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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함이 없어도 삶의 주도권 쥐는 은퇴 세대의 현명한 생존술

    입력 : 2026.10.14 16:06

    고선주 박사의 신간 '나이 듦의 주도권'
    연금·건강 너머 '관계와 정체성의 노후'를 묻다

    고선주 박사의 신간 '나이 듦의 주도권'
    고선주 박사의 신간 '나이 듦의 주도권'



    [땅집고] 퇴직 봉투를 받아 든 날, 혹은 명함집에 남은 마지막 한 장을 꺼내 든 날, 사람은 낯선 질문 앞에 선다. "이제 나를 뭐라고 소개해야 하나." 수십 년간 회사 이름과 직함이 대신 답해주던 질문이다. 그 답이 사라진 자리에서 많은 사람이 처음으로 말문이 막힌다.

    한국 사회에서 노후 준비는 오랫동안 두 개의 숫자로 요약돼 왔다. 연금이 얼마나 필요한가, 몇 살까지 건강할 것인가. 금융과 의학이 노후 대비의 전부처럼 다뤄졌다. 서점의 은퇴 코너를 채운 책들도 대개 이 두 질문을 맴돈다.

    그러나 인생 후반이라는 바다에 막상 던져진 이들을 덮치는 파도는 다른 곳에서 온다. 명함이 사라진 뒤의 정체성 혼란, 하루 세 끼를 함께하며 새삼 낯설어진 배우자, 독립한 자녀와 늙어가는 부모 사이에 낀 애매한 자리, 그리고 언젠가 '남의 도움을 받아야 할 때'가 온다는 두려움이다. 통장 잔고로는 풀리지 않는 문제들이다. 은퇴 뒤에도 수십 년을 더 살아야 하는 시대에, 이 문제들을 외면한 노후 설계는 반쪽짜리일 수밖에 없다. 신간 '나이 듦의 주도권'은 기존 은퇴서들이 무심히 지나쳐 온 이 '관계와 정체성의 노후'를 정면으로 다룬다.

    ◇지독하게 현실적인 은퇴후 지침서

    저자 고선주 수원대 아동가족복지학과 교수는 서울대에서 아동가족학 박사 학위를 받았고, 서울시50플러스재단 생애전환지원본부장을 지냈다. 중장년의 생애 전환기와 가족 관계를 오래 연구해 온 고령화 분야 베테랑이다. 강의실 이론에 머물지 않고 현장에서 은퇴자와 중장년의 실제 고민을 모아 분석해 왔다는 점이 이 책의 힘이다. 책이 '이래야 한다'는 당위 대신 지독히 현실적인 지침서로 읽히는 이유다.

    제목의 '주도권'은 오해받기 쉬운 단어다. 모든 상황을 내 뜻대로 통제하고 지휘하는 강한 힘처럼 들린다. 저자의 뜻은 오히려 반대에 가깝다. 나이 들수록 뜻대로 되지 않는 일이 늘어난다는 현실을 담담히 인정하는 데서 출발한다. 책은 주도권을 이렇게 정의한다. "달라진 자신에게 계속 질문하고,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더라도 원하는 것을 스스로 말할 수 있는 힘, 그리고 타인과 함께 결정하면서도 내 삶의 주어(主語)를 잃지 않는 것."

    핵심은 '주어'라는 단어에 있다. 나이 들수록 사람은 문장의 주어 자리에서 밀려나기 쉽다. 자녀가 정하고, 의사가 정하고, 제도가 정한다. 노인은 '모셔지고' '맡겨지는' 존재가 된다. 저자는 이 수동태의 노년을 거부한다. 훗날 판단력이 흐려지거나 누군가의 돌봄에 기대게 되더라도 '어떻게 살고 싶은가'에 대한 결정권만큼은 내려놓지 않는 태도, 그것이 저자가 말하는 나이 듦의 주도권이다.

    책을 끌고 가는 것은 네 명의 인물이다. 저자가 현장에서 만난 중장년들의 고민을 엮어 빚어낸 정우, 은주, 영미, 광수다. 정우는 대기업을 떠난 뒤 자신을 증명할 단어를 잃어버렸다. 직함이 곧 자신이었던 사람에게 퇴직은 단순한 실직이 아니라 언어의 상실이다. 교단에서 내려온 은주는 쇠약해지는 몸과 새로운 협상을 시작한다. 당연했던 몸이 매일 달래고 타협해야 할 상대로 바뀐 것이다. 영미는 한집에 살지만 이방인처럼 낯설어진 남편과의 관계를 다시 짠다. 함께 보내는 시간이 늘수록 오히려 거리가 드러나는 부부의 역설이다. 식당 문을 닫은 광수는 수십 년 장사로 쌓은 경험을 사회적 자산으로 번역해 낸다. 일이 끝난 자리에서도 경험은 다른 이에게 건넬 무언가가 될 수 있다는 얘기다.
    네 사람의 이야기는 소설처럼 읽히지만 결코 남의 일이 아니다. 독자에게 이들은 머지않아 마주할 자신의 모습이거나, 지금 이 순간 늙어가고 있는 부모의 초상이다.

    ◇낀세대의 현명한 생존술

    조언은 구체적이다. 오랜 상담 경험을 쌓아온 저자답게 손에 잡히는 대안을 내놓는다. 성인 자녀에게 경제적 지원을 어디까지 해야 하는지 경계를 긋는 문제, 평생 '모은 돈'을 남은 생을 위한 '살아가는 돈'으로 바꿔 쓰는 지출의 기술 같은 것들이다. 모으는 법만 배워온 세대에게 쓰는 법을 가르치는 셈이다.

    관계의 재배치도 같은 맥락이다. 지금의 중장년은 위로는 노부모를 돌보고 아래로는 다 큰 자녀를 뒷바라지하는 '낀 세대'다. 누구의 부모이자 누구의 자식으로 사느라 정작 자신의 자리는 비워둔 채 살아왔다. 저자는 이 관계들을 끊으라고 하지 않는다. 다만 의무감과 죄책감에 떠밀려 결정하지 말고, 내가 감당할 수 있는 몫과 내 삶의 우선순위를 먼저 따져보라고 권한다. 가족을 사랑하는 일과 나를 지우는 일은 다르다는 것이다.

    책이 닿는 가장 깊은 통찰은 마지막 장 '도움을 받는 삶도 내 삶이다'에 있다. 흔히 누군가의 돌봄을 받게 되는 순간을 인생의 패배, 주도권의 완전한 상실로 여긴다. 그래서 끝까지 도움을 거부하며 버티거나, 반대로 모든 결정을 가족에게 통째로 떠넘긴다.

    저자는 둘 다 답이 아니라고 본다. 가족이든 제3자든 돌봄을 받는 과정에서도 스스로 고르고 요구할 수 있다는 '돌봄의 자기결정'이다. 고립되지 않고 타인과 연결되는 법, 존엄을 지키며 도움을 받는 법이야말로 인생의 마지막 주도권을 완성하는 열쇠라는 것이다. 의존과 자립을 맞세우지 않고, 의존 속에서도 자립을 지키는 길을 제시한 셈이다.

    65세 이상 인구가 다섯 명 중 한 명을 넘어선 초고령 사회에서 '어떻게 늙을 것인가'는 더 이상 개인의 선택에 머무는 질문이 아니다. 시대의 화두다. 숫자와 자산 목록 뒤에 가려졌던 인간의 존엄과 관계를 이만큼 다정하고 밀도 있게 짚은 안내서를 만나기는 쉽지 않다. 인생 후반전을 준비하는 40~50대는 물론, 노년의 부모를 더 깊이 이해하고 싶은 자녀 세대에게도 일독을 권한다. 은퇴가 아직 먼 얘기 같은 40대라면 더욱 그렇다. 명함이 사라지기 전에 '나는 누구인가'를 미리 물어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의 후반전은 다를 수밖에 없다. 씽크스마트, 348쪽, 2만원./hbcha@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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