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복 메뉴 건너뛰기 (컨텐츠영역으로 바로 이동)

"고시원에 욕조 넣으면 청년주택"…폐버스 이어 황당 국토부 대책

    입력 : 2026.08.13 16:03 | 수정 : 2026.08.13 16:13

    황희 '버스 하우스' 제안에 이어 국토부 고시원 규제 완화까지
    "안전 대책 없는 용도 변경 위험"

    [땅집고] 2026년 5월 10일 오후 서울 동작구 흑석동 일대에 고시원. /조선DB

    [땅집고] 청년 주거난 해법을 둘러싼 논의가 엉뚱한 방향으로 흐르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쪽에서는 여당 중진 의원이 폐차 예정인 버스를 개조해 청년 임시 거처로 쓰자는 아이디어를 내놨고, 다른 한쪽에서는 정부가 고시원의 욕조 설치를 허용하고 책상 설치 의무를 없애는 건축기준 완화를 추진하고 있다.

    둘 다 ‘신속한 공급’과 ‘규제 합리화’라는 명분을 내세우지만, 결과적으로는 청년들에게 정상적인 집 대신 임시방편적 공간을 권하는 모양새라는 비판이 겹친다.

    ◇버스로 시작해 고시원으로 끝난 청년 주거 논쟁

    더불어민주당 황희 의원은 7일, 폐기 예정인 버스를 리모델링해 단기 주거 공간으로 제공하자는 제안을 올렸다. 도시공학 박사 출신인 황 의원은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의 ‘보트하우스’에서 착안했다며, 이 방식이면 신속한 공급이 가능하고 주택 1만 세대를 5000억원 수준에 마련할 수 있다는 점을 근거로 들었다.

    네덜란드의 보트하우스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주택 부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버려진 배를 개조해 살기 시작하면서 자리 잡은 주거 형태다. 황 의원은 이 사례를 들며 정부의 주택 공급 정책이 민간 의존도가 높아 속도가 더딜 수 있는 만큼, 청년들이 안정된 주택을 마련하기 전까지 버스 하우스를 임시 거처로 활용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 제안은 곧바로 논란에 휩싸였다. 누리꾼들은 “이미 청년 주거 대책으로 거론됐던 ‘버스 개조 주거’ 방안을 다시 끌어온 것 아니냐”, “버스에서 주택난이 집이 없어서냐고, 집값이 비싸서지”, “평생 차박이냐” 라는 비꼬는 반응까지 나왔다.


    [땅집고] 국토교통부는 12일, '대중생활시설 건축기준 일부개정 고시안 행정예고'를 했다. /조선DB
    시세·실거래·낙찰가율 한눈에…AI 예측하는 내일의 경매 도전하기

    ◇정부는 고시원에 욕조 허용…"주거 대안으로 활용"

    공교롭게도 비슷한 시기 국토교통부는 고시원 건축기준을 손보겠다고 예고했다. 그동안 고시원은 취사시설과 욕조 설치가 금지돼 있었고, 방마다 책상 등 학습시설을 갖추도록 의무화돼 있었다. 하지만 국토부는 앞으로 욕조 설치를 허용하고 책상 설치 의무는 없애는 방향으로 다중생활시설 건축기준을 개정하겠다고 밝혔다.

    명분은 ‘1인 가구 주거 공간으로 활용되는 현실을 반영한 합리적 개선’이다. 실제로 국토부의 2022년 주거실태조사를 보면 주택 이외의 거처에 사는 약 44만3000가구 중 고시원·고시텔 거주 가구가 15만8000가구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한다. 고시원을 선택한 이유로는 직장·학교와의 접근성, 저렴한 월세, 독립된 개인 공간 등이 꼽혔고, 정작 ‘공부하기 위해서’라는 응답은 찾아보기 어려웠다는 게 국토부의 설명이다.

    여기에 현 정부는 8·13 대책 발표에서 오는 2027년까지 서울·경기에서 착공하는 민간 주택사업에 대출 이자 1%포인트를 재정으로 보조하기로 했는다. 그런데 그 대상에는 아파트, 연립·다세대·다가구는 물론 오피스텔·고시원 등 준주택까지 포함했다. 청년 주거 대안으로 사실상 고시원을 공식 편입시킨 셈이다.
    .
    [땅집고] 2018년 11월 9일, 종로구 관수동 고시원에 화재가 발생해 7명이 사망하고 12명이 다치는 인명피해가 발생했던 현장. /조선DB

    ◇삶의 질 개선 없는 용도 변경은 위험

    문제는 고시원이 주거지가 아니라 법적으로는 여전히 근린생활시설이라는 점이다. 다중생활시설로 분류되는 고시원은 불특정 다수 이용을 전제로 한 시설이어서 주택과는 애초에 규정 체계가 다르다.

    특히 고시원은 대형 화재 참사의 아픈 기억을 갖고 있다. 지난 2018년 서울 종로구 국일고시원 화재로 7명이 숨지고 11명이 다쳤고, 2022년에는 영등포구 고시원에서 방화로 추정되는 불이 나 2명이 사망하고 17명이 대피했다.

    좁은 복도와 미로형 방 배열 때문에 대피가 어려운 구조적 취약성이 반복적으로 지적된 지점이다. 이런 참사를 겪으며 스프링클러 설치가 의무화되고 방별 취사·욕조 설치가 금지된 것도 비주거 시설이 편법 주거시설로 변질되는 것을 막기 위한 최소한의 장치였다.

    주거기본법상 1인 가구 최저주거기준(14㎡)에도 못 미치는 좁은 방에 욕조까지 들어서면, 이는 주거 환경 개선이 아니라 시설 고급화 명분으로 임대료만 올리는 ‘프리미엄 고시원’ 양극화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는 지적도 나온다.

    일각에서는 이런 흐름이 이어질 경우 고시원이 최소한의 인간다운 삶조차 보장받기 어려운 ‘원룸 아닌 원룸’으로 변질될 가능성도 우려하고 있다. 권대중 한성대 경제부동산학과 석좌교수는 “오히려 삶의 질을 높일 수 있는 좋은 주거 환경을 만들어줘야지, 무작정 주거용으로 바꿔서는 안 된다”라며 “화재 안전과 직결된 주차장 문제나 복도 폭 대책도 없이 용도 변경을 허용하면 장기적으로 생활 여건이 무너질 수밖에 없다”고 했다.

    한편, 국토부는 고시원 건축기준 개정안에 대해 8월 말까지 의견을 수렴하고, 이르면 내년 1월 시행할 예정이다. /kso@chosun.com
    이전 기사 다음 기사
    기사 목록 맨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