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26.07.17 06:00
[땅집고] 대한민국 부동산 시장에서 최고의 호재로 꼽히는 ‘지하철’이 노선별 입지와 배후수요에 따라 전혀 다른 성적표를 받아들고 있다. 1990년대 후반 정부의 수도권 교통 대책으로 함께 밑그림이 그려진 신분당선과 신안산선. 똑같이 민자 사업 방식으로 추진되며 큰 기대를 모았지만, 현재 두 노선의 운명은 극명하게 엇갈렸다.
◇ '양질의 일자리' vs '출퇴근 베드타운'… 배후수요가 가른 체급 차이
두 노선의 성패를 가른 본질은 ‘얼마나 많은 사람이, 상시로 타는가’에 있다.
신분당선은 강남 오피스타운을 시작으로 양재, 판교 테크노밸리, 광교신도시 등 대한민국에서 가장 양질의 대기업 일자리가 밀집된 지역을 촘촘히 관통한다. 직장인들의 출퇴근 수요뿐만 아니라, 낮이든 주말이든 상시 유동인구가 넘쳐나는 독보적인 입지다. 탄탄한 수익성이 보장되다 보니 인근 역세권 아파트값은 최근 5년간 평균 30.2%(KB부동산 기준) 올랐고, 광교중앙역 인근 아파트 호가는 20억 원을 훌쩍 넘겼다.
반면 신안산선은 안산·시흥에서 여의도 업무지구로 이어진다는 상징성은 있지만, 노선 상당 구간이 배후 주거지의 출퇴근 수요에만 기댄 구조다. 낮 시간대의 상시 유동인구를 끌어들일 인프라가 턱없이 부족한 탓에, 민간 건설사 입장에서는 24시간 안정적인 수요를 확신하기 어렵다. 과거 기대를 모았던 화성 송산그린시티 유니버셜 스튜디오 계획이 무산된 이후, 신세계그룹이 새 사업자로 나서 4조 6000억 원을 투입해 '화성 국제테마파크(스타베이시티)' 개발을 추진 중이다. 하지만 이 역시 착공이 계속 지연되면서 낮 시간대 유동인구를 붙잡아둘 대형 배후 인프라는 여전히 부족한 실정이다.
◇ 공사비 37% 폭등… '돈 안 되는' 노선부터 줄이탈
이처럼 자생적 수요 창출이 불확실한 상황에서, 시간이 지날수록 가파르게 치솟는 공사비는 불에 기름을 붓는 격이 됐다. 실제로 올해 4월 기준 건설공사비지수는 136.88까지 치솟으며 4년여 만에 공사비 부담이 약 37% 폭등했다.
정부 재정 사업과 달리 금액이 고정되는 민간투자(민자) 철도 사업의 특성상, 공사비 리스크를 고스란히 떠안아야 하는 민간 건설사들은 줄줄이 손을 떼고 있다. 서울 서부권 숙원인 서부선 경전철 역시 대형 건설사들이 컨소시엄에서 빠져나간 후 새 사업자를 찾지 못해 표류 중이다.
표찬 싸부원 대표는 “건설공사비지수가 30% 이상 오르면서 기존 1조 3000억~1조4000억원 수준의 공사비로는 도저히 사업을 진행할 수 없는 상황이 됐다”며 “돈이 안 되니 참여자들이 하나씩 떠나가고, 열차 운영 수익마저 미지수라 새 참여자를 구하기도 어렵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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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 대표는 또한 “현재 민자 철도를 하는 회사들은 대부분 건설사들인데 이들은 재건축·재개발을 하기에도 바쁜 상황”이라며 “정부 재정 사업은 설계 변경을 통해 공사비를 올려 받을 수 있지만, 민자 사업은 금액과 기간을 정해놓기 때문에 건설사들이 무리하게 인원을 투입할 이유가 없다”고 덧붙였다. 과거 적자를 세금으로 메워주던 최소운영수입보장(MRG) 제도마저 2009년 폐지되면서 민간의 리스크는 더욱 커졌다.
◇ 결국 본질은 입지와 사업성… 깊어지는 ‘동고서저’ 격차
철도 전문가들은 결국 두 노선의 성패를 가른 본질은 ‘배후 수요’와 ‘사업성’이라고 입을 모은다.
홍콩이나 일본 등 해외의 경우, 민간이 역 주변 상권을 통째로 개발하고 복합 역사를 운영할 수 있도록 해 운임 외의 임대료 수익으로 수익성을 보충한다. 하지만 한국은 특혜 시비와 여론의 반발로 이 같은 수익 모델을 허용하기 어렵다.
결국 민간 기업이 ‘돈이 되는 확실한 곳’인 강남·남부권만 찾으면서, 수도권의 ‘동고서저(東高西低)’ 교통 인프라 격차는 갈수록 벌어지고 있다. 사업성과 균형 발전이라는 간극을 좁히지 못하는 한, 서남부권 주민들의 교통 고통은 당분간 지속될 전망이다. /herim5709@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