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26.07.23 06:00
[HD현대 중대재해] ① 정기선 회장 취임후 '중대재해' 속출
HD현대중공업 조선소 근로자 사망 "사고 방지 기본 의무 묵살"
정 회장 "중대재해 제로" 선언 후 사망사고 잇따라
[땅집고] 정기선 HD현대 회장이 지난해 회장으로 승진한 뒤 1년도 채 되지 않아 계열사에서 올해 들어서만 네번째 사망사고가 발생했다. 37년만에 오너 경영을 부활한 정 회장이 취임 직후 '안전이 브랜드가 되는 회사'를 선언했는데, 오히려 '중대재해가 브랜드가 되는 회사'라는 오명을 쓸 판이다. 정 회장이 '중대재해 제로'를 선언한 이후 잇따른 사망 사고가 발생하며 회사의 총체적인 안전 관리 능력 부실이 도마에 올랐다는 지적도 나온다.
지난 18일 HD현대중공업 울산조선소에서 협력업체 근로자가 곤돌라와 상부 발판 사이에 끼어 숨지는 사고가 발생했다. 사고를 당한 근로자는 협력업체 소속 20대 우즈베키스탄 국적 외국인이다. 이 근로자는 액화천연가스(LNG) 운반선 화물창 내부에서 곤돌라에 탑승해 사상작업(울퉁불퉁한 용접부 등을 그라인더로 갈아내는 작업)을 하던 중 곤돌라와 발판 사이에 끼인 상태로 발견돼 의식불명 상태로 병원에 이송됐으나 끝내 숨졌다.
☞'평생 수수료0원' 8월 말까지500실 한정! 지금 단기임대 방 등록하기
전국금속노동조합 현대중공업지부는 회사가 사고 방지를 위한 기본적인 의무를 지키지 않아 사고가 발생했다고 주장했다. 노조 측은 "사고 곤돌라에는 이번에 발생한 사고를 막기 위한 과상승 방지장치가 갖춰져 있으나 장치가 작동하지 않는 위치에 발판이 설치돼 있었다"며 "발판 추가 설치시 위험성을 평가해 과상승 방지장치를 재조정하거나 곤돌라의 위치를 수정했어야 하는 의무를 묵살한 것"이라고 밝혔다.
HD현대 계열사에서는 이 사고를 포함해 올해 들어서만 벌써 네 번째 중대재해로 사망자가 발생했다. 지난 4월 HD현대중공업 울산조선소에서는 잠수함 정비 작업 중 화재가 발생해 작업자 1명이 숨졌다. 이어 6월에는 HD현대삼호에서 선박 계류 작업 중 근로자 1명이 튕겨져 나온 밧줄에 맞아 사망했다. 이어 이달 9일에는 HD현대엠앤에스 사업장에서 판계장 천장크레인 정비 작업을 하던 근로자 1명이 추락해 목숨을 잃었다.
◇정기선 회장 ‘중대재해 제로’ 선언이 부메랑으로
눈여겨 볼 점은 HD현대그룹이 오너 3세 경영체제로 전환한지 1년도 채 되지 않아 연달아 사망사고가 발생했다는 것이다. 정기선 HD현대 회장은 2009년 현대중공업에 입사한 지 16년 만인 지난해 10월 회장직에 올랐다. 이로써 HD현대의 오너 경영 체제가 37년 만에 부활했다.
정 회장은 취임 직후 "중대재해 제로"를 선언했다. 지난해 12월 경기 성남시 HD현대 글로벌R&D센터에서 열린 'HD현대 세이프티 포럼'에서 "사업장 내 안전은 사회적 약속이나 규범의 차원이 아닌 기업의 생존을 결정짓는 필수 조건"이라며 "작은 징후라도 놓치지 않고 중대재해 제로 사업장을 만들겠다"고 말했다.
정 회장은 이 자리에서 "HD현대그룹은 중공업 위주 그룹이라서 위험에 더 노출되기 쉽다"면서 "HD현대중공업은 안전한 사업장 구축을 위해 더 세이프케어(중대재해를 원천 차단하기 위해 새로운 안전보건 경영체계)를 실시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자리에서 회사는 안전 비전인 ‘모두가 안전한 작업장, 안전이 브랜드가 되는 회사’를 공표했다. 중점 추진 방안으로 위험 관리체계를 구축하고, 조직의 안전 문화 수준을 향상시키고, 빅데이터 및 AI(인공지능)를 활용해 안전 문제를 예측하고 실시간 대응한다고 했다. 5년 간 총 3조5000억원 규모의 안전 예산을 투입해 선진 안전 시스템 구축을 위한 재원으로 활용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오너 회장이 직접 “중대재해 제로” “안전이 브랜드가 되는 회사”라고 밝힌 직후라고는 믿기 어려울 정도로 연달아 후진국 형 사망 사고가 잇따라 발생하면서 회사는 당황하는 분위기다. 정 회장이 ‘세이프티 포럼’에서 했던 말들 한마디 한마디가 이제는 회사의 총체적인 안전관리 능력 부족을 드러내는 꼴이 됐기 때문이다.
또한 회사가 도입한다는 안전 경영 체계가 결국 안전 책임을 현장 근로자 개인에게 떠넘기는 것이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HD현대중공업은 지난 1일 사내 안전 수칙을 개정해 회사가 정한 '절대수칙'을 위반한 근로자가 안전점검회의 시간에 동료들 앞에서 자신이 어긴 수칙이나 상황, 심리 상태를 직접 발표하게 하는 제도를 도입했다. HD현대중공업 노조(금속노조 현대중공업지부)는 "조선업 특성상 업무 형태가 다양하고 위험이 상존하는 현장 구조는 외면한 채, 노동자 스스로 실수를 대중 앞에서 고백하게 함으로써 재해 원인을 개인 탓으로 돌리려 한다"고 비판했다. /sh0293@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