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26.09.14 06:00
[땅집고] 현대차그룹이 서울 강남구 삼성동에 짓는 신사옥 ‘글로벌비즈니스콤플렉스(GBC)’ 건축 계획이 최고 49층 3개동으로 최종 확정됐다. 당초 105층 높이 초고층 타워를 짓겠다는 목표로 출범한 사업이지만, 약 12년 만에 층수가 3분의 1토막났다. 12년간 현대차는 10조원을 들인 사옥을 착공조차 하지 못했지만, 그사이 테슬라는 자율주행기술로 전세계 자동차 시장 판도를 바꿨다. 이 때문에 현대차가 ‘초고층의 저주’에 빠졌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초고층의 저주에 빠져 허송세월한 현대차
서울시는 지난 8일 열린 제 16차 건축위원회에서 GBC 신축 사업 안건을 통과시켰다고 9일 밝혔다.
GBC는 서울 강남구 삼성동 옛 한전부지 7만4148㎡에 지하 8층~지상 49층 높이 오피스 건물 3개동과 함께 ▲오피스텔 60실 ▲관광숙박시설 80실 ▲공연장 및 전시장 ▲전망 공간 ▲판매시설 등을 함께 짓는 복합개발사업이다. 현대차그룹이 2014년 옛 한국전력 부지를 총 10조5500억원에 매입하면서 사업이 시작했다.
GBC는 정몽구 명예회장이 직접 챙기며 밀어붙인 숙원 사업이었다. 2014년 현대차그룹은 감정가의 세 배를 웃도는 10조5500억원에 삼성동 옛 한전부지를 매입하고, 이곳에 그룹 통합 컨트롤타워 역할을 할 최고 105층짜리 랜드마크 타워 한 개동을 짓겠다고 선언했다. 원안대로라면 현재 국내에서 가장 높은 서울 송파구 ‘롯데월드타워’를 뛰어넘는 건축물이 될 수 있었던 것. 당시 GBC는 현대차그룹의 새로운 100년을 상징하는 프로젝트로 제시됐다.
하지만 업계 안팎에서는 이 자금이면 자동차 조립 공장을 여러 곳 더 짓거나 수십 종의 신차 개발 연구비, 글로벌 완성차 기업 인수도 가능하다는 지적이 나왔다. 사옥 건설에 과도한 자금이 묶일 수 있다는 우려였다. 일각에선 현대차가 초고층의 저주에 빠졌다는 이야기도 나왔다. 실제로 삼성동 부지 낙찰을 전후로 외국인 투자자들이 현대차 주식을 대거 처분하며 주가가 급락했다. 전 고점을 회복하는 데만 약 7년이 걸렸다.
◇정의선의 실요주의, 층수 낮춰 건축비 최소화
결국 현대차그룹은 2024년 2월 GBC 높이를 55층으로 낮추는 대신, 2개동으로 짓겠다는 입장을 내놨다. 이 같은 결정에는 그룹 수장인 정의선 회장의 실리주의가 크게 작용했다는 분석이 나왔다.
공사비 부담이 초고층 사업을 철회하는 결정적인 원인이 됐다. 2016년 약 2조원대로 추산되던 건축비는 시간이 흐르며 최소 5조원 이상으로 급격하게 불어났다. 고강도 자재와 특수 공법이 필수적인 초고층 구조 특성상 비용 상승을 피하기 어려웠다는 분석이다. 여기에 그룹 내 경영 환경 변화와 각종 문제가 겹치면서 사업이 장기간 표류하기 시작했다. 초고층 건물을 지으면서 드는 건축비가 수조원대로 막대한 데다, 서울시와 공공기여금 산정을 두고 의견이 갈렸던 것도 사업 지연 원인으로 작용했다.
그러다 지난해 2월에는 층수를 54층으로 더 낮추고 3개동으로 짓는 방안을 서울시에 제출했고, 올해 9월 여기서 더 낮아진 ‘최고 49층, 3개동’ 건축안이 최종 확정됐다. 당초 계획보다 층수가 3분의 1 수준으로 줄어들긴 했지만 앞으로 GBC가 완공하면 삼성동 일대 업무 기능이 크게 강화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건설·금융을 제외한 현대차그룹 주요 계열사들이 이 건물에 한꺼번에 입주하면서 삼성동으로 출퇴근 하는 인구가 수만명에 달한 것으로 예상된다.
◇전시장 공연장 등 복합 문화공간 조성
서울시는 이번 건축안에 GBC와 인근 영동대로 자상광장, 삼성동 복합환승센터 지하를 유기적으로 연결하기 위한 방안을 포함시켰다. 먼저 총 1만1000㎡로 축구장 1.6배 넓이 도심 숲 ‘그레이트 파크’를 조성해 주변 공공보행공간과 문화시설을 연계하고, 시민들이 이 곳을 자유롭게 거닐고 쉴 수 있도록 만든다. 마찬가지로 시민들에게 개방하는 ‘포디움 옥상정원’을 조성하고 이동 편의를 위해 전용 엘리베이터 4대를 설치하기로 했다.
영동대로 전면부에는 복합문화공간을 짓는다. 전시장은 기초 과학을 중심 콘텐츠로 하는 체험형 과학관으로 만들어 미래 세대를 위한 공간으로 만든다. 공연장은 클래식·오페라·뮤지컬 등 다양한 무대를 소화할 수 있도록 최대 2000석 규모 가변형 공간으로 설계해 삼성동 일대 핵심 문화시설이 될 수 있도록 지원한다.
한편 GBC 조감도를 접한 시민들 반응이 엇갈리는 분위기다. 먼저 GBC가 서울 부동산 시장에서 강남권 위상을 더 끌어올릴 것으로 기대된다는 긍정적 의견이 나온다. 반면 기존 105층 랜드마크 타워 조감도와 비교하면 49층 3개동 완공 예상도 위용은 다소 떨어지는 것 같다는 반응도 적지 않다. 현재 서초구 양재동에 있는 2개동짜리 쌍둥이 빌딩 형태 현대차사옥을 단순히 커튼월 외관으로 바꾼 것이냐는 댓글도 눈에 띈다.
한 네티즌은 “무엇보다 현대차그룹이 GBC 사업에 수조원을 들여가며 12년 동안 고군분투할 동안, 테슬라는 자율주행을 완성시켰다는 것이 가장 안타까운 부분”이라는 의견을 남겼다.
명노준 서울시 주택실장은 “서울 동남권에 국제업무와 MICE 기능을 강화하는 의미가 있는 사업”이라며 “앞으로 서울시가 후속 절차를 꼼꼼히 챙겨 시민들이 실제 변화를 체감할 수 있도록 사업을 추진하겠다”고 했다. /leejin0506@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