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26.07.21 07:42
[은퇴 도시 탐구] (3) 英 런던 '오리엔스 첼시'
돌봄 기능보다 커뮤니티 활성화
가구 등 고령자 고려한 맞춤 설계
[땅집고] 영국 런던의 대표적 부촌(富村)인 첼시 중심부. 명품 부티크와 미슐랭 레스토랑이 들어선 킹스로드 옆 주택가에 지상 5층 규모 한 동짜리 맨션(고급 아파트)이 눈에 들어온다. 총 56가구로 2021년 문을 연 영국 최고의 하이엔드 시니어 타운 ‘오리엔스 첼시(Auriens Chelsea)’다. 입주민 리즈 그리섬씨는 “(이곳은) 마치 천국 같다”고 했다.
오리엔스 첼시는 흔히 떠올리는 요양원이나 병원과는 거리가 멀다. 외관부터 다르다. 좌우 대칭이 특징인 영국 정통 조지안 스타일에 수제벽돌로 마감해 절제되고 고풍스런 느낌이 물씬 묻어난다. 주변 고급 저택들과 잘 어우러진다. 마치 상류층 전용 프라이빗 멤버십 클럽처럼 보인다. 내부도 마찬가지다. 병원 특유의 냄새도, 휠체어와 의료기기도 보이지 않는다. 대신 와인바와 영화관, 스파, 수영장, 파인다이닝 레스토랑으로 채워져 있다. 호텔식 서비스와 24시간 전문 의료 케어도 제공한다.
☞상가·오피스는 끝났다, 시니어 주거 개발이 유일한 골든타임
오리엔스 첼시는 가구당 분양가격이 최소 275만파운드(약 55억원)에 월 이용료만 1만8000파운드(약 3650만원)에 달한다. 그런데 공실이 거의 없다. 입주하려면 대기자 명단에 이름을 올려야 한다. 순서가 와도 까다로운 재정심사를 통과해야 입주할 수 있다. 영국 언론들이 오리엔스 첼시에 대해 ‘노후 생활의 패러다임을 바꾼 최고의 실버타운’이라고 평가하는 이유가 뭘까.
◇ “요양원 아닌 고급 사교클럽”
오리엔스 첼시 자리에는 원래 서민용 공공 요양원이 있었다. 디벨로퍼인 오리엔스가 2016년 이를 사들여 프리미엄 시니어타운으로 개발한 것이다. 당시 오리엔스는 ‘럭셔리 호텔의 서비스, 스위스 메디컬 클리닉 수준의 케어, 프라이빗 사교클럽의 스타일을 결합하자’는 비전을 내걸고 사업을 시작했다.
실제로 오리엔스 첼시는 기존 실버타운 이미지를 완전히 뒤집었다. 돌봄·의료 기능보다 커뮤니티가 핵심이다. 입주민들은 저녁이면 레스토랑과 바에 모여 와인과 공연을 즐기고 사업, 예술, 여행 이야기를 나눈다. 정기적으로 발레 공연과 피아노 리사이틀, 재즈 콘서트, 와인 테이스팅 행사도 열린다. 한 70대 입주민은 “배우자를 먼저 보내고 가장 힘들었던 게 건강보다 외로움이었다”면서 “여기에서 새 친구를 사귀며 삶의 활력을 되찾았다”고 했다. 입주민 대부분은 은퇴한 기업인과 금융인, 예술가, 전문직 출신이다.
시설 수준도 입이 떡 벌어진다. 건물은 가운데가 뻥 뚫린 ‘ㅁ’자형으로 1층에 큰 정원을 둬 사계절 경치를 즐길 수 있다. 지하에는 15m 길이 수영장과 전문 물리치료센터, 스파, 사우나가 들어서 있다. 영화관과 와인 셀러도 갖췄다. 지상 1층 레스토랑 컬포즈(Culfords)에서는 런던 유명 식당 출신 셰프들이 계절 식재료를 활용한 파인 다이닝을 제공한다.
서비스 역시 5성급 호텔 수준이다. 24시간 컨시어지가 상주하며 청소와 세탁은 물론 차량 예약, 공연 티켓 예매, 레스토랑 예약까지 해준다. 헨리 럼비 오리엔스 첼시 영업담당 이사는 “직원 대부분이 5성급 호텔에서 근무했다”면서 “입주민이 요청하기 전에 필요로 하는 서비스를 지원한다”고 했다.
◇보이지 않는 배려가 경쟁력
오리엔스 첼시의 진짜 경쟁력은 시설 자체보다 보이지 않는 배려에 있다. 바로 인체공학적 무장애 설계다. 복도와 거실의 가구 높이와 손잡이 위치, 욕실 구조, 주방 수납장까지 모두 고령자의 신체 조건을 세심하게 고려해 디자인했다. 욕실 세면대 역시 휠체어가 들어갈 수 있지만 겉보기엔 세련된 고급 호텔 욕실처럼 보인다. 낙상 사고 위험을 줄이기 위한 설계가 최고급 인테리어 속에 자연스럽게 녹아 있다.
영국 왕실의 돌봄을 주로 담당하는 ‘드레이코트 너싱 앤 케어’와 연계해 24시간 간호와 건강관리도 가능하다. 다만 의료진이 일상생활을 과도하게 간섭하지 않는다. 입주민에게 스마트워치와 펜던트를 제공해 위급 상황을 실시간으로 파악할 수 있다.
주변 주민들도 오리엔스 첼시를 기피시설이 아닌 ‘고급 랜드마크’로 받아들인다. 외관부터 아름답게 지어져 동네의 미관과 품격을 오히려 높였다는 것. 입주민 역시 거동 불편한 노인이 아니라 동네 상권을 살려주는 좋은 이웃이라며 환영한다. 매일 바로 앞 킹스로드 레스토랑과 카페에서 돈을 쓰는 재력있는 은퇴자들이기 때문이다.
유선종 건국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요즘 시니어는 자산과 건강을 바탕으로 자신의 라이프스타일을 유지할 수 있는 주거 공간을 원한다”며 “시니어에게 실버타운은 사회적 네트워킹을 이어가는 커뮤니티 거점 역할을 해야 한다”고 했다. /hongg@chosun.com
땅집고가 초고령화 시대에 대응한 비즈니스 전문가 양성을 위해 ‘시니어 주거 및 케어시설 개발 전문가 과정 8기’ 수강생을 모집한다. 지난 7기까지 현직 케어용품 회사 CEO와 요양원 원장, 대형 병원장, 제약회사 임원, 의사, 시행사 오너, 건설회사 임원 등 200여명이 수강했다. 수강료는 290만원이며, 땅집고M 홈페이지(zipgobiz.com)에서 신청하면 된다.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