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26.10.14 17:06
대출 규제로 전세 막아놓고…"서울 적용 시 정비사업 물량 0"
[땅집고] 정비사업 이주에 따른 전세 시장 불안을 둘러싸고 서울시 책임론이 불거지는 가운데, 서울시는 이미 법적 의무를 충실히 이행하고 있다는 반론이 제기됐다. 오히려 국토교통부가 노후계획도시에 도입하려는 ‘연간 허용 정비물량’ 규제가 현실과 동떨어진 탁상행정이라는 비판이다. 이 같은 방식을 서울에 무리하게 적용할 경우 민간 정비사업이 원천 차단될 수 있다는 경고도 나왔다.
김준형 명지대학교 부동산학과 교수는 13일 서울갤러리에서 열린 한국도시부동산학회 라운드테이블 발표에서 ‘우리에게 정비사업 이주대책은 존재하였는가?’라는 주제로 이같이 밝혔다. 김 교수는 정비사업 이주대책이 이미 제도적으로 충분히 갖춰져 있다고 강조했다. 주거용 건축물 평가액의 30%, 최대 2400만원인 토지보상법상 이주정착금과 주거이전비·이사비가 지급되고 있으며, 도시정비법에 근거한 시기조정 제도도 작동 중이라는 설명이다.
실제로 서울시는 2012년 제도 도입 후 50건을 심의해 10개 구역의 인가 시기를 성공적으로 조율했다. 김 교수는 “서울시가 법적 의무를 충실히 다하고 있는 상황에서 무분별하게 비판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단언했다.
다만, 도시정비법상 임시거주시설이나 순환용주택 같은 제도가 현장에 정착되지 못한 점은 한계로 지적했다. 구체적인 자금 조달 및 택지 확보 방안 없이 방향만 제시됐기 때문이다. 김 교수는 “사업시행자는 이미 임대주택 공급 등으로 상당한 공공성을 부담하고 있다”며 “조합을 계속 쥐어짜다 사업이 멈추고 집값이 폭등하면 그 책임은 누구 지느냐”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기존 대책을 넘어서는 이주대책은 공공의 영역이며, 비용 역시 공공이 부담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 ‘반경 10km’는 역산된 숫자… “탁상행정식 셈법이 정비사업 가로막아”
비판의 화살은 국토부의 ‘노후계획도시 정비 기본방침’으로 향했다. 국토부는 1기 신도시 이주 가능 범위를 각 중심지에서 반경 약 10km 이내로 설정하고, 고양·성남 등의 정비물량을 8~11년에 걸쳐 분산 배정했다. 이 방식을 향후 전국 노후계획도시로 확대하겠다는 구상이다.
이에 대해 김 교수는 ‘반경 10km’라는 기준 자체가 비현실적이라고 일침을 가했다. 실제 정비사업 가구의 평균 이주거리를 대폭 상회한다는 이유에서다. 과거 과천의 이주 수요를 안양이 흡수할 수 있었던 이유도 두 지역 간 거리가 3~5km 이내로 가까웠기 때문이다. 김 교수는 “10km라는 기준은 학계에서 논의된 바 없는 숫자”라며 “공급 물량과 이주 물량을 맞추기 위해 거꾸로 계산해낸 격”이라고 비판했다. 부정확한 수치에 기반한 규제 속에서 이주전용단지 공급마저 막혀 결국 민간 정비사업만 억죄게 된다는 지적이다.
서울의 특수성을 고려하지 않은 대출 규제와의 충돌 문제도 드러났다. 정부의 6·27 대책으로 소유권 이전 조건부 전세대출이 금지되면서 신축 단지의 전세 물량이 급감한 상황이다. 김 교수는 “임대차 시장 불안을 줄이려면 전세 물량이 공급되도록 규제부터 풀어야 한다”며 “대출 규제는 그대로 둔 채 가용 물량 수치에만 맞춰 정비사업을 허용하겠다는 것은 서울 정비사업을 멈추게 하겠다는 뜻”이라고 경고했다. “서울시가 이 방식을 받아들이는 순간 서울의 정비사업 물량은 ‘제로’가 될 것”이라는 진단이다.
김 교수는 “시장을 이해하지 못한 규제는 실패할 수밖에 없다”며 “정비사업의 복잡한 구조를 단순한 산수로 통제하려 해서는 안 된다”고 제언했다. 이어 “정비사업은 주민의 소중한 재산권인 만큼, 검증되지 않은 정책 실험은 실험실 안에서 끝나야 한다”며 “정부와 지자체는 거시적 통제 대신 개별 현장에서 주민의 주거 안정을 돕는 미시적 지원책에 집중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 pkram@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