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26.07.16 06:00
[땅집고] 넷플릭스 드라마 ‘삼체’의 도입부는 충격적이다. 1966년 중국 문화대혁명 당시 칭화대의 저명한 물리학과 교수가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 등을 가르쳤다는 이유로 광기 어린 홍위병에게 둘려 싸여 인민재판을 받는 내용이다. 과학을 이념의 잣대로 재단하는 홍위병들의 비판에도 물리학자는 학문적 신념을 꺾지 않았고 결국 군중이 보는 앞에서 잔혹하게 구타당해 사망한다.
대중의 광기를 이용해 정해진 결론을 유도하는 판결을 흔히 인민재판, 마녀사냥이라고 부른다. 현대 민주주의은 대중의 광기와 마녀사냥을 막는 과학과 사법적 시스템의 장착을 의미한다. 현대적 재판은 전문적 법률지식을 가진 법관, 변호사, 검사에 의해서 이뤄진다. 현대가 전근대 사회와 구분되는 것은 법과 제도, 전문가 집단에 의한 국정 운영이다. 황제 말 한마디로 나라가 좌우되는 것이 아니라 법과 제도, 전문가 집단에 의해 시스템적으로 국정이 운영된다.
그런데 21세기 한국의 부동산 정책은 유독 인민재판, 마녀사냥. 황제적 독단이 횡횡한다. 거기에 단골로 등장하는 희생양이 다주택자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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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주택자는 어떻게 인민재판을 당하는가
김대중 노무현 정부를 거치면서 다주택자들은 그에 합당한 세금이 부과됐다. 다주택자에 대한 규제 그물과 주택시장 양극화에 의해 더 이상 다주택은 재테크 수단이 되지 않는다. ‘똘똘한 한 채’는 재테크의 상식이 됐다. 재테크 전문가들에게 물어보면 “지금 다주택은 재테크를 거꾸로 하는 바보들이다. 돈을 버는 것이 아니라 망하는 지름길”이라는 대답이 돌와온다.
세상이 이미 경천동지할 정도로 변했는데도 정치권은 여전히 ‘88년도 노래’를 부르며 집값 상승의 책임을 다주택자들에게 돌리고 있다. 일종의 마녀사냥, 희생양 찾기, 인민재판인 이유를 따져 보자.
‘최근 5년간 다주택자 1000명이 6조1000억으로 주택 쇼핑으로 4만2000채를 구매했다’, ‘최다 주택구매자는 5년 동안 혼자 매수금액만 1157억원이고, 793건 매수’했다.
국회의원들은 여전히 이런 류의 국정 감사 보도 자료를 내놓으며 다주택자들이 집값을 올리고 있다며 목소리를 높인다. 그러나 한 번이라도 자료를 들여다 보면 얼마나 엉터리인지가 드러난다. 다주택자 1000명이 사들인 주택의 평균가격은 1억4500만원에 불과하다. 사실상 원룸형 다세대-다가구 주택이다. 전세가격이 집값보다 비싼 경우도 많다. 다주택으로 돈을 버는 주택투기꾼이 아니라 월세 임대사업자이거나 이른바 갭투자로 초저가 주택을 사들인 전세 사기꾼일 가능성이 높다. 이들은 집값을 올리는 것이 아니라 전세사기를 치는 범죄자일 가능성이 더 높다. 국회의원들은 여전히 망상의 자료를 바탕으로 망상의 주장을 펼치고 있다.
◇가짜 통계만 믿고 마녀 사냥에 나선 문재인 대통령
이런 식의 가짜 통계에 넘어간 대통령이 문재인 대통령이다. 당시 다주택자가 집을 싹쓸이 쇼핑해서 집값 올린다는 엉터리 자료를 맹신하고 다주택자 규제를 가했지만, 결과는 전세가격 폭등, 집값 폭등이라는 재앙이었다. 빌라 등 저렴한 주택은 시세가 잘오르지 않아 매매수요가 거의 없다. 이 때문에 노후 월세 수입을 노리는 임대사업자들의 시장이다. 집값을 잡기 위해서는 다주택자를 퇴출시켜야 한다는 문재인 대통령의 구상은 월세 임대시장을 붕괴시키는 도화선이 됐고 전세사기극으로 이어졌다.
이런 식의 마녀사냥에 최근 대통령비서실장까지 가세했다. 강훈식 대통령비서실장이 최근 언론과의 인터뷰가 ‘연립주택 300채 종부세 면제, 분노할 일’이라는 제목으로 보도됐다. 그는 “예를 들어 연립주택 300채를 가진 사람이 세금이 없다. 연간 수십억원씩 납부해야 할 종합부동산세를 모두 면제받고 있는데, 우리가 그런 건 모른다. 재산세도 대부분 면제된다”며 “엄청 분노해야 하는 거 아닌가”라고 말했다고 한겨레신문은 보도했다.
◇임대주택사업자에 분노하는 강훈식 비서실장
강훈식 비서실장이 분노한 사람은 연립주택 300채를 등록한 임대사업자이다. 강 비서실장은 임대사업자에 대한 세제혜택을 부동산 투기꾼에 대한 특혜라는 식의 인식을 갖고 있는 듯하다.
임대사업자에 대한 종부세 면제혜택은 엄격하게 의무를 이행하는데 대한 보상이다. 임대료 통제에 대한 혜택이다. 재계약이나 새로운 세입자와 계약할 때 기존 임대료의 5% 이내로만 올릴 수 있다. 이 때문에 몇 년 지난 임대사업자의 매물은 거의 시세의 절반수준까지 떨어진다. 종합부동산 면제, 양도세 면제라는 혜택을 임대사업자가 누리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세입자가 임대료 인하의 혜택을 누린다. 선진국에서 채택한 임대료 보조정책과 같은 효과가 발생한다.임대주택의 천국이라는 독일 등 선진국은 ‘다주택자=임대주택공급자’라는 인식에 바탕을 둔 정책을 펼친다.
공산국가, 싱가포르 등 토지가 국유화된 나라외에는 대체로 자가보유율이 70%를 넘지 않는다. 나머지 30%는 임대주택에서 산다. 임대주택을 정부가 모두 책임지는 나라는 없다. 다주택자들이 임대주택을 공급한다. 최근 전세대란이 확산될 조짐을 보이는 것도 ‘다주택자=임대주택 공급자’라는 주택시장의 법칙을 무시한 결과이다.
◇토론회보다 반성회…역대 집권 1년차 서울 아파트 가격 폭등 1위 정부
이재명 대통령이 주택문제와 관련 23일 '부동산 국민 대토론회'를 개최한다. 14일부터 16일까지 국토부, 금융위, 재경부가 각각 공급, 금융, 세제를 주제로 전문가와 국민 의견을 수렴한다. 이후 23일에는 대통령이 직접 참석하는 부동산 국민 대토론회가 열린다. 토론회에는 관계 부처 장관과 전문가, 업계 관계자, 일반 국민 등이 참석하며, 정부는 온라인으로 접수된 의견을 토론회와 정책 검토 과정에 반영할 방침이다.
한국의 부동산 정책이 춤을 춘 것은 토론이 부족해서 국민의 의견수렴이 모자라서도 아니다. 이미 국내외에서 검증된 정책 대신 하루아침에 주택문제를 해결하겠다는 망상에 빠진 사이비 전문가들의 엉터리 처방전을 사용했기 때문이다. 이재명 정부 출범이후 서울전역의 아파트 거래를 통제하는 토지거래허가제, 무차별적 대출규제 등은 전세계적으로 유례가 없는 초강경 대책이다. 그런데도 집값 잡기에 실패하고 국민들만 불편하게 했다.
KB부동산 월간주택 시계열을 통해 지난해 5월부터 올해 5월까지 1년간 서울 아파트값 상승률이 14.73%로, 문재인 정부 초반 1년(2017년 4월~2018년 4월) 9.41%, 노무현 정부 1년(2003년 1월~2004년 1월) 11.68%도 앞질렀다.
현 정부에 진짜 필요한 것은 토론회가 아니라 반성회이다. 토론회는 이런 초강경 대책을 발표하기 전에 했어야 한다. 이번 토론회는 정부 정책의 실패에 대한 변명과 희생양 찾기, 마녀사냥으로 전락할 수 있다. 정부가 토론회를 수많은 전문가들이, 외국의 사례가, 과거의 역사에서 드러난 엉터리 정책을 유지하는 명분을 찾는 기회로 활용한다며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의 몫이 될 것이다./ hbcha@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