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26.10.08 16:19 | 수정 : 2026.10.08 17:43
농지은행 안 맡겨도 처분 안 해… 9월 '유예'안에서 2주 만에 또 후퇴
임대차 비율이 절반인데 '불법'으로 몬 탁상행정
특별조치법 마련 양성화 기회 제공
[땅집고] 농림축산식품부가 8일 농지 전수조사에서 확인된 경미한 불법 임대차와 소유에 대해 농지은행에 맡기지 않아도 처분하지 않기로 하는 등 농지조사 보완대책을 발표했다. 투기가 아니라는 사실관계만 확인되면 조사를 끝낸다는 것이다. 이재명 대통령이 ‘경자유전의 원칙’을 강조하면서 농지조사에 대한 반발을 '농지 투기 세력의 거짓말 선동'으로 규정한 것에서 크게 후퇴한 것이다. 정부가 이처럼 급하게 방침을 바꾼 것은 '언젠가 땅을 빼앗길 수 있다'는 농민들의 불안감이 확산되고 있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고령화로 경작 포기지가 속촐하는 농촌의 현실을 외면한 탁생행정의 당연한 결과라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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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예'에서 '처분 안 함'으로
송미령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은 8일 농민들의 반발을 감안해 명백한 투기 목적이 아닌 상속·관행 임대 등 일반적인 농지법 위반 행위에 대해 강제 처분을 면제하고 양성화 기회를 주는 '농지 특별조치법(특조법)'을 연내 제정하겠다고 밝혔다.
지난달 21일 당정협의 때 내놓은 보완책은 경미한 불법 농지라도 농지은행에 임대·관리권을 맡겨야 처분을 '유예'해 주는 방식이었다. 그런데도 '유예'라는 표현 때문에 언젠가 다시 처분될 수 있다는 공포가 가라앉지 않았다.
결국 정부는 2주 만에 명백한 투기가 아니면 처분하지 않는다고 한 걸음 더 물러섰다. 송 장관은 "농지은행 위탁 여부와 관계없이 모두 처분이 진행되지 않는 방향"이라며 "농지은행에 임대·매도하고 싶다면 농업인이 선택적으로 이용할 수 있다"고 했다.
대표적인 대상은 관행적 임대차. 고령으로 직접 농사를 짓지 못하거나 이웃·친척이 대신 경작하는 경우 지금 상태로 둬도 된다는 것이다. 농식품부 관계자는 "농지은행 이용이나 실경작자와의 서면 임대차 계약을 권장하지만 필수는 아니다"라고 했다.
상속 농지도 마찬가지다. 당초에는 소유 상한(1ha)을 넘긴 상속 농지의 초과분을 농지은행에 맡겨야 처분을 유예해 줄 계획이었다. 특조법에서는 상속으로 생긴 위반이라는 점만 확인되면 그 자체로 처분하지 않는다. 종중·사찰·미등기 상속처럼 소유관계가 복잡한 농지, 상속으로 묵힌 휴경지, 맹지나 경사지라 농사를 짓기 어려운 땅도 처분 대상에서 빠진다.
명백한 투기가 입증된 농지는 처분해야 한다. ▲토지거래허가구역에서 영농계획서를 내고 취득한 농지(상속 제외)를 방치하거나 임대한 경우 ▲경매 등으로 지분을 사면서 되팔 목적의 허위 영농계획서를 낸 경우 ▲농업법인을 세워 농지를 쪼개 팔거나 임대해 부동산 수익을 올린 경우 등 세 가지다. 농식품부는 소명 절차를 거친 뒤 현행 농지법에 따라 처분명령을 내리기로 했다.
◇대통령은 '투기세력', 현장은 '내 땅 뺏긴다는 농민의 공포'
이 대통령은 지난달 24일 X(옛 트위터)에 "저항과 반발 때문에 모든 정부가 회피했지만 저는 회피하지 않겠다"고 썼다. 이어 "농사 짓겠다고 신고하고 산 농지를 땅값 상승만을 기다리며 방치하거나 불법 임대하는 경우 강제 매각시키라는 것이 국민과 국회가 정해준 법"이라며 "지키지 않을 법이라면 만들지 말든지 폐지해야 마땅하다"고 했다. 조사에 대한 반대를 투기 세력이 비대상자들을 선동한 결과로 본 것이다.
이번 후속조치로 처분 대상에서 제외된 것은 대부분 투기와 거리가 먼 농촌의 일상이다. 늙은 부모 땅을 이웃이 대신 부치고, 물려받은 땅이 법정 상한을 넘고, 길도 없는 산비탈 밭이 묵어 있는 사례들이다. 대통령이 '선동당한 비대상자'로 본 사람들이 실제로는 서류상 위반자로 분류될 처지였던 당사자였다는 얘기다. 정부 안팎에서 "대통령 메시지와 농식품부 행보가 엇박자"라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 대통령 말 한마디로 시작된 농지조사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 2월 "농지가 투기 대상이 됐다. 귀농 비용을 줄이려면 근본적으로 땅값을 떨어뜨려야 한다"고 밝힌 바 있다. 이후 정부는 농지 전수조사에 나섰다. 여기다가 지난 5월 벌칙 규정을 강화한 농지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했다.
개정 농지법은 농사를 짓지 않는 농지 소유자에게 처분명령을 의무화한 것이 핵심이다. 개정 농지법은 농지 처분 규정을 '재량 규정'에서 '의무 규정'으로 변경했다. 농사를 짓지 않거나 불법 임대한 농지 소유자에 대해 1년의 처분 기간을 부여하고, 처분하지 않으면 강제 처분명령이 내려진다. 이를 이행하지 않으면 감정가나 개별공시지가 중 더 높은 가액의 25%가 매년 이행강제금으로 부과된다. 사실상 5년이 지나면 농지를 강제 몰수하는 효과가 발생한다.
◇고령화로 경작포기지 속출하는 현실 외면
벌칙조항을 대폭 강화한 농지법 개정에다 농지 전수 조사가 시작되자 농민들의 반발이 커졌다. 정부는 경자유전의 원칙을 강조했지만, 전체 농지의 약 47%가 임대차로 경작된다. 고령화로 인해 매년 휴경지, 경작 포기지가 늘어나고 상속 토지들은 사실상 방치된 상태이다. 과거 70%에 달하던 농촌인구가 5%로 쪼글라든데다 고령화가 급속도로 진행되는 상황에서 정부가 시대착오적 경자유전의 원칙을 강조한 것이다.
농지의 절반 가까이가 법의 허용 범위 밖에서 관행적으로 빌려주고 빌려 쓰는 상황인데, 이를 위반으로 걸러내는 조사부터 시작했으니 반발은 처음부터 예상된 일이었다.
야당은 진작부터 문제를 제기했다. 장동혁 국민의힘 대표는 지난달 22일 "내가 처음 문제를 제기했을 때 민주당은 괴담이라며 '사실 왜곡 발언을 사과하라'고 공격했다"며 "농민을 투기꾼으로 보는 대통령의 비뚤어진 시각부터 고쳐야 한다"고 했다.
조사 범위를 두고도 혼선이 이어진다. 송 장관은 7일 국정감사에서 이개호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비경작 농지와 수도권 투기 용지 중심으로 전수조사를 대전환할 용의가 없느냐"고 묻자 "살펴보겠다"고 답했다. 원론적인 답변이었지만 현장에서는 조사 범위가 줄어드는 것 아니냐는 해석이 나왔다. 여당 의원조차 '전수조사'가 아니라 '투기 농지 표적조사'가 맞다고 본 셈이다. /hbcha@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