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26.06.17 06:00
[땅집고] “이노션, 현대차 계열사 맞습니까? 주거권 박탈 사옥 건설이 이노션의 진정한 사회적 책임입니까?”
서울에서 가장 유동인구가 많은 지역 중 한 곳인 강남역 일대. 대로변 왕복 10차선 서초대로를 따라 3분 정도 걷다 이면도로로 들어서자마자 공사 펜스로 둘러싸인 널찍한 부지와 함께, 현대차그룹 계열 광고대행사인 이노션을 규탄하는 현수막 3건을 외벽에 주렁주렁 달고 있는 한 아파트가 보인다. 현수막 색깔을 노란색, 빨간색, 파란색 등 강렬한 원색 위주로 제작해 지나가는 사람들의 눈길을 잡아 끈다. 대체 이 단지에 무슨 일이 일어난 걸까.
◇강남 시티뷰 누리던 아파트인데…거실창 코 앞에 19층 사옥 생긴다니
문제의 아파트는 서울 서초구 서초동에 입주한 ‘현대성우’. 최고 23층 높이에 총 138가구 규모 주상복합아파트로 2002년 입주했다. 한 동짜리 나홀로 단지지만 지하철 2호선과 신분당선이 지나는 강남역까지 걸어서 5분이 채 걸리지 않는 초역세권 아파트라 입지는 최상급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주택형은 전용 133~244㎡ 대형 위주로만 구성하는데, 주력인 161㎡(61평)의 경우 과거 부동산 호황기였던 2021년 23억원에 팔리면서 역대 최고가를 찍기도 했다.
하지만 현대차그룹 계열 광고대행사인 이노션이 이 단지 거실창 쪽으로 맞닿은 부지에 최고 19층 신사옥을 건설한다는 소식이 알려지면서 날벼락이 떨어졌다. 층수로만 보면 아파트 높이보다 낮지만, 통상 주거시설보다 업무시설 층고를 더 높게 짓는 점을 고려하면 사실상 입주민들이 거실창을 통해 누리던 ‘강남 시티뷰’가 사라지게 돼서다.
이노션은 2023년 12월 2036.6㎡(약 617평) 규모인 해당 부지를 약 1900억원에 매입했다. 이 과정에서 금융권으로부터 1000억원을 차입한 것으로 알려졌다. 당초 이 부지는 PIA서초동PFV가 오피스텔 건립을 목적으로 2021년 7월 인수했던 곳이다. 하지만 2022년 하반기 들어 부동산 경기가 침체하면서 오피스텔 분양 흥행을 점치기 어려운 상황이 되자, 마침 신사옥 건립을 위해 땅을 찾고 있던 이노션에 매각을 결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서초구 고시 건축계획에 따르면 이노션 신사옥은 지하 9층~지상 19층, 연면적 3만3501.31㎡ 규모다. 정림건축 산하로 첨단·미래전략부문 건축을 담당하는 모빌리티BU가 설계를 맡았고, 시공은 KCC건설이 담당한다. 지난해 11월 건축 허가를 받아 착공에 돌입했다. 현재 흙막이 공사 중인데, 앞으로 ▲2026년 10월 지하 골조 공사 ▲2027년 9월 기초 타설 및 지상층 골조 공사 ▲2028년 5월 커튼월 마감 등 단계를 밟을 예정이다. 2029년 6월 준공이 목표다.
◇상업지역 주상복합아파트라 일조·조망권 보장 못받아
올해 들어 이노션 신사옥 건축이 본격화하자 ‘현대성우’ 입주민들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아파트와 신사옥 간 거리가 20m를 넘지 않을 만큼 가까워, 앞으로 모든 가구마다 거실창 일조량이 크게 줄어들 가능성이 크다. 더 나아가 신사옥 건물 내부에서 모은 탁한 공기를 배출하는 환기구가 아파트 정면 방향으로 설치되는 점을 고려하는 앞으로 입주민들이 거실창을 여는 일조차 힘들어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입주민들은 아파트 외벽에 ‘일조·조망·통품·소음 침해 설계, 이노션은 현대차 계열사 맞습니까?”라는 등 항의 문구를 적힌 현수막을 내걸고 항의하는 목소리를 내고 있다. 최근 강남권 아파트마다 가격 상승세가 가파르지만, ‘현대성우’ 161㎡는 2024년 7월 19억2000만원에서 올해 5월 17억15000만원으로 되레 집값이 떨어지는 상황도 발생했다.
다만 이노션 측은 지금까지 공식적인 입장을 밝히지 않은 것으로 전해진다. 업계 전문가들은 “건축법상 문제 없는 행위라 별 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입을 모은다.
현대성우와 이노션 신사옥은 모두 용도상 상업지역 땅에 들어선다. 현행 건축법은 상업지역에선 옆 부지와 최소 50cm 간격만 띄우면 얼마든지 새 건물을 지을 수 있도록 허용하고 있다. 따라서 현대성우가 실질적으로 주거 용도로 쓰이고 있긴 하지만 일반 아파트와 달리 주거지역에 짓는 건물이 아니기 때문에, 입주민들이 일조권이나 조망권을 침해당하더라도 법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방법이 뚜렷하지 않다는 설명이다.
하루 아침에 조망권을 잃게 된 현대성우 입주민 신세를 접한 네티즌들을 “입지 자체는 강남 한복판인데 창문이 회사 건물로 꽉 막히다니 답답하겠다”, “이래서 주상복합아파트를 매수할 때는 인근에 개발 계획이 잡힐 만한 부지와 맞닿아있는지 여부를 잘 확인해야 하는 것”이라는 등 반응을 보이고 있다. /leejin0506@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