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26.09.07 06:00
[땅집고 창간기획 3편] 학교-버스터미널 복합개발의 비밀
민간 제안, 신속인허가, 규제 제로 '전략특구'
동선 분리로 호텔과 초등학교가 한 건물에
기업과 인재는 더 매력적인 도시를 찾아 국경을 넘어 움직인다. 싱가포르 창이공항의 ‘쥬얼’, 일본 ‘도시재생 전략특구’와 ‘다카나와 게이트웨이 시티’, 홍콩의 ‘철도+도시 복합개발’까지…. 땅집고는 세계 선진 도시의 현장 사례와 인터뷰를 통해 그들의 성공 공식을 짚어보고, 이를 용산국제업무지구·창동아레나·한강 개발과 교통 계획 등 서울이 마주한 과제들에 대입했다. 땅집고 창간 7주년 기획 ‘서울 재창조 - 도시 경쟁력 강화를 위한 제언’은 10여회에 걸쳐 서울을 경쟁력을 갖춘 도시로 다시 그리기 위한 방안을 제언한다./편집자 주
[땅집고] 도쿄의 관문인 도쿄역 야에스(八重洲) 입구 맞은편. 도로 하나를 사이에 두고 높이 솟은 45층(높이 240m) 규모의 초대형 복합 시설 ‘도쿄 미드타운 야에스’가 위용을 자랑한다. 지하 1층~지상 3층에는 쇼핑몰이, 중층부에는 글로벌 기업들의 오피스와 쇼핑센터가, 최상층부엔 5성급 럭셔리 호텔인 ‘불가리 호텔 도쿄’가 들어서 있다.지하에는 일일 운행 횟수 1500회, 연간 이용객 수 1000만 명에 달하는 일본 최대 버스터미널이 자리 잡고 있다.
이 거대한 첨단 복합건물의 1~4층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뜻밖의 풍경이 펼쳐진다. 바로 100년의 역사를 가진 공립 초등학교인 ‘조토(城東)초등학교’가 빌딩의 일부분으로 당당히 자리 잡고 있다. 학교와 버스터미널, 호텔이라는 파격적 조합은 한국은 물론 과거 일본에서도 불가능했다. 지하시설까지 포함한 실질 용적률이 2000%가 넘는 엄청난 인센티브를 받은 이유는 뭘까.
◇낡은 상점과 고속버스로 뒤엉킨 ‘도심 흉물’의 변신
2018년 12월 착공 전만 해도 이 일대는 도쿄 도심의 대표적인 흉물이자 교통지옥이었다. 낡은 소형 건물과 상점들이 난립해 있었고 도로변에는 일본 전역을 오가는 고속버스 간이정류장들이 무질서하게 들어서 하루 종일 차량과 보행자가 엉켜 몸살을 앓았다.
1990년대부터 재개발 논의가 꾸준히 이어졌지만 선뜻 첫 삽을 뜨지 못했다. 200명이 넘는 토지 소유자와 임차 상인들의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혀 있는데다, 지역의 터줏대감인 조토초등학교 이전 문제가 걸림돌이었기 때문이다. 당시 조토초등학교는 노후 건물 사이에 갇혀 햇빛조차 제대로 들지 않았다. 도심 공동화 현상이 심화되면서 전체 학생 수가 60여 명 수준까지 급감해 폐교 위기에 내몰려 있었다. 정부와 지역 주민 모두 재개발의 필요성에는 깊이 공감했지만, 도심 한복판의 막대한 땅값, 학교 이전 및 신축 보상비 등을 감안하면 사업성이 전혀 나오지 않는 ‘불가능한 프로젝트’처럼 보였다.
◇정부·지자체·민간 뭉친 ‘국가전략특구’… 3~4년 걸리던 인허가 1년 내로
일본 정부와 도쿄도가 2015년 이 지역을 도시재생을 위한 ‘국가전략특구’로 지정하면서 반전의 계기가 마련됐다. 국가전략특구는 2013년 아베 신조 내각 시절 도입된 제도. 지자체와 민간 기업, 중앙정부가 하나의 협의체를 구성해 ‘원스톱 인허가’를 진행하는 것이 핵심이다. 종전에는 도시계획을 하나 변경하려면 국토교통성, 환경성, 지자체, 지역 주민과의 복잡하고 기나긴 연쇄 승인 절차를 거쳐야 해 3~5년의 시간이 걸렸다.
하지만 국가전략특구로 지정되면 내각총리대신(총리)이 본부장을 맡는 국가전략특구자문회의에서 일사천리로 심의를 진행한다. 수직적이고 속도감 있는 ‘톱다운(Top-down)’ 방식을 적용해 관료주의적 핑퐁 행정을 단칼에 제거했다. 그 결과 통상 수년씩 걸리던 도시계획 승인 기간이 단 1년 이내로 대폭 단축됐다.
총괄 디벨로퍼로 사업을 주도한 미쓰이부동산은 수십년 진척이 없던 재개발의 난제를 일거에 돌파할 방안을 제시했다. 실질 용적률 2000%가 넘는 인센티브를 받는 대신, 지하 고속버스터미널과 조토초등학교를 신축해 지자체에 기부채납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땅값을 포함해서 조 단위의 혈세가 필요한 지역 숙원 사업을 단칼에 해결할 수 있는 길이 열린 것이다.
◇“학생과 호텔 투숙객 동선, 1cm도 안 겹친다”… 입체도시계획의 기술
국내 법상 학교 경계로부터 일정 거리 내(절대·상대보호구역)에는 관광숙박시설(호텔)이나 소음·매연 유발 시설의 입점이 엄격히 제한된다. 일조권, 소음, 학생 안전, 용도지역 규제 문제 때문에 학교와 오피스 아파트를 단일 건물로 신축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하물며 하나의 건물 안에 학교와 버스터미널, 호텔을 상하층으로 배치하는 것은 상상조차 하기 어렵다.
일본 역시 유사한 칸막이 규제가 존재한다. 그러나 일본은 전략특구라는 기법을 활용해 ‘입체적 도시계획’과 ‘완벽한 동선 분리’라는 기술적 해법으로 돌파했다.
건물 1~4층 일부에 배치된 조토초등학교는 빌딩 뒤편에 오직 학교 구성원만 이용할 수 있는 전용 출입구와 보안 엘리베이터를 별도로 설치했다. 내부 시설도 놀라울 정도로 알차다. 2층에는 체육관, 3층에는 실내 수영장과 교실, 4층에는 날씨에 따라 열고 닫을 수 있는 개폐식 지붕을 갖춘 운동장이 들어섰다. 정원 한쪽에는 학생들이 직접 벼와 채소를 가꿀 수 있는 논과 밭까지 조성했다.
최상층부(40~45층)에 입점한 ‘초특급 불가리 호텔 도쿄’는 하층부의 교육 시설이나 중층부 오피스를 전혀 거치지 않고 곧바로 고층으로 직행하는 전용 로비 및 전용 엘리베이터 라인을 독립적으로 구축했다. 초등학생과 호텔 투숙객, 오피스 입주자가 건물 내에서 마주치거나 동선이 겹칠 확률은 ‘0%’다.
지하 1~2층에 조성된 ‘버스터미널 도쿄 야에스’는 매연과 소음 문제를 최첨단 환기·차단 시스템으로 완벽하게 제어했다. 보행자 승강장에는 지하철 스크린도어와 같은 밀폐형 기밀 도어(PSD)를 설치해 매연 유입을 근본적으로 막았고, 지하 터미널에서 발생한 공기는 고층부 특수 배기구를 통해 도심 상공으로 안전하게 방출된다.
◇흉물이 랜드마크로… ‘칸막이 행정’에 갇힌 한국에 던지는 시사점
2023년 완공 후 연면적 30만㎡ 규모로 거듭난 ‘도쿄 미드타운 야에스’는 도쿄 도심의 지형과 삶의 방식을 한순간에 바꿔놓았다. 도로변을 가득 채우며 교통 체증을 유발하던 고속버스가 지하 터미널 안으로 들어가자, 도쿄역 앞 도로변은 쾌적한 보행자 전용 광장으로 탈바꿈했다. 지하의 버스터미널, 하층부의 초등학교, 중층부의 최첨단 오피스 및 상업시설, 고층부의 최고급 호텔이 유기적으로 공존하는 완벽한 ‘소도시(Micro City)’가 탄생한 것이다.
폐교 위기에 내몰렸던 조토초등학교의 반전은 더욱 드라마틱하다. 최첨단 교육 시설과 철저한 보안시설을 갖춘 ‘빌딩 속 초등학교’라는 소문이 나면서 전학 희망자들이 속출했다. 60여 명에 불과했던 전교생 수는 재개교 후 200명 이상으로 늘어났다.
“학교 주변엔 유해·위해 시설이 절대로 들어설 수 없다”, “버스터미널 같은 소음 시설은 무조건 도시 외곽으로 치워야 한다”는 수십 년 전의 평면적·칸막이 행정에 갇혀 있는 한국 도시개발의 현실과 극명하게 대비된다. 기술을 바탕으로 한 입체적 동선 분리와 과감한 국가적 규제 완화가 어떻게 도심에 새로운 생명력을 불어넣고 도시 경쟁력을 극대화하는 지를 도쿄 한복판의 초대형 복합 프로젝트가 보여주고 있다. /hbcha@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