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26.07.27 09:13 | 수정 : 2026.07.27 09:27
[기고]국민 모두가 잔금 열사가 될 수는 없다| 최민섭 서울벤처대학원대학교 부동산학과 교수
[땅집고]최근 대통령 주재 부동산 정책 국민 대토론회의 이른바 '잔금열사' 사건은 현재 대한민국 부동산 정책이 안고 있는 난맥상과 구조적 문제점을 극명하게 보여줬다. 국민 대토론회에서 수원의 한 신축 아파트 입주 예정자가 마이크를 잡았다. 2년 전 실거주 목적으로 분양받았으나, 정부의 갑작스러운 가계대출 총량 규제로 인해 잔금대출이 완전히 막혀 길거리에 나앉을 위기에 처했다는 호소였다. 정책의 목적이 투기 억제라 할지라도, 이미 계약을 마치고 입주를 기다리는 선의의 실수요자까지 가계대출 한도라는 규제에 묶여 피해를 입는 현장의 생생한 목소리였다.
이 대통령이 "이미 확정된 계약인데 사후에 정책을 변경해 피해를 주면 어쩌느냐"며 금융위원장에게 현장 점검을 지시하자, 단 하루 만에 해당 단지의 집단 잔금대출 재개 소식이 전해졌다. 입주민들은 환호했고 온라인에서는 해당 참가자를 '잔금열사', '팰다르크'라 부르며 유머 섞인 밈으로 환호했다. 그러나 행정적 원칙과 기준에 따라 움직여야 할 부동산 금융 정책이 '대통령의 즉흥적 지시'에 의해 고무줄처럼 풀리는 진풍경은 씁쓸한 뒷맛을 남겼다.
대통령 앞에서 직접 마이크를 잡아 사연이 공론화된 단지는 구제받았지만, 반대로 카메라 밖에서 조용히 고통받는 수많은 다른 아파트 수분양자들은 어떻게 되었을까? 정확한 기준 없이 여론과 통치권자의 기분에 따라 정책 적용 여부가 달라지는 '핀셋 구제'는 행정의 형평성을 심각하게 훼손한다. 이는 "떼를 쓰거나 대통령 눈에 띄어야만 해결된다"는 악성 시그널을 시장에 줄 수 있다.
이번 사태의 근본 원인은 은행별 가계대출 총량을 일괄적으로 틀어막은 촘촘하지 않은 대출 규제에 있다. 투기적 수요를 차단하겠다며 금융권의 총량을 기계적으로 억제하자, 은행들은 손쉬운 잔금대출과 실수요자 대출부터 옥죄었다. 2년 전 정상적으로 계약을 체결하고 실거주를 준비해 온 선량한 국민이 '잠재적 투기꾼'이자 ‘정부 부채 관리의 희생양'으로 내몰린 셈이다.
최근 이 대통령은 분당 아파트 매도 과정에서 잔금을 사적인 대여로 매수인에게 직접 대여해 주고 근저당 17.7억원을 설정하는 이른바 '셀러 파이낸싱(매도자 금융)'을 활용하였다. 서민들이 총량 규제와 꽉 막힌 주택담보대출에 갇혀 잔금을 치르지 못해 사지에 내몰릴 때, 정작 부동산 정책의 총사령탑인 대통령이 사적 계약으로 규제를 우회해 잔금을 처리한 모순된 장면은 극명한 대조를 이룬다. 이는 국민에게 허탈감과 상실감을 주었다. 타인에게 강요하는 잣대가 본인에게는 적용되지 않는 듯 보일 때 정책의 권위는 추락한다.
또한 토론자 선정 과정에서도 대표성의 문제가 보인다. 토론회 당시 일부 참석자 및 전문가들은 "부동산 구매는 100% 투기" 라거나 "보유세는 몸에 좋은 쓴 약" 같은 발언들은 편향되고 왜곡된 시장 인식을 보여줬다. 내 집 한 채를 마련해 안정적인 주거를 영위하려는 기본적 욕구마저 '투기'로 치부하는 이분법적 도덕관이 존재하는 한, 실수요자를 배려하는 정교한 정책은 나올 수 없다. 정책 노선의 변경에 대한 배경 설명과 설득과정이 부족했다. 마치 정책의 목표를 미리 정해 놓은 다음 이를 정당화하기 위한 수단으로 토론회를 한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부동산과 금융 정책에서 중요한 점은 정책의 신뢰성과 예측가능성이다. 거대한 자금이 수년간 묶이는 주택 거래에서 소급 적용 방식의 규제나 갑작스러운 한도 축소는 반복되지 않아야 한다. 사후에 정책을 바꾸고, 문제가 생기면 대통령 지시로 일시 예외를 두는 방식은 정책 당국에 대한 국민의 신뢰를 뿌리째 흔들 수 있다. 지금 필요한 것은 '대통령의 일회성 시혜'가 아니라, 법과 제도에 기반한 상세한 경과 규정의 체계화이다. 시장의 수급 불균형을 무시한 채 규제 일변도로 눌러놓은 마치 압력밥솥과 같은 지금의 부동산 정책은 언젠가 더 큰 가격 폭등으로 분출될 위험을 안고 있다.
국민이 자신의 정당한 재산권을 행사하고 내 집 입주를 위해 대통령 앞에서 마이크를 잡고 '열사'가 되어야만 할까? 정부는 이번 '잔금열사' 사건이 일회성 보여주기식이 아니라, 규제 과속과 즉흥적 행정이 낳은 부동산 정책의 심각한 경고음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시장 자율성과 예측 가능성을 존중하고 실수요자의 주거 사다리를 보장하는 촘촘하고 꼼꼼한 부동산 정책 설계만이 ‘제2의 잔금 열사’를 만들지 않는 유일한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