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26.08.28 09:38 | 수정 : 2026.08.28 09:40
탁상행정의 끝판왕 8.3대책
"차라리 관심법으로 투기자 가려라"
[땅집고] “해외 파견 주재원이라 앞으로 남은 기간이 3년이나 되는데, 이런 경우에는 어떻게 해야 하나요?”
정부가 비거주 1주택자에 대한 규제를 강화하면서 예외 요건을 둘러싼 논란이 커지고 있다. 투기 목적의 갭투자를 막겠다는 취지에는 공감하지만, 실제 규정을 적용하는 과정에서 취학이나 전근, 해외 파견 등 불가피한 사정으로 집에 살지 못하는 실수요자까지 규제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면서다.
논란은 지난 13일 정부가 발표한 부동산 금융 정책에서 시작됐다. 금융위원회는 수도권·규제지역 아파트를 보유한 1주택자가 해당 주택을 임대하면서 본인과 배우자가 한 번도 거주하지 않은 경우 전세대출 신규 이용과 만기 연장을 원칙적으로 제한하기로 했다.
집을 사놓고 직접 거주하지 않은 채 임대하는 이른바 갭투자 수요를 차단하겠다는 취지다. 정부는 내년부터 수도권과 규제지역 비거주 1주택자의 전세대출을 전면 제한할 방침이다. 현재 해당 주택을 보유한 1주택자의 전세대출 규모는 약 9조3000억원, 6만건 수준으로 추산한다.
문제는 단순히 ‘비거주’라고 해서 모두 투기 목적이라고 볼 수 없다는 점이다. 직장 발령이나 자녀 교육, 해외 파견 등 개인의 의지와 관계없이 거주지를 옮겨야 하는 사례도 적지 않기 때문이다. 정부도 이런 점을 고려해 부득이한 사유가 있는 경우에는 예외를 인정하겠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구체적인 기준이 마련되면서 오히려 “왜 이 사유는 되고 저 사유는 안 되느냐”는 반발이 커지고 있다.
◇ 고교 취학은 되는데 중학교는 왜 안 되나
논란이 가장 집중된 부분은 실거주 인정과 관련한 예외 요건이다. 12일 재정경제부가 입법예고한 종합부동산세법 개정안에는 취학, 전근, 해외 발령 등 부득이한 사유로 주거를 이전하는 경우 일정 요건을 충족하면 최대 3년까지 해당 주택에 거주한 것으로 인정하는 내용이 담겼다.
인정 사유에는 고등학교·대학교 취학, 직장 변경이나 전근, 1년 이상 치료가 필요한 질병, 학교폭력 피해에 따른 전학, 국외 취학·근무로 인한 출국, 60세 이상 직계존속 동거봉양 등이 포함됐다. 반면 초등학교나 중학교 취학, 손주 돌봄을 위한 합가, 관사 거주 등은 명확한 예외 사유로 포함되지 않았다.
이를 두고 형평성 논란이 제기됐다. 현실의 다양한 주거 이동 사유를 일률적인 기간과 조건으로 판단하기 어렵다는 지적에서다. 특히 해외 파견이나 장기 전근처럼 언제 복귀할지 정확히 예측하기 어려운 경우가 대표적이다. 실제로 직장 사정으로 수년간 다른 지역이나 해외에서 생활해야 하지만 기존 주택을 처분하지 않고 임대하는 사례도 있다.
공공기관 이전으로 비거주자가 된 이모(45)씨는 “근무상 이유로 다른 지역에 거주하는 것은 개인이 투자 목적으로 선택한 것이 아니다”라며 “취학이나 질병처럼 기간이 정해진 사유와 달리 근무지는 정년까지 바뀌지 않을 수도 있는데 이를 어떻게 구분할 것인지 의문”이라고 했다. 장애 자녀를 둔 신모(34)씨도 “특수학교 배정을 위해 어쩔 수 없이 거주지를 옮긴 경우까지 비거주로 분류해서는 안 된다”며 “실제 사정을 고려해 예외를 인정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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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거주 1주택자 부담 완화 검토
논란이 커지자 정부는 당초 방침에서 한발 물러서는 모습이다. 여당인 더불어민주당 내부에서도 실거주 여부에 따라 1주택자를 과도하게 차등하는 것은 조정할 필요가 있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김민석 대표는 지난 23일 고위당정협의회에서 “세제 개편에 깊이 있는 숙의가 필요하다”고 언급했다.
이어 25일 이재명 대통령은 국무회의에서 “정책안은 국민 의견을 듣고 수정, 보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구윤철 경제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도 “이번 세제 개편안은 정부 확정안이 아니다”라며 국민 의견을 충분히 들은 뒤 수정해 국회에 제출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실제로 정부는 당초보다 비거주 1주택자의 부담을 완화하는 방향으로 세제 개편안을 수정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다음달 3일 2026년 세제개편안 국회 제출을 앞두고 종부세 기본공제 축소를 철회하고, 실거주 인정 방식을 대폭 완화하는 방안 등이 논의될 예정이다.
비거주 1주택자의 기본공제도 현행 12억원 수준을 유지하거나 실거주 1주택자와 같은 14억원 수준으로 조정하는 방안이 거론된다. 이 밖에 세 부담 상한선 하향, 장기보유특별공제의 보유기간 공제 유지, 실거주 인정 예외 사유 확대 등도 논의 대상이다.
다만 예외 요건을 지나치게 넓히면 당초 규제 목적이었던 투기 수요 차단이 어려워질 수 있다는 반론도 나온다. 그러나 일부 전문가들은 비거주 1주택자에 대한 부담이 완화될 경우 집주인이 세제나 금융 규제를 피하기 위해 세입자를 내보내고 직접 거주해야 할 유인이 줄어들기 때문에 임대차 시장에 긍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고 본다. 김효선 KB국민은행 부동산수석전문위원은 “규제가 완화되더라도 시장의 큰 흐름까지 바뀌지는 않겠지만 전월세 시장의 불안 심리는 다소 진정될 수 있다”고 말했다. /kso@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