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26.09.13 06:00
강원 심층조사 대상만 38.8%
처분 물량 한꺼번에 풀리면 농지가격 추가 하락 우려
[땅집고] 정부의 농지 전수조사가 본격화하면서 지방 농지 시장에 ‘매물 폭탄’ 우려가 커지고 있다. 조사 결과 농사를 짓지 않거나 불법으로 빌려준 사실이 확인되면 직접 경작하거나 농지를 처분해야 하는데, 지방 농지 거래가 이미 얼어붙어 있어 처분 물량이 한꺼번에 쏟아질 경우 가격 하락을 부추길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10일 농림축산식품부와 지방자치단체 등에 따르면 정부는 1996년 1월 1일 이후 취득한 농지를 대상으로 이용 실태를 조사하고 있다. 농지를 산 사람이 실제로 농사를 짓고 있는지, 장기간 방치하고 있지는 않은지, 다른 사람에게 불법으로 빌려주지는 않았는지 등을 확인하는 작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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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지는 일반 토지와 달리 원칙적으로 농사를 짓는 사람이 소유해야 한다. 이른바 ‘경자유전’ 원칙이다. 농사를 지을 목적 없이 땅값 상승을 노리고 농지를 사들이거나, 취득한 농지를 다른 사람에게 불법으로 빌려주는 행위를 막기 위한 것이다.
이번 조사에서는 무단 휴경이나 불법 임대차, 불법 전용 등이 의심되는 농지를 따로 추려 심층조사를 진행한다.
강원 지역은 조사 대상 규모가 특히 크다. 정부가 강원도 내 73만3300필지를 조사한 결과 38.8%가 추가 확인이 필요한 심층조사 대상으로 분류됐다. 일부 시·군이 자체적으로 조사한 물량까지 합치면 대상은 더 늘어난 것으로 파악된다.
강릉의 경우 올해 말까지 3만9083필지를 심층조사할 예정이다. 타지역 거주자가 보유한 농지나 법인 소유 농지, 경매 등을 통해 취득한 농지 등이 주요 조사 대상이다. 조사 결과 농지법 위반이 확인되면 소유자는 해당 농지에서 직접 농사를 짓거나 처분 절차를 밟아야 할 수 있다.
◇팔아야 할 땅 늘어나는데 살 사람은 없다
문제는 전수조사로 처분 대상 농지가 늘어날 가능성이 있는 상황에서 농지 시장은 이미 거래와 가격이 모두 크게 위축돼 있다는 점이다. 전국 농지 거래량은 2021년 29만5935필지에서 지난해 14만9230필지로 줄었다. 5년 사이 거래 규모가 절반 수준으로 쪼그라든 것이다. 같은 기간 ㎡당 평균 실거래가격도 8만1434원에서 5만3518원으로 34.3% 떨어졌다.
농지 거래량과 가격은 2021년을 정점으로 하락세가 이어지고 있다. ㎡당 평균 실거래가격은 2022년 7만7753원, 2023년 6만1612원, 2024년 5만7207원으로 매년 낮아졌다. 2021년 한국토지주택공사(LH) 직원들의 땅 투기 사태 이후 농지 취득 자격 심사가 강화되면서 비농업인의 투자 수요가 크게 줄어든 데다, 금리 상승과 지방 토지시장 침체, 농촌 고령화 등이 맞물린 결과로 풀이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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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별로는 지방의 가격 하락 폭이 더 두드러졌다. 2021년과 비교해 지난해 농지 평균 실거래가격은 제주가 약 43% 떨어졌고 경남 26.4%, 강원 26.0%, 충남 23.5%, 경북 17.5%, 충북 12.9% 각각 하락했다.
강원 지역 토지 거래 역시 크게 위축됐다. 올해 상반기 강원도 토지 거래량은 2만489건으로 최근 5년 상반기 평균 3만1391건보다 34.7% 감소했다. 강원 산간지역에는 경사가 심하거나 농기계가 들어가기 어려운 농지가 적지 않고, 농촌 고령화까지 겹치면서 농지를 사서 직접 경작하려는 수요도 줄고 있다.
농지가격 역시 한때 큰 폭으로 떨어졌다. 강원 농지 평균가격은 2022년 3분기 ㎡당 5만6554원에서 2024년 3분기 3만3564원으로 40.7% 하락했다. 이후 일부 회복했지만 과거 가격 수준에는 아직 미치지 못한다.
이런 상황에서 전수조사로 처분 대상 농지가 늘어나면 매물 적체가 심해질 수 있다. 농지를 팔아야 하는 사람은 늘어나는데 이를 받아줄 매수자가 부족하면 가격을 낮춰서라도 처분하려는 매물이 나오면서 주변 농지가격까지 끌어내릴 수 있다는 것이다.
부동산 업계 관계자는 “지방 농지는 주택이나 상가처럼 실수요가 두터운 시장이 아니다”며 “처분 물량이 단기간에 몰릴 경우 지역에 따라 가격 하락 압력이 커질 수 있다”고 말했다.
◇투기 막는다지만…농촌은 “현실 모르는 정책”
정부가 전수조사에 나선 취지는 농지 투기를 막겠다는 것이다. 농사를 지을 계획이 없으면서 농지를 사두거나, 취득한 뒤 장기간 놀리면서 땅값 상승만 기다리는 사례를 걸러내고 불법 임대차를 통해 농지를 사실상 투자 상품처럼 이용하는 행위를 차단하겠다는 것이다.
반면 농촌 현장에서는 실제 농촌 사정을 충분히 고려하지 않은 채 일률적인 잣대를 적용하는 것 아니냐는 목소리도 나온다. 농사를 짓지 않는다고 해서 모두 투기 목적으로 농지를 갖고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부모에게 농지를 상속받았지만 다른 지역에 거주해 직접 경작하기 어려운 경우가 있고, 고령이나 건강 문제로 농사를 계속 짓기 힘든 농민도 있다. 지방에서는 농지를 처분하려 해도 매수자를 찾기 어려운 만큼 단순히 ‘경작하지 않는다’는 이유만으로 처분을 요구할 경우 현실적으로 대응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결국 이번 전수조사의 관건은 투기 목적으로 방치한 농지와 고령화·인구 감소 등 농촌의 구조적 문제로 경작하지 못하는 농지를 얼마나 세밀하게 가려내느냐에 있다.
최종수 강원특별자치도의회 농림수산위원은 “농사를 짓지 않는 농지를 모두 같은 기준으로 처분 대상으로 볼 것이 아니라 실제 투기 목적이 있는지, 고령화나 상속 등 불가피한 사정이 있는지를 구분해 판단할 필요가 있다”며 “처분 대상 농지가 한꺼번에 시장에 나오면 농지가격 하락으로 이어질 수 있는 만큼 농촌 현실을 반영한 제도 보완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mjbae@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