦췄다. 당시 부동산 경기 침체와 고금리로 잔금 마련에 어려움을 겪던 수분양자들이 전세보증금으로 잔금을 치를 수 있도록 길을 열어준 조치다. 특히 올림픽파크포레온의 대규모 입주에 따른 자금 조달 부담을 덜어주기 위한 성격이 강해 이른바 ‘둔촌주공 살리기’ 대책으로 불렸다.
하지만 입주 2년이 지나면서 당시의 규제 완화가 전세 공급을 줄이는 부메랑으로 돌아왔다. 일반분양 수분양자들은 최초 입주 가능일인 2024년 11월부터 3년 이내에 입주해 2년간 실거주 의무를 채워야 한다. 늦어도 2027년 11월까지는 직접 입주해야 하는 만큼, 전세 계약 만기를 앞두고 기존 세입자와의 계약을 종료하려는 집주인들이 늘고 있다.
세입자들은 계약갱신청구권을 행사하더라도 집주인이 실제 거주를 이유로 갱신을 거절하면 집을 비워줘야 한다. 현지 중개업소에 따르면 일부 임대차 계약에서는 처음부터 집주인의 입주 일정을 고려해 ‘2년 10개월 거주 후 퇴거’ 등의 특약을 작성하기도 했다.
전세 물량 감소는 조합원 소유 주택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일반분양 물량과 달리 실거주 의무가 없는 조합원 주택은 장기간 임대가 가능해 입주 당시 전세보증금이 1억~2억원 높게 형성되기도 했지만 최근에는 양도소득세 부담을 줄이거나 장기보유특별공제 혜택을 받기 위해 직접 입주하려는 조합원들이 늘고 있다. 이른바 ‘1+1’ 분양으로 주택 두 채를 받은 조합원들 사이에서도 다주택자 양도세 중과에 대한 우려로 임대차 계약을 정리하고 매각을 검토하는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
◇10억 전세가 15억~16억으로…세입자들 월세·반전세로
전세 공급이 줄어드는 사이 보증금은 크게 치솟았다. 현지 중개업소에 따르면 입주 초기 10억원 안팎이던 전용면적 84㎡ 전세는 최근 15억~16억원 수준에 거래되고 있다. 같은 평형에 계속 살려면 불과 2년 만에 5억~6억원을 추가로 마련해야 하는 셈이다.
기존 세입자들은 주거 면적을 줄이거나 월세·반전세로 전환하고 있다. 이마저 부담스러운 경우에는 주변의 상대적으로 저렴한 아파트로 이사하는 분위기다. 둔촌동의 이다연 파크포레온공인중개사무소 소장은 “입주 당시 전용 84㎡를 전세로 구했던 세입자들은 지금 같은 보증금으로 전용 59㎡나 그보다 작은 평형을 알아봐야 한다”며 “울며 겨자 먹기로 월세나 반전세를 선택하거나 인근 나홀로 아파트로 이사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전세는 품귀인데 매매는 적체…대출 규제에 거래 끊겨
반면 매매 시장에서는 가격을 크게 낮춘 매물이 나오고 있다. 한때 전용 84㎡ 매매가격이 32억~33억원 수준까지 올랐지만, 현지에서는 최근 27억~28억원대 호가를 제시하는 매물도 나타나고 있다.
집주인들이 매각에 나서더라도 거래가 성사되기는 쉽지 않다. 토지거래허가구역 지정으로 매수자의 실거주 요건이 강화된 데다 대출 규제로 자금 마련도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특히 고령 조합원이나 보유 주택을 정리하려는 집주인들 사이에서는 세금 부담 등을 고려해 호가를 낮추는 움직임도 나타나고 있다.
둔촌동의 김영 다원 공인중개사무소 대표는 “매매가격을 낮춘 물건은 쌓이고 있지만 대출이 막혀 거래가 거의 이뤄지지 않는다”며 “정부가 퇴로를 열어주지 않으면서 집주인도 세입자도 움직이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말했다.
전세난은 당분간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일반분양 수분양자들의 실거주 전환이 2027년까지 계속될 것으로 예상되는 데다, 매매 거래 부진으로 기존 주택이 새로운 임대 물량으로 전환되기도 쉽지 않아서다.
다만 현지에서는 2028년 11월 이후부터 전세 수급에 변화가 나타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입주 초기 체결된 전세 계약 중 갱신청구권 행사로 4년간 거주한 물량의 만기가 돌아오는 시점이기 때문이다. 이후 실거주 의무를 채운 집주인들이 다시 임대시장에 진입할 경우 전세 공급이 회복될 가능성도 있다. /mjbae@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