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26.09.22 06:00
압구정 핫플 매장이 의류 할인매장으로
충청권 모태 갤러리아 타임월드 매각 타진
한화건설 떠난 김동선, 갤러리아서 독자 부동산 개발 조직 구축
[땅집고] 21일 오전, 서울 강남구 수인분당선 압구정로데오역 앞. 불과 1년 전 한화갤러리아가 야심 차게 문을 연 미국 수제버거 브랜드 ‘파이브가이즈’ 압구정점 매장이 있던 자리는 온데간데없고 팝업스토어가 들어서 있었다. 하지만 젊은 층이 몰리는 성수동의 세련된 팝업스토어와는 결이 달랐다. 최대 70% 할인 현수막이 내걸린 매장 내부 모습은 마치 의류 떨이 판매장을 방증케 했다. 주변 부동산 중개업소 관계자들조차 “저런 알짜 부지를 대기업이 1년 만에 사업을 접고, 의류 떨이 매장처럼 운영하고 있는 줄도 몰랐다”고 했다.
파이브가이즈는 김동선 한화머시너리앤서비스홀딩스(한화M&S) 미래전략총괄 사장이 국내 도입을 직접 주도하며 공을 들여온 핵심 브랜드다. 문을 연 초기에는 매장 밖으로 긴 줄이 늘어서는 이른바 ‘오픈런’이 이어질 정도로 화제를 모았지만, 매출 부진 속에 지난 5월 31일 돌연 문을 닫았다. 한화가 갤러리아 백화점과 연계해 상권을 활성화할 것이라는 기대와 달리, 외국인 관광객만 1시간에 10여 명 정도 드나들 뿐이었다. 김 부사장이 주도한 외식 신사업의 상징이던 매장은 현재 다른 브랜드가 단기간 빌려 사용하는 팝업 공간으로 바뀌었다. 업계에서는 이를 두고 “지금 한화갤러리아의 단면을 그대로 보여주는 모습”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충청권 핵심 백화점 매각 추진
한화그룹 3남인 김동선 사장이 이끄는 갤러리아의 행보를 보면, 유통기업이 아닌 ‘부동산 개발회사’로 체질을 전환하는 모양새다. 서울 요지의 부동산을 잇따라 사들인데 이어 충청권 핵심 백화점 점포인 타임월드 매각까지 검토하면서 유통업에서 부동산 개발로 사업의 무게중심을 옮기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다.
한화갤러리아는 연 매출 6000억원이 넘는 대전 갤러리아 타임월드점의 매각을 추진 중이다. 압구정 명품관 다음으로 큰 대표 핵심 점포이자 한화의 상징적인 본진을 처분하려는 이례적인 움직임이다. 충청권은 한화그룹 창업주 고(故) 김종희 회장의 고향(천안)이자 그룹의 뿌리와도 같은 곳이다.
한화갤러리아는 지분 100%를 보유한 한화갤러리아 타임월드 매각을 위해 최근 직원들을 대상으로 두 차례 설명회까지 진행했다. 점포 자산을 양도하거나 지분을 매각하는 방안 등 다각도의 거래 방식이 검토되고 있다.
1997년 동양백화점으로 출발한 타임월드는 한화갤러리아를 대표하는 지방 거점 점포였다. 그러나 2021년 대전신세계 Art&Science가 문을 연 이후 입지가 크게 흔들렸다. 타임월드 매출은 2021년 7407억원에서 2022년 7362억원, 2023년 6766억원, 2024년 6265억원으로 줄었고, 지난해에는 6032억원까지 떨어졌다. 4년 만에 매출이 18.6%나 급감한 것이다. 그 사이 경쟁사인 대전신세계는 지난해 연 매출 1조원을 돌파하며 독주 체제를 갖췄다.
◇서울 핵심 부동산 6500억 매입
본업인 유통 사업의 상징 점포까지 매각에 나선 한화갤러리아는 확보한 자금을 부동산 큰손으로 떠올랐다. 서울 부동산 매입에만 3년새 6500억원을 투입했다. 한화갤러리아는 2023년 강남구 신사동 2개 부지와 건물을 895억원에 사들였다. 현재 벤슨 아이스크림 가게와 현재 의류 팝업스토어가 들어선 옛 파이브가이즈 매장 자리다. 같은 해 청담동 부동산을 225억원에 확보했고, 지난해에는 마포구 서교동 부지·건물을 875억원에 매입했다.
최근에는 서울 중구 순화빌딩과 인근 토지를 2135억원에 인수했으며, 강남구 신사동 옛 ‘더피크도산’ 부지(신사동 633-3 일대)를 지난 7월 공매를 통해 2367억원에 낙찰받았다. 이곳에는 약 30가구 규모의 초고가 공동주택 건설을 추진 중이다. 특히 이 공동주택 개발 사업은 같은 그룹 계열사인 한화 건설부문조차 사전에 매입 사실을 몰랐을 정도로 철저한 보안 속에 진행된 것으로 전해졌다.
이처럼 서울 핵심 입지 매입에 투입되는 자금이 대규모로 불어나면서, 기존 지방 점포 등 유통 자산을 정리해 투자 여력을 확보하려는 계산이 깔려 있다.
◇한화갤러리아, 부동산개발실까지 신설
조직 개편도 속전속결로 이뤄졌다. 한화갤러리아는 최근 대표이사 직속으로 ‘부동산개발실’을 신설했다. 서울 주요 핵심 지역에서 부동산 매입과 개발사업이 급증하자 이를 전담할 전담 조직을 구축한 것이다. 같은 시기 백화점 핵심 조직인 상품본부를 해체하고 산하 패션부문을 상품부문으로 개편했다.
한화그룹 내에서 부동산 개발과 시공은 그동안 한화건설이 주도해왔다. 김동선 사장 역시 한화건설에서 지난 4월 10년 만에 회사를 떠나 한화갤러리아 등 라이프 부문에 집중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갤러리아가 별도의 부동산개발 조직까지 꾸리면서 그룹 내 부동산 개발사업의 무게중심이 갤러리아로 옮겨가는 것 아니냐는 관측도 나온다. 다만 한화건설과 갤러리아의 사업 영역이 겹치는 만큼 향후 역할 분담이나 협업 방식이 어떻게 정리될지는 지켜봐야 한다.
유통업계 한 관계자는 “최근 한화갤러리아의 움직임은 백화점 사업 축소를 넘어 김동선 사장을 중심으로 한 자산 및 사업 포트폴리오 재편”이라며 “기존 유통 자산은 효율성을 따져 정리하고, 신규 투자는 서울 핵심 입지의 고급 부동산 개발에 사활을 거는 방향성이 명확해지고 있다”고 말했다. /mjbae@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