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26.10.27 13:55
신당·남산타운·세운4지구 등 3500명 등재 반대 의견 제출
올해 3월부터 '영향평가 의무화'…완충구역 밖도 규제 가능성
서울시·중구청 중재 역할..."11월 주민설명회 열고 의견 수렴”
[땅집고] “정비계획 변경하고 이제 막 시공사 선정하면서 달려가려는데, 심의를 다시 받을 수도 있다니요. 대체 무슨 날벼락이란 말입니까?”
서울시와 국가유산청이 한양도성·북한산성·탕춘대성을 묶은 ‘한양의 수도성곽’의 유네스코(UNESCO) 세계유산 등재를 추진하는 가운데, 인근 주민 3500여 명이 집단 반발에 나섰다. 등재 시 적용되는 새 규제 탓에 신당동·남산타운·세운4지구 등 한창 추진 중이던 정비사업이 첫 단계부터 심의를 다시 받아야 할 위기에 처해서다. 심지어 30평짜리 내 집 한 채를 신축·증축하려는 개인 건축주까지 의무적으로 ‘세계유산 영향평가’를 받아야 하면서 주민 반발이 거세지고 있다.
27일 중구청에 따르면, 한양도성 인근 중구 주민 3500여 명은 ‘한양의 수도성곽’ 세계유산 등재 추진에 반대한다는 내용을 담은 주민 의견서를 중구청에 제출했다. 중구청은 이 의견서를 지난 13일 서울시에 전달한 데 이어, 20일에는 국가유산청과 유네스코, 유네스코 공식 자문기구인 국제기념물유적협의회(이코모스·ICOMOS) 등에 전달했다.
앞서 지난 1월 서울시와 국가유산청은 경기도, 고양특례시와 함께 한양도성(18.6km)과 북한산성(11.6km), 탕춘대성(12.55km)을 아우르는 총연장 42.75km 규모의 ‘한양의 수도성곽’을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신청서로 세계유산센터에 제출했다. 이어 지난 8월에는 이코모스의 현지실사까지 완료된 상태다.
중구민들이 촉각을 곤두세우는 이유는 한양도성이 중구 광희문에서 다산동과 남산을 거쳐 숭례문으로 이어지며, 성곽을 따라 노후 주거지와 주요 도심 재개발 구역이 밀집해 있기 때문이다. 산속이나 국립공원에 위치해 개발 영향이 적은 북한산성·탕춘대성과 달리, 한양도성은 도심 한복판에 위치해 민간의 타격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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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월 시행령 개정으로 영향평가 의무화… “30평 집 짓는데도 규제 받아야”
중구민들의 불안이 극에 달한 핵심 원인은 올해 3월 개정·시행된 ‘세계유산의 보존·관리 및 활용에 관한 특별법(세계유산법)’ 시행령 때문이다. 기존에도 한양도성 등 세 구역은 국가 사적으로 지정돼 규제를 받아왔으나,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후 세계유산지구로 지정·고시되면 완전히 새로운 차원의 강력한 규제가 추가된다.
새 시행령에 따르면 유산 구역 경계로부터 100m 이내는 완충구역으로 지정해 건축 및 정비사업 추진 시 세계유산영향평가(HIA)가 의무화된다. 영향평가 절차를 이행하는 데만 평균 1~3년가량 걸려 사업 지연과 공사비 증액이 불가피하다.
갈등을 더욱 극대화하는 요소는 완충구역 외곽 지역도 안심할 수 없다는 점이다. 법 규정상 완충구역 밖이라도 국가유산청장이 세계유산에 영향을 미칠 것으로 판단하면 영토 및 거리 제약 없이 영향평가를 요구할 수 있다.
업계에서는 단순한 대형 재개발·재건축 사업뿐만 아니라 주민이 소규모 사유지에 30평짜리 단독주택을 신축하거나 증·개축할 때조차 예외 없이 영향평가를 받아야 하는 불합리한 상황이 발생한다고 지적한다. 중구 관계자 역시 “국가유산청의 주관적 판단에 따라 500m, 1km 밖의 고층 건물까지 규제 대상이 될 수 있어 주민 불안감이 극에 달한 상태”라고 설명했다.
◇”처음부터 다시” 신당·남산타운·세운4지구 등 주요 정비사업 ‘직격탄’ 우려
한양 수도성곽이 세계유산에 등재될 경우, 이는 중구 내 핵심 정비사업지에 직격탄이 될 전망이다. 현재 신당9·10·13구역 등 주택 재개발 사업을 비롯해 남산타운 아파트 리모델링, 약수역 도심 공공주택 복합사업, 세운4지구 및 광희동·DDP·서소문 일대 도심 재개발 사업이 모두 영향권에 들어간다.
이들 주요 정비사업장이 기존 인허가나 심의 절차를 처음부터 다시 거쳐야 할 위험에 노출된 데다가, 소규모 개인 주택 신축·증축까지 영향평가가 의무화된다. 다산동, 장충동, 신당동 등 한양도성에 접한 일반 주거지 역시 최근 겨우 완화된 남산 고도제한 해제 효과가 무색해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정비업계 관계자는 “서울 도심은 글로벌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 속도감 있는 정비와 변화가 필수적인 곳”이라며 “영예로운 타이틀을 얻는 것도 좋지만, 도심 한복판이라는 지역적 특성을 고려하지 않은 일률적 규제는 지역 발전의 발목을 잡을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사태가 심각해지자 행정 당국은 본격적으로 중재 역할에 나서고 있다. 서울시는 세계유산법에 따라 12일 ‘한양의 수도성곽 세계유산 등재 추진에 관한 주민 의견청취’ 공고를 내고 법적 절차를 진행 중이다. 2012년부터 10년 넘게 공들여 추진해 온 사업이지만, 올해 3월 시행령 개정으로 영향평가가 의무화되면서 상황이 심각해졌다고 판단하고 있다.
서울시 관계자는 “등재 최종 결정은 국가유산청과 외교적 절차, 그리고 내년 6~7월 튀르키예에서 열리는 세계유산위원회 결정에 달린 만큼 주민들의 우려와 의견을 가감 없이 수렴해 국가유산청과 논의하겠다”고 밝혔다.
중구청 역시 주민들의 사유재산권 침해 우려를 최소화하기 위해 적극적인 대응에 나선다는 입장이다. 중구청 관계자는 “오는 11월 5일 영향권에 속한 건축물 소유자와 지역 주민들을 대상으로 대규모 주민설명회를 개최할 예정”이라며 “주민들에게 정확한 정보를 전달하고 수렴된 반대 의견을 지자체 차원에서 지속해서 전달하며 해결책을 모색하겠다”고 말했다. / pkram@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