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26.07.29 06:00
코로나·전쟁 따른 자재값 폭등에도 추가 공사비 청구 기각
공사비 상승 위험 시공사 몫…민간 발주처와 갈등 확산 전망
[땅집고] 코로나19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원자재값과 인건비가 폭등했더라도, 물가 변동에 따른 공사비 조정을 배제하기로 계약했다면 발주처에 추가 공사비를 청구할 수 없다는 법원 판단이 나왔다. 법원이 이른바 ‘물가변동배제특약’의 효력을 인정하면서 향후 공사비 급등 책임을 둘러싼 시공사와 민간 발주처 간 분쟁의 기준점이 될 전망이다. 건설업계에서는 원가가 아무리 올라도 특약이 우선한다는 판결이 잇따를 경우 코로나19 이후 쌓여온 추가 공사비 갈등에 다시 불이 붙을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공사비 급등을 이유로 KT에 추가 공사대금을 요구한 쌍용건설은 1심에서 패소했다. 법원은 물가와 환율이 변하더라도 계약금액을 조정하지 않기로 한 특약의 효력을 인정하고 쌍용건설의 청구를 기각했다.
☞지금 단기임대 방 등록하면 수수료0원에 커피 공짜…빈 방 해결엔 단단홈즈
◇쌍용건설 “원가 급등분 달라”
건설업계에 따르면 법원은 최근 쌍용건설이 KT를 상대로 제기한 공사대금 청구 소송에서 원고의 청구를 기각했다.
이번 소송은 쌍용건설이 시공한 KT 판교 신사옥의 공사비 증액 문제를 둘러싸고 벌어졌다. 앞서 KT는 2020년 쌍용건설과 경기 성남시 판교 신사옥 건설공사를 약 834억원에 계약했다. 이후 설계 변경 등을 반영하면서 계약금액은 약 879억원으로 늘었다.
그러나 공사가 진행되는 동안 코로나19 확산과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등이 겹치면서 철근과 시멘트 등 주요 건설 자재 가격과 인건비가 급등했다. 쌍용건설은 당초 계약 당시 예상하기 어려웠던 수준으로 공사원가가 올랐다며 KT에 142억9000만원의 추가 공사비 지급을 요구했다.
KT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양측이 체결한 공사계약에는 물가나 환율이 변동하더라도 계약금액을 조정하지 않는다는 내용의 특약이 포함돼 있다는 이유에서다.
쌍용건설은 급격한 물가 상승으로 계약 당시 예정했던 공사비를 크게 웃도는 비용이 발생한 만큼 발주처가 일부를 부담해야 한다는 취지로 소송을 제기했다. 반면 KT는 계약서에 공사비 조정 배제 조항이 명시돼 있어 추가 지급 의무가 없다고 맞섰다.
◇법원 “공사비 폭등해도 계약은 계약”…특약 효력 인정
법원은 KT 측 주장을 받아들였다. 코로나19와 전쟁으로 공사비가 큰 폭으로 올랐다는 사정만으로 양측이 합의한 계약 조건을 변경하기 어렵다고 판단한 것으로 전해졌다. 물가 상승 위험을 시공사가 부담하도록 정한 특약도 유효하다고 봤다.
이번 판결은 원자잿값과 인건비 급등으로 공사비 갈등을 겪고 있는 건설업계에 적지 않은 영향을 줄 전망이다. 물가 변동에 따른 계약금액 조정을 제한하거나 배제한 특약이 있는 경우, 시공사가 예상하지 못한 원가 상승분을 발주처에 청구하기 쉽지 않다는 점을 재확인했기 때문이다.
건설업계에서는 코로나19 이후 자재 가격과 인건비가 급등하면서 민간 공사를 중심으로 공사비 증액 분쟁이 잇따랐다. 시공사들은 계약 체결 당시 예측하기 어려웠던 이례적인 원가 상승이 발생한 만큼 공사비를 현실화해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반면 발주처들은 물가 변동 위험까지 고려해 계약금액을 정했고, 공사비 조정 배제 특약에도 합의한 만큼 추가 비용을 부담할 수 없다는 입장을 보여왔다.
◇공사비 급등 위험 시공사 몫으로…민간 공사 갈등 불붙나
특히 이번 사건처럼 물가 변동에 따른 계약금액 조정을 명시적으로 배제한 계약에서는 시공사가 예상하지 못한 원가 상승을 이유로 추가 공사비를 인정받기 쉽지 않을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이에 따라 건설사들이 앞으로 도급계약을 체결할 때 물가 연동 조건이나 원자재 가격 급등에 따른 공사비 조정 기준, 예외 사유를 계약서에 보다 구체적으로 반영하려는 움직임도 커질 것으로 보인다.
다만 같은 KT 발주 공사라도 설계 변경 등이 추가 공사비 발생의 원인이 된 경우에는 법원의 판단이 달랐다. 앞서 GS건설이 KT를 상대로 제기한 공사비 증액 소송에서 재판부는 GS건설의 청구를 일부 받아들여, 청구액 98억4378만원 가운데 76억7127만원과 지연이자를 KT가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소송비용도 GS건설이 30%, KT가 70%를 부담하도록 했다. 이사건은 단순한 물가 상승이 아니라 설계 변경에 따른 추가 공사비가 쟁점이었다는 점에서 이번 쌍용건설 사건과 차이가 있다.
이번 판결로 물가변동배제특약이 있는 민간 공사에서는 공사비 폭등 위험을 사실상 시공사가 떠안을 가능성이 커졌다. 특히 공사 기간이 긴 대형 민간 사업은 계약 체결 이후 원자재값과 인건비가 급변할 수 있는 만큼, 특약의 적용 범위와 설계 변경·공기 연장 등 예외 사유를 둘러싼 건설사와 발주 기업 간 소송이 이어질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쌍용건설은 판결문을 검토한 뒤 향후 대응 방향을 정한다는 입장이다. 쌍용건설 관계자는 “항소 여부는 아직 결정되지 않았다”고 했다. /mjbae@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