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26.09.03 06:00
[땅집고] "망국적 부동산 투기를 무슨 수를 써서라도 타파하겠다" "망국적 부동산 불로소득 공화국 반드시 탈출", “망국적인 부동산 공화국에서 벗어나…”
이재명 대통령은 망국적 부동산 투기, 망국적인 부동산 공화국 등의 용어를 자주 사용한다. 이런 말을 들을 때 마다 우리가 한국을 망국적이라고 자학할 만큼, 이상하고 부패한 나라일까라는 생각이 든다. 망국적 투기공화국은 부패한 전제군주나 독재자가 통치하고 있는 후진국을 연상시킨다. 계엄을 극복힌 민주주의 국가로, 세계 10대 경제 대국으로 도약한 한국에 붙이기에는 너무 기괴한 레토릭이다. 한국의 주택문제가 심각하다고 해도 지니친 자기 비하이다.
도대체 주택문제를 해결한 유토피아 공화국은 있는가. 대도시에서 집값 폭등과 임대매물 부족은 한국만의 문제가 아니다. 영국의 경제주간지로 세계적인 명성을 얻고 있는 이코노미스트도 한때 영국의 집값 문제와 관련 한달에 한두번 집값 폭등 문제를 다룬 기사들이 등장할 때도 있다. 집값이 폭등해서 경제위기로 연결될 수 있다는 우려를 담은 글들도 많았다.
Housing Crisis(주거위기), The Housing Trap(주거의 덫), Housing Inequality(주거의 불균등), Spatial Apartheid (공간적 아파르트헤이트) 등의 단어는 집값이 치솟을 때마다 선진국의 언론에 등장한다. 서울의 집값이 급등한 것은 한국인의 땅이 유난히 좁아서도, 한국인들이 투기소득, 불노소득에 환장해서도 아니다. 경제가 성장하는 국가의 대도시에 공통적으로 발생하는 현상이다. 영어에 붐앤버스트(Boom and Bust)라는 용어가 있다. 경제나 자산 시장이 크게 성장하는 활황(붐) 뒤에 갑자기 급격한 불황(버스트)으로 무너지는 반복적인 주기를 뜻한다. 자본주의 시장경제에서 붐앤버스트는 숙명이다.
요즘 주택가격 폭등 문제가 한국만큼 자주 등장하는 나라가 대만이다. 대만언론에 자주 등장하는 단어가 房價不跌(방가부절)이다. 대만에서 집값은 절대 떨어지지 않는다는 의미로, 자본이 생산적 산업으로 흘러가지 않고 부동산 투기 시장에 몰리는 기형적 자본 쏠림을 지적하는 단어이다. 鬼島(귀도)는 살인적인 집값과 동결된 임금, 자산 양극화에 절망한 대만 청년들이 ‘지옥 같은 나라’라고 자조하는 신조어이다.
◇노태우 정부의 망국적 부동산 공화국론
미국도 크게 다르지 않다. 전 세계를 혼돈으로 몰아 넣은 2008년 리먼쇼크는 주택 버블의 붕괴가 직접적인 원인다. 미국 역시 주기적으로 주택 버블의 버블형성과 붕괴라는 과정을 거쳤다. 미국에서는 슈퍼스타 시티(Superstar City) 이론이라는 것도 있다. 인적·물적 자원이 집중되어 고소득층의 주택 수요는 끊이지 않지만, 한정된 토지와 개발 규제 등으로 신규 주택 공급이 제한되어 집값이 소득 상승률보다 훨씬 빠르게 치솟는다는 이론이다. 이 이론은 2000년대 중반 미국 펜실베이니아대 와튼스쿨의 조셉 그르코(Joseph Gyourko) 교수 등이 뉴욕, 샌프란시스코, 시애틀 같은 대도시의 부동산 폭등을 분석해 정립한 이론이다.
이재명 대통령이 부동산 망국론을 제기한 한국의 주택버블은 어느 정도 수준일까. 블룸버그 통신이 2021년 가구소득 대비 주택가격 비율(PIR)과 임대수익 대비 주택가격 비율(PRR), 실질·명목 집값 상승률, 대출 증가율 등을 토대로 나라별 집값 거품 순위를 평가한 결과, 버블 1위는 뉴질랜드였다. 2위는 캐나다였다. 다음은 스웨덴, 노르웨이, 영국, 덴마크, 미국 순이다. 한국의 PIR은 60.7로 장기 평균치 100을 크게 밑돌면서 19위에 불과했다. 당시는 문재인 대통령이 집권시기로 집값과의 전쟁을 벌이고 있을 때 였다.
그런 뉴질랜드의 주택시장은 버블붕괴로 고통을 겪고 있다. 금리가 급등하면서 집값이 폭락한 것이다. 집값이 폭락한 나라의 국민들은 행복할까. 아니다. 경제침체로 이어지면서 전직 총리를 포함해서 젊은층들이 일자리를 찾아 호주로 이주하고 있다. 일본과 중국이 주택버블 붕괴로 경기침체의 깊은 터널에 빠졌다. 주택버블이 터진다고 국가가 망할 것이라는 식의 인식은 역사적 사실과도 동떨어진다. 일본과 중국은 여전히 세계 2,3위의 강국이다.
◇김용범의 뒤늦은 실토 “반도체특수와 추경이 초래한 집값 상승”
전세계적으로 보면 펜더믹시절의 저금리가 초래한 집값 급등은 어느 정도 안정세를 되찾고 있다. 그런데 유독 집값 폭등이 문제가 되는 나라가 대만과 한국이다. 두나라의 공통점은 반도체 특수로 수출이 사상 최고치 기록을 갈아치우고 있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달러 돈벼락’이 떨어지면서 집값도 치솟고 있는 것이다. 김용범 전 청와대 정책실장도 2일 보도된 한국일보 인터뷰에서 “우리 정부 들어 즉각적인 추경과 반도체 호황 등으로 부동산 수요의 힘이 역대급으로 강해졌다. 공급은 갑자기 늘릴 수 없는데 폭발하는 수요를 어떻게 막겠느냐”고 주장했다. 그런데도 김 전 실장의 실제 정책은 다주택자, 고가 주택수요자들에게 세금 폭탄을 터뜨리고 청년 서민들의 대출까지 막는 규제였다. 반도체 돈 벼락이 초래한 집값 상승이라면서 해법을 어뚱한데서 찾으니 정권 지지율이 폭락한 것이다.
한국의 집값이 끊임없이 치솟는 것처럼 이야기하지만, IMF외환위기, 리먼쇼크의 여파를 받은 2010년대, 윤석열 정부 초반에는 부동산 부양책 이야기가 나올 정도로 집값이 내렸다. 박근혜 정부에서 빚내서 집사라고 할 정도 집값의 하락이 경제의 짐으로 작용하기도 했다.
주택가격은 크게 보면 주식시장처럼 상승과 하락의 사이클을 그리며 장기적으로 우상향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래서 선진국의 정치인, 행정부가 집값과 관련한 정책 목표를 세우지 않는다. 대부분의 정책이 주택공급 확대와 주택구입자금에 대한 대출확대, 서민을 위한 임대주택공급 확대이다.
◇좌파 선동에 빠진 부동산 투기 공화국론
이재명 대통령이 "망국적인 부동산 공화국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역설했는데, 세계 10대 강국으로 도약한 한국에서 갑자기 망국 타령을 하는 것 자체가 넌센스이다.
한국에서 정말 망국적 부동산 공화국이 유행했던 시절이 있었다. 1980년대 올림픽 특수와 신도시 개발, 3저 호황 등으로 전국에 부동산 투기 광풍이 불었다. 노동 가치를 훼손하고 자산 불평등을 야기하는 부동산 투기를 ‘나라를 망하게 하는 병’이라는 뜻의 '망국병'으로 부르기 시작했다. 당시 노태우 대통령은 관련 발언을 남겼다."우리 경제가 안고 있는 가장 시급한 문제는 분배 격차의 해소와 불로소득의 원천적 봉쇄입니다. 부동산 투기는 국가의 백년대계를 위협하는 망국병입니다."(1989년 4월, 경제사회 균형발전 확대회의 토론회 중)
노태우 대통령은 분당, 일산, 평촌, 산본, 중동 등 5개 신도시를 신규 지정하여 총 90만 호를 포함한 200만 호 건설 계획을 추진했다. 또 택지소유상한제, 토지초과이득세, 개발이익환수제등 토지의 사적 소유권을 일정 부분 제한하고, 부동산 불로소득을 국가가 환수하겠다는 파격적인 토지공개념을 입법화했다. 1990년 전국 주택보급률이 72.4%, 서울 주택보급률이 50.6%였다. 그동안의 경제 발전 덕분에 전국 주택보급률은 103%, 서울은 94%로 높아졌다.
세계 10대 강국으로 도약한 지금 한국의 대통령이 망국적 부동산 공화국이란 말을 꺼내는 것은 역사 발전 자체를 부정하는 것이다. 진보정권이라는 김대중, 노무현, 문재인 대통령을 거치면서 한국의 부동산 세제와 투기 억제책은 이미 전 세계 최고수준으로 발전했다. 전세계적으로 유례를 찾기 어려운 종부세가 도입됐다. 용산구 한남동 한남더힐의 초고가 주택 보유자는 1년에 약 7633만 원의 보유세를 내고 있다. 양도세 등 거래세를 놓고 보면 한국은 부동산 세금 전 세계1위라는 주장도 있다.
선진국이라는 영국은 집주인이 부담하는 주택 보유세라는 것이 아예 없다. 임대주택 천국이라는 독일은 다주택자들이 10년 임대를 하면 양도세를 전액 면제해준다. 일부에서 1% 보유세를 주장하는 미국의 캘리포니아는 취득당시 가격을 기준으로 과세한다. 집값이 아무리 올라도 과표 상승률은 2%로 제한된다. 실질 보유세 1%라는 뉴욕도 과세표준 상한선이 연 6%, 5년간 20%로 제한된다. 최근 이재명 정부는 종합부동산세의 인상한도를 150%에서 200%로 높이려 했다. 그런데ㅗ 한국을 부동산투기 공화국이라고 비하하는 것은 짜깁기 자료를 학술자료로 둔갑시킨 일부 좌파들의 선전 선동에 지나지 않는다. 선진국들이 모두 부동산 버블 붕괴를 경험했지만, 자국민을 부동산 투기에 중독된 민족으로 비하하는 듯한 발언을 나오지는 않는다. /hbcha@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