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26.06.20 06:00
[땅집고] 수도권 임대차 시장에서 아파트 월세 비중이 50%를 넘어서며 서민들의 주거비 부담이 극에 달하고 있다. 아파트 전세 물건은 줄고 월세가 급등하자 빌라와 오피스텔 등 비(非) 아파트 공급을 늘려야 한다는 목소리가 다시 커지는 모양새다.
이에 국토교통부는 최근 도시형생활주택과 오피스텔, 공실 상가 리모델링 등을 활용해 오는 2030년까지 수도권에 비아파트 11만 가구를 공급하겠다는 대책을 내놨다. 재건축·재개발에 비해 단기간에 공급이 가능한 도시형생활주택의 특성을 살려 임대차 시장을 빠르게 안정시키겠다는 취지다.
이에 국토교통부는 최근 도시형생활주택과 오피스텔, 공실 상가 리모델링 등을 활용해 오는 2030년까지 수도권에 비아파트 11만 가구를 공급하겠다는 대책을 내놨다. 재건축·재개발에 비해 단기간에 공급이 가능한 도시형생활주택의 특성을 살려 임대차 시장을 빠르게 안정시키겠다는 취지다.
정부는 세대수와 층수 제한을 완화하고 주차장 설치 기준과 일조권 이격거리 규제도 대폭 낮추기로 했다. 반경 300m 이내에 대체 시설이 있다면 주민공동시설 설치 의무까지 면제된다. 여기에 더해 11년 전 고시원의 편법 주거 시설화를 막기 위해 도입했던 ‘개별실 내 욕조 설치 금지’와 ‘학습 요건 지정’ 등의 규정까지 폐지를 검토 중이다.
☞KB·종근당·KPMG가 숨겨둔 노하우, 시니어 부동산 선점 전략은?
정부는 공급 속도를 높여 시장을 안정시키겠다는 입장이지만, 현장과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시장의 구조적 모순을 간과한 채 과거의 실패를 답습하는 '단기 실적주의 대책'이라는 비판이 쏟아지고 있다.
◇현장은 ‘공급 부족’ 아닌 ‘신뢰 부족’… 안전장치 없는 물량 밀어내기
현재 수도권 비아파트 시장의 본질적인 문제는 단순한 공급 부족이 아니라, 전세사기 이후 누적된 ‘시장의 신뢰 훼손’이다. 대형 전세사기 피해가 집중됐던 인천의 경우, 올해 초 기준 공동주택 미분양 물량이 4000가구를 넘어섰다. 공급 인허가 실적 역시 10년 만에 85% 이상 급감하며 수요와 공급이 동시에 멈춰 선 상태다.
인천 원도심의 최영훈 부티인공인중개사사무소 대표는 “전세사기 이후 임차인들이 집을 고를 때 가장 중요하게 보는 것은 ‘내 보증금을 지킬 수 있는가’ 여부다”라며 “요즘 세대는 10~15년 전과 달리 단순히 싼 집보다 안락함과 생활 만족도를 따지기 때문에 비싸더라도 시설이 잘 갖춰진 곳을 찾는다”고 전했다.
최 대표는 이어 “현재 현장에서는 빌라나 도시형생활주택은 전세를 놓으려고 해도 수요자가 아예 진입을 안 한다”면서 “안전한 집에 대한 신뢰 회복이나 제도적 안전장치 없이 규제만 완화해 공급을 늘린다면 미분양 물량만 가중될 우려가 크다”고 덧붙였다.
이번 대책이 비아파트 시장의 정상적인 작동 원리와 완전히 어긋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빌라나 도시형생활주택은 실수요자가 직접 분양을 받기보다, 다주택 임대사업자가 매수해 전·월세 임대 물량을 시장에 공급하는 구조가 핵심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부는 취득세 중과나 종합부동산세 등 다주택자에 대한 세제 규제를 여전히 묶어두고 있다. 공급 규제는 풀었지만, 정작 시장을 움직일 소비자의 진입은 여론을 의식해 막아둔 셈이다. 여기에 금융권이 비아파트 전체를 위험 자산으로 취급하면서 정상적인 거래조차 대출이 거절당하는 금융 경색도 거래 절벽을 부추기고 있다.
박합수 건국대 부동산대학원 겸임교수는 “이번 대책은 대출 규제 완화와 세제 완화를 병행하지 않으면 공급 효과가 극히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고 꼬집었다. 박 교수는 “오피스텔이나 다세대를 하나만 더 가져도 다주택자로 취급해 세금을 매기는 상황이 개선되지 않는다면, 그 오피스텔을 누가 분양받겠는가”라며 “분양받는 투자자가 있어야 세입자에게 임대를 줄 수 있는 시장 메커니즘을 정부가 간과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11년 전 참사와 규제의 교훈 역주행… ‘도심 슬럼화’ 우려
더 큰 우려는 안전과 주거 기본권의 최저선이 후퇴하면서 과거의 참사와 실패가 되풀이될 수 있다는 점이다. 지난 2015년 130여 명의 사상자를 낸 경기 의정부 도시형생활주택 화재 참사 당시, 피해를 키운 핵심 원인은 느슨하게 적용됐던 일조권 이격 규제였다. 건물 사이의 좁은 틈이 불길이 옆 건물로 옮겨붙는 통로가 됐기 때문이다. 정부는 참사 직후에야 건축물의 이격거리와 외벽 마감 기준을 강화했다.
고시원 역시 마찬가지다. 과거 강남, 용인, 종로 국일고시원 등 대형 화재 참사를 겪으며 스프링클러를 의무화했고, 방별 취사·욕조 설치를 금지해 비주거 시설이 편법 주거시설로 변질되는 것을 차단해 왔다. 주거기본법상 1인 가구 최저주거기준인 14㎡(약 4.2평)에도 못 미치는 한두 평짜리 고시원 방에 욕조까지 허용하면 이는 주거 환경 개선이 아닌 시설 고급화 명분으로 작용해 임대료만 올리는 '프리미엄 고시원' 양극화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권대중 한성대 경제부동산학과 석좌교수는 정부의 무리한 용도 변경 및 실적 채우기식 공급 수치를 비판했다. 권 교수는 과거 정부의 공급 대책을 예로 들며 "지난해 ‘9·7 대책’을 통해 오는 2030년까지 135만 호를 공급하겠다고 발표했는데, 과연 이것이 실현 가능한 양인지 판단해야 한다"고 짚었다. 그의 설명에 따르면 노태우 정부 당시 야심 차게 출발했던 1기 신도시(분당·일산·평촌·중동·산본) 5곳을 모두 합쳐도 29만2000가구에 불과하다. 정부가 제시한 135만 호는 1기 신도시 전체 물량의 4.62배에 달하며, 약 9만8000가구 규모인 분당 신도시와 비교하면 무려 14배에 육박하는 수치다. 권 교수는 "분당의 14배나 되는 이 엄청난 물량을 과연 도심 어디에 공급하겠다는 것인지 의문"이라고 꼬집었다.
또한 정부가 내놓은 상가·오피스 주거용 리모델링 대책에 대해서도 “오히려 삶의 질을 높일 수 있는 좋은 주거 환경을 만들어줘야지, 무작정 주거용으로 바꿔서는 안 된다”라며 “화재 안전과 직결된 주차장 문제나 복도 폭 대책도 없이 용도 변경을 허용하면 장기적으로 생활 여건이 무너질 수밖에 없다”고 경고했다./0629aa@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