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26.06.16 06:00
납세자의 반란이 바꾼 미국의 주택 보유세
캘리포니아 주택매입시점의 가격기준으로 보유세 부과
대선에도 영향…감세 내세운 후보 당선
캘리포니아 주택매입시점의 가격기준으로 보유세 부과
대선에도 영향…감세 내세운 후보 당선
[땅집고] “집값 상승으로 인한 미실현 이익에 세금을 매겨, 평생 살던 집에서 노인들이 쫓겨나는 것은 반인륜적이다.”, “정부는 약탈자이다. 세금을 올려 정부 덩치만 키우고 있다”
보유세 인상, 장특공제 축소를 검토하고 있는 이재명 정부의 이야기가 아니다. 하준경 청와대 경제성장 수석이 보유세 인상을 통해 집값 문제를 해결한 모범국가로 상찬했던 미국 이야기이다. 미국에서도 ‘진보 정치운동’의 상징지역인 캘리포니아에서 1978년 울려 퍼진 조세 저항의 메시지이다. 하 수석은 “미국처럼 보유세를 올려야 한국사회의 빈부 격차를 해소하고 성장동력을 확보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캘리포니아 사례를 놓고 보면 하 수석의 보유세 담론은 미국에 대한 콤플렉스, 오해의 소산일 뿐이다. 지나치게 가파른 보유세 인상은 조세저항을 초래하고 대통령선거에도 영향을 미쳤다.
1970년대 후반, 베트남 전쟁 직후 미국의 인플레이션과 함께 캘리포니아의 집값이 폭등했다. 당시 캘리포니아는 집값이 오르면 자산가치를 재평가해서 2.6~ 3%를 매년 보유세를 내야 했다. 집값이 치솟으면서 주민들의 보유세 부담이 통제 불능 수준으로 덩달아 치솟았다. 주택보유세의 가장 큰 문제점은 미실현 이익이라는 점이다. 집값이 올랐다고 하지만 거기서 소득이 발생하지 않는다. 고정 수입으로 살아가던 은퇴 노년층이 세금을 못 이겨 집을 팔고 쫓겨나는 사례도 빈발했다. 집값이 비싸서가 아니라 세금이 비싸서 못살겠다는 비명이 터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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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값 폭등에 덩달아 치솟는 주택 보유세에 주민 저항 운동
1970년대 베트남 전쟁 종전 전후와 심각한 인플레이션이 맞물리면서, 캘리포니아 주요 대도시들은 집값은 매년 20~30%씩 급등했다. 1970년대 초반에 교외지역 중산층 주택가격이 약 2만 5000달러에서 1978년에는 8만 ~10만 달러로 폭등했다. 장부상 가격 상승이었지만, 집값 상승에 따라 보유세 년 750달러~900달러 정도 내던 보유세가 갑자기 3000달러~3600달러로 급등했다. 은퇴자 1년 연금에 해당하는 돈이었다.
이에 분노한 주민들이 들고 일어났다. 1977년에는 캘리포니아 각 지역의 집값을 평가하는 감정평가원 건물로 넥타이를 맨 평범한 중산층과 노인들이 몰려들었다. 그들은 "집에서 쫓아내지 말라", "세금 때문에 굶어 죽겠다", "정부는 합법적인 강도인가"라는 팻말을 들고 있었다.
곳곳에서 보유세 고지서 화형식이 벌어졌다. 과거 미국 독립 전쟁의 도화선이 되었던 '보스턴 차 사건'에서 영국 정부의 차(Tea) 세금에 반대해 차 상자를 바다에 던졌던 것처럼, 캘리포니아 주민들은 자신의 세금 고지서를 불태우며 정부의 과도한 과세권에 정면으로 도전했다.
◇예측 가능한 주택 보유세로 입법
'현대판 보스턴 차 사건'으로 불리는 저항운동은 1978년 주민 직접 입법(주민발의)인 '주민발의 13호(Prop 13)'로 결실을 맺었다. 핵심적인 내용은 주택 보유세율을 매입 가격의 최대 1% 이내로 제한하고 연간 보유세 인상률을 물가상승률을 반영해 최대 2%까지만 제한하는 내용이다. 보유세의 과표를 구입시점에 고정시켜 자신이 부담할 보유세를 미리 알수 있게 하는 것이 입법 취지이다. 매매(소유권 변경) 또는 신축 시에만 현 시장가로 재평가했다. 주세를 도입하거나 세율을 올리려면 주 의회 3분의 2 이상의 동의를 얻도록 규정했다.
이런 법이 캘리포니아주 의회를 통과할 수 있었던 것은 주택보유세가 지방자치단체의 운영경비로 충당되기 때문이다. 한국과 달리, 주택보유세는 지방자치단체의 세수이다. 주택보유세는 교육, 경찰, 인프라 정비 비용으로 충당된다. 교육 여건이 좋은 지역의 보유세가 비싸다.
당시 캘리포니아의 조세저항운동은 미국 전역으로 확산한 '납세자의 반란(Taxpayers' Revolt)'의 시발점이 됐다. "소득이 없는 미실현 자산 증가에 과도한 세금을 매기는 것이 정당한가"라는 세금의 본질적인 질문을 던졌다. 캘리포니아는 이 법이후 부족한 세수를 메우기 위해 다른 세금(소득세, 판매세)을 올리는 한편, 보유세 규정을 보완하는 법안들을 연이어 통과시켰다. 2021년 주민발의 19호 (Prop 19)를 시행했는데, 부모의 집을 상속받더라도 자녀가 그 집에 직접 실거주하지 않거나, 집값이 일정 수준(상속 당시 가치에서 100만 달러 이상 상승) 이상 올랐다면 현재 시장 가치로 재평가되어 재산세를 올렸다
◇대통령 교체의 기폭제, 보유세 인상 반대 투쟁
캘리포니아의 납세자 반란 운동은 매사추세츠주, 미시간주, 플로리다주,오리건주 등으로 번졌다. 플로리다주는 거주용 주택의 경우, 과세 평가액의 연간 상승률을 3%와 인플레이션율 중 낮은 쪽으로 제한한다. 캘리포니아처럼 구입시점에 과표를 확정하지 않더라도 과표의 무제한적 상승을 막는 제도를 채택한 것이다. 텍사스 역시 실거주 주택에 대해 연간 평가 가치 인상률을 최대 10%로 제한하는 상한선을 두고 있다. 뉴욕의 경우, 지방정부가 올해 거둔 총 재산세 수입에서 내년에 늘릴 수 있는 상한선을 '2% 또는 물가상승률 중 낮은 금액'으로 제한한다. 최종 과세 금액은 은퇴자 감면, 1주택자 감면, 등의 혜택을 받는다.
후버 연구소에 따르면 캘니포니아의 조세저항 운동이 성공하면서 2년 만에 43개 주에서 재산세 감면 또는 제한 조치를 시행했고, 15개 주에서는 소득세율을 인하했으며, 10개 주에서는 주 소득세를 물가상승률에 연동시켰다. 캘리포니아에서 시작된 높은 세금에 대한 광범위한 대중적 반발은 1980년 대규모 감세 정책을 추진한 공화당 소속 로널드 레이건이 진보 성향의 민주당 지미 카터 대통령을 누르는데 일조했다.
레이건 대통령의 레이거노믹스(Reaganomics)는 세금 감면, 규제 완화, 정부 지출 축소를 골자로 하는 '작은 정부'를 목표로 내세웠다. 전통적으로 정부의 복지 지출을 지지하던 블루칼라 노동자층과 중산층 백인 표심이 세금 폭탄 앞에서는 보수주의적 감세론으로 돌아섰다. 레이건은 세금폭탄론을 내세워 민주당의 콘크리트 지지층을 뚫고 들어가는데 성공했다. 전세계적으로 세금을 늘리는 정책으로 재선에 성공한 대통령은 찾기 어렵다. 한국도 노무현, 문재인 정부에서 주택 가격을 잡는다는 명분으로 주택 보유세를 올렸으나 차기 대선에서 야당에 정권을 내줬다.
최근에는 맘다니 뉴욕시장이 부동산 소유자를 대상으로 한 9.5% 재산세 인상안을 철회했다. 맘다니 시장은 2월 뉴욕시의 추정 120억달러 예산 부족을 줄이기 위한 최후의 수단으로 재산세 9.5% 인상안을 처음 제시했다. 이 방안은 37억달러의 세수를 확보할 것으로 예상됐다. 그러나 뉴욕시 주택 소유자와 부동산업계의 반발이 커지면서 일방적 인상을 포기했다. 재산세 인상의 반대논리는 연금이나 고정 소득으로 살아가는 노년층 주택 소유자들에게 집 팔고 이사가라는 압박과 다름없다는 비판이 쏟아졌다. 보유세 인상의 임대료에 전가돼 세입자(렌트)에게 고스란히 전가될 것이라는 주장도 나왔다. /hbcha@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