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26.08.18 10:42
과천 경마장 이전의 민주적 절차 | 최민섭 서울벤처대학원대학교 부동산학과 교수, 前 도시정책학회 회장
[땅집고] 과천의 상징이자 시민들과 희로애락을 함께해 온 과천경마공원의 이전이 확정되고 추진 일정이 가시화 되면서 지역공동체의 민심이 들끓고 있다. 정부는 경마공원부지에 약 9800가구 규모의 아파트를 공급하겠다는 계획을 내놓았다. 과천경마공원은 단순한 정부 소유의 개발 대상지가 아니다. 과천이라는 도시가 가진 유무형의 자산이며 시민 공동체의 일부다. 그런 공간의 운명을 결정하면서 정작 그곳에서 살아가는 시민과 지방자치단체의 목소리가 충분히 반영됐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첫 번째 문제점은 결정 과정의 ‘비민주성’이다. 과천경마공원 이전 대책 발표 전에 지자체와 사전 협의와 동의가 있었는지 그리고 발표 후 지난 6개월 동안 정부가 해당 지역 시민들에게 어떤 의견수렴을 했는지 알 수 없다. 경마공원 이전이 반드시 필요하다면 이전 이후에 과천의 도시구조를 어떻게 재편할 것인지, 지역경제의 충격을 어떻게 완화할 것인지, 지방재정 감소를 어떻게 보완할 것인지, 교통과 교육·환경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 인지를 반드시 이전 결정을 하기 전에 함께 논의해야 한다. 대규모 도시개발 사업을 중앙정부가 일방적으로 결정하고 지방정부와 주민에게 뒤늦게 받아들이라고 한다면, 이는 지방자치제도의 기본 취지와 근간을 흔드는 중대한 사안이다. 지방자치의 존재 이유를 묻고 싶다.
두 번째 문제는 숫자다. 9,800가구라는 숫자 뒤에 숨은 '디테일의 악마'를 밝혀야 한다. 왜 하필 9,800가구인가. 정부는 시민들에게 이 숫자가 어떻게 산출됐는지 충분히 설명했는가. 이는 단순히 9,800가구의 집이 추가된다는 뜻이 아니다. 수만 명의 인구와 자동차, 학교, 상하수도, 병원, 생활편의시설이 함께 들어온다는 의미다. 과천은 이미 각종 개발사업으로 도시 인프라가 포화상태이다. 특히 서울로 연결되는 주요 간선도로의 출퇴근 시간대 교통 혼잡은 시민들이 일상적으로 겪는 문제다. 획기적인 광역교통 대책과 도로망 확충 없이 대규모 주택을 추가 공급한다면 교통 대란은 불 보듯 뻔하다. 학교와 상하수도 등 생활 인프라 역시 마찬가지다. 도시는 사람의 삶을 담아낼 수 있는 물리적·사회적 수용 능력이 있어야 한다.
더구나 과천은 다른 도시와 달리 쾌적한 주거환경과 녹지, 낮은 도시 밀도를 중요한 가치로 삼아왔다. 그런 과천에 대규모 고밀도 아파트 단지를 조성한다면 도시의 성격 자체가 바뀔 수 있다. 9,800이라는 숫자가 단지 주택 공급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행정적 숫자에 그쳐서는 안 되는 이유다. 정부는 이제라도 과천시민들에게 주택공급 숫자에 담겨있는 의미를 상세하게 설명해야한다.
세 번째는 도시의 역사성과 문화적 정체성이다. 과천경마공원은 과천시민 삶의 일부분이다. 단순한 주택공급용 부지가 아니라 과천의 역사와 함께하며 시민들의 휴식처이자 레저, 문화공간으로 자리잡아온 핵심 다중이용시설이다. 경마일이면 수많은 방문객이 과천을 찾고 주변 상권을 이용한다. 지방재정 측면에서도 경마공원이 차지하는 비중은 작지 않다. 경마공원이 이전할 경우 지방세 감소에 따른 재정 여건 악화 가능성도 따져봐야 한다.
더 심각한 문제는 이전 비용이다. 이전 비용만 약 2조4000억 원에 달하는 것으로 거론되고 있지만, 그 막대한 비용을 누가, 어떻게 부담할 것인지 명확하지 않다. 이전 기간을 놓고도 한국마사회와 정부의 전망이 크게 엇갈린다.
이 정도 규모의 국가적 사업이라면 먼저 사업비와 이전 기간, 재원 조달 방안부터 국민 앞에 명확하게 제시하는 것이 순서다.
또한 경마공원이 제공해 온 공공적 기능도 빼놓을 수 없다. 경마공원은 시민들에게 열린 녹지와 휴식공간을 제공해왔다. 농수산물 직거래 장터인 '바로마켓'은 생산자와 소비자를 연결하는 지역 상생의 장으로서 기능을 해왔다. 가족 단위 시민들에게는 도심에서 자연을 즐길 수 있는 공간이기도 했다. 이 공간이 사라지고 그 자리에 고밀도 아파트 단지가 들어선다면 과천의 풍경은 완전히 달라진다. 한번 사라진 도시의 공간과 경관은 다시 되돌릴 수 없다. 그래서 개발 속도보다 중요한 것이 개발의 방향과 절차다. 주택 공급은 필요하다.
그러나 공급량만을 앞세운 도시개발이 항상 좋은 개발은 아니다. 도시에는 숫자로 환산하기 어려운 가치가 있다. 역사, 경관, 녹지, 공동체, 시민들의 기억과 자부심이 그것이다. 그래서 주민의 동의와 참여가 배제된 개발은 아무리 그럴듯한 숫자와 청사진을 내놓아도 정당성을 얻기 어렵다. 시민들이 느끼는 상실감과 박탈감까지 행정의 비용으로 계산해야 한다. 정부는 과천이라는 도시가 그동안 견고하게 지켜온 문화적 정체성과 시민들의 자부심에 큰 상처를 남겼다. 시민의 눈으로 바라본 이번 계획은 단순한 개발 수준을 넘어 공동체의 정신적 건강과 지역적 고유성을 무참히 짓밟는 ‘무형의 폭력’에 가깝다.
지금 정부가 해야 할 일은 속도를 높이는 것이 아니다. 과천시와 시민들에게 먼저 계획을 설명하고, 의견을 듣고, 함께 대안을 만드는 것이다. 과천경마공원은 정부가 마음대로 처분하고 사용할 수 있는 단순한 시설이 아니다. 도시의 미래는 주민을 배제한 채 설계도 위에서 결정할 수 없다. 도시 개발은 시민의 삶을 더 나아지게하기 위해 존재해야 한다. 시민의 삶을 희생시켜 개발 목표를 달성해서는 안 된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 정부는 일방통행 식 행정을 멈추고 과천시와 시민들이 참여하는 새로운 도시개발의 ‘상생모델’을 만들어야 한다. 경마공원 이전을 둘러싼 갈등이 돌이킬 수 없는 지역사회의 상처가 되기 전에 정부가 먼저 손을 내밀어야 한다. '무형의 폭력'이라는 시민들의 절규가 들불처럼 번진 뒤에야 움직이는 행정은 이미 늦다. 지금이 과천의 미래를 다시 설계할 마지막 골든타임이다. /글=최민섭 서울벤처대학원대학교 부동산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