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26.10.13 15:45
한국도시부동산학회,정비사업 이주대책 논의
"서초 주민, 과천 가면 쫓겨나는 건가"
행정구역 넘어선 부분시장 단위 제언
[땅집고] 서울시가 ‘신속통합기획(신통기획) 2.0’을 추진하며 대규모 재개발·재건축 철거가 본격화되는 가운데, 일각에서 제기되는 ‘이주 대란’ 우려를 서울시 전체 통계로만 판단해서는 안 된다는 지적에 힘이 실리고 있다. 가격대와 생활권이 비슷한 ‘부분시장’ 단위로 접근해 서울 경계를 넘어 인접 수도권까지 이주 수요를 흡수할 수 있는 범위를 넓혀 살펴봐야 한다는 제언이다.
박동하 건국대학교 부동산학과 교수는 13일 서울갤러리에서 열린 한국도시부동산학회 라운드테이블에 발표자로 참석해 이같이 밝혔다. ‘정비사업 이주대책, 무엇이 문제인가?’를 주제로 열린 이번 행사에서 박 교수는 ‘정비사업에 따른 이주 범위, 어디까지인가’라는 주제 발표를 맡았다.
최근 정비업계에서는 신통기획 추진에 따른 ‘공급 착시’ 논란이 불거졌다. 서울시가 2031년까지 약 31만가구 착공을 목표로 내걸었지만, 올해부터 2031년까지의 철거 물량이 22만1000가구로, 준공 물량인 9만5000가구를 크게 웃돈다는 것이다. 순수 주택 재고가 12만6000가구 줄어들 것이라는 추정이다. 이에 지난 9월에는 정비사업 시점을 3년가량 늦춰 순감 물량을 줄여야 한다는 ‘속도조절론’까지 거론됐다.
이에 대해 박 교수는 “12만여가구 순감에 대한 우려는 서울시 전체를 하나로 묶어 단순 합산했기 때문에 생긴 착시”라고 짚었다. 그는 “서초구에 살던 주민에게 노원구로 이사하라고 하면 현실적으로 어색하지 않겠느냐”며 “정비사업에 ‘주민을 쫓아내는 사업’이라는 부정적 프레임을 씌울 것이 아니라, 이주 부담을 객관적으로 진단할 새로운 틀부터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실제로 서울 시내 정비사업 물량은 특정 지역에 크게 쏠려 있다. 구별 신통기획 2.0 착공 예정 물량(2026~2031년 합계 22만2126가구)을 보면 양천구(3만2149가구), 송파구(2만6245가구), 용산구(2만1050가구), 강남구(1만6196가구) 등 상위 8개 자치구가 전체의 65.9%를 차지한다. 반면 도봉구는 0가구이며, 금천구(662가구)와 광진구(708가구)는 1000가구에도 미치지 못한다.
◇서초는 과천과, 강동은 하남과 ‘같은 시장’… “수도권 ‘맷집’ 활용해야”
전셋값 격차 역시 단순 합산의 오류를 보여주는 지점이다.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지난 8월 기준 ㎡당 중위 전세가격은 서초구(1072만원)와 강남구(1032만원)가 높게 형성된 반면, 도봉구는 466만원에 그쳤다. 같은 서울이라도 가격 차이가 커 이주 수요를 흡수하기 어렵다.
오히려 서초구는 인접한 과천시(1257만원), 강동구(750만원)는 하남시(836만원)처럼 경계를 맞대고 전셋값이 비슷한 경기 지역과 하나의 시장으로 묶인다. 박 교수는 “이주가 서울 집값을 끌어올리는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갈리지만, 핵심은 이주 수요를 감당할 수 있는 시장의 ‘맷집’을 서울 내부로 한정할지, 수도권 전체로 넓혀 볼지다”라고 설명했다.
서초구에서 발생하는 이주 수요라면 과천시의 임차 공급량까지 포함해 살펴봐야 한다는 의미다. 지난해 서울 주택·오피스텔 전월세 거래량(65만7000건)에 인접 경기·인천 물량까지 더하면 시장의 흡수 여력은 훨씬 커진다.
☞강남에서 한 달 살 집 얼마일까? 단기임대 매물 확인하기
박 교수는 이주 수요 문제와 ‘계속 거주’의 가치를 구분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전체 시장이 이주 수요를 감당할 수 있는지와, 기존 주민이 살던 지역 근처에 계속 살 수 있는지는 별개의 문제라는 분석이다. 박 교수는 “서초 주민이 과천으로 이동하는 것을 단순히 ‘쫓겨난다’고 해석할 필요는 없다”며 “이동하는 행정구역 방향보다 본인이 원하는 주거 대안인지, 비용을 감당할 수 있는지, 기존 생활권을 유지할 수 있는지가 핵심”이라고 덧붙였다.
실효성 있는 정책 대안으로는 현장 맞춤형 조사를 제시했다. 서울시가 개별 사업장별 실제 이주 가구 수와 시점, 인근 지역의 대체 주거 여건을 사전 조사한 뒤, 수요가 과도하게 몰리는 특정 지역에 한정해 핀셋 대응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모든 사업장의 속도를 일률적으로 조절하는 방식은 시장 효율성을 떨어뜨릴 수 있다는 지적이다.
아울러 지자체 간 경계를 넘어서는 수급 불균형에 대해서는 중앙정부가 적극적으로 중재하고 조정하는 역할을 맡아야 한다는 조언도 나왔다. 박 교수는 “정책의 최종 목표는 단순한 가격 조정을 넘어선 주거 안정이며, 전월세 시장 안정을 위해서는 서울과 경기도 등 행정 경계를 넘어서는 광역 협력이 필수적”이라면서도 “이를 실행할 실제 거버넌스를 어떻게 구축할 것인지는 앞으로 해결해야 할 과제”라고 밝혔다. / pkram@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