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26.10.12 13:53 | 수정 : 2026.10.12 13:54
14개월 실제 거주했지만 보증금 1억6000만원 올려 재임대
대법 "재임대 불가피했다는 사실 집주인이 입증해야"
[땅집고] 실거주를 이유로 세입자를 내보낸 집주인이 실제로 14개월간 거주했더라도, 정당한 사유 없이 다른 사람에게 다시 전세를 놓았다면 손해배상 책임을 져야 한다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대법원 제2부(주심 권영준 대법관)는 지난 9월 10일 세입자 A씨가 집주인 B씨를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소송(2026다203203)에서 B씨의 상고를 기각했다. 이에 따라 B씨가 A씨에게 3079만9992원과 지연손해금을 지급하도록 한 원심판결이 확정됐다.
◇“직접 살겠다”더니…14개월 거주 후 보증금 1억6000만원 올려
사건은 서울 서대문구의 한 아파트에서 시작됐다. A씨는 2020년 9월부터 보증금 6억6000만원에 2년간 전세로 거주했다. 계약 만료를 앞둔 2022년 5월 B씨는 직접 들어와 살겠다며 계약갱신을 거절했다. A씨는 계약 연장을 요구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결국 그해 9월 집을 비웠다.
이후 B씨는 2023년 2월부터 약 14개월간 해당 아파트에 실제 거주했다. 그러나 2024년 2월 새로운 세입자와 보증금 8억2000만원에 전세계약을 체결했다. 기존보다 보증금을 1억6000만원 올린 것이다. 새 임대차는 같은 해 4월 시작됐다. A씨가 계약을 갱신했다면 거주할 수 있었던 2024년 9월보다 약 4개월 반 빠른 시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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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B씨가 실제로 거주했더라도 당초 계약이 갱신됐을 기간 안에 다른 사람에게 집을 다시 임대했다는 점이다. 주택임대차보호법은 집주인이 실거주를 이유로 계약갱신을 거절한 뒤 정당한 사유 없이 제3자에게 재임대하면 종전 세입자에게 손해를 배상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에 A씨가 손해배상을 청구하자 B씨는 '다른 부동산의 보증금을 돌려주기 위해 재임대가 불가피했다'고 주장했다. B씨 부부가 공동 소유한 다가구주택에서 세입자 6명에게 반환해야 할 보증금은 총 6억9000만원이었지만, 새로 받은 임대차보증금은 1억8000만원에 그쳐 5억1000만원이 부족했다는 것이다. B씨는 대출도 어려운 데다 아파트를 매각하면 약 3억원의 양도소득세가 발생할 것으로 예상돼, 자신이 살던 아파트를 다시 전세 놓아 자금을 마련할 수밖에 없었다고 주장했다.
◇”보증금 돌려줄 돈 부족했다”…1심은 집주인 손 들어줘
이 같은 사정을 두고 1심과 항소심의 판단은 엇갈렸다. 1심은 B씨가 실제로 14개월 넘게 거주했고, 전세사기 여파로 다른 주택 세입자들의 보증금 반환 요구가 한꺼번에 몰린 것은 예측하기 어려운 상황이었다며 집주인의 손을 들어줬다.
반면 항소심은 이를 뒤집었다. 다른 주택의 임대차계약이 끝나는 시점과 반환해야 할 보증금 규모는 미리 알 수 있었던 만큼 자금 부족 가능성도 예상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재판부는 "단순히 '경제적 사정이 급하다'는 것과 같은 사유만으로는 '정당한 사유'를 인정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대법원도 항소심 판단이 정당하다고 봤다. 특히 집주인이 실거주를 이유로 계약갱신을 거절한 뒤 다시 임대할 경우, 손해배상 책임을 면할 수 있는 '정당한 사유'의 기준을 명확히 했다.
◇대법 “다시 전세 놓을 수밖에 없었는지 입증해야”
대법원은 "임대인이 갱신거절 당시에는 예측할 수 없었던 사정으로 인하여 제3자에게 목적 주택을 임대하였어야 하고, 제3자에게 목적 주택을 임대하는 것이 불가피하였어야 한다"고 설명했다.
쉽게 말해 집주인이 처음 계약갱신을 거절할 때는 예상하지 못했던 문제가 발생해야 하고, 그 문제를 해결하려면 다른 사람에게 집을 다시 임대하는 것 외에 현실적인 방법이 없었어야 한다는 뜻이다. 단순히 돈이 부족해졌거나 전세를 다시 놓는 것이 경제적으로 유리하다는 이유만으로는 손해배상 책임을 피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대법원은 이어 "위와 같은 정당한 사유가 있었다는 점에 대한 증명책임은 임대인에게 있다"고 명시했다. 집주인이 재임대가 불가피했다고 주장하는 데 그치지 않고, 실제로 다른 방법이 없었다는 사실까지 입증해야 한다는 의미다.
이번 사건에서 B씨가 내세운 보증금 반환 문제도 이 기준을 충족하지 못했다. 다른 다가구주택 세입자들의 계약 만료 시점과 반환해야 할 보증금 규모는 미리 알 수 있었던 만큼, 갑자기 발생한 예상 밖의 사정으로 보기 어렵다는 것이다. 또한 자금 마련에 어려움이 있었다고 해도 자신이 살던 아파트를 반드시 다시 전세 놓아야만 했다고 인정하기는 어려웠다.
이에 대법원은 보증금 반환 문제가 "갱신거절 당시 예측할 수 없었던 사정이 아니고 이 사건 아파트를 제3자에게 임대하는 것이 불가피하지도 않았다"고 판시했다.
결국 다른 부동산의 보증금 반환 부담은 미리 예상할 수 있었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해당 아파트를 반드시 재임대해야 했다고 보기도 어려워 손해배상 책임이 인정된 것이다. /givehyun@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