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26.05.08 06:00
“폐업합니다” 중견ㆍ중소부터 직격탄… "종전돼도 공사비 인상 이어질 듯"
[땅집고] 중동전쟁 장기화에 따른 원자재 가격 폭등과 수급난이 국내 건설 경기를 벼랑 끝으로 몰아넣고 있다. 자금줄이 막힌 중소 건설사들은 고금리와 공사비 상승의 이중고를 견디지 못하고 줄파산 위기에 직면했으며, 일부 시공능력평가 순위 100위 내 중견사들도 무너지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올 1~4월 폐업 신고 공고만 1424건…“아스팔트 재고 바닥” 공사 중단 속출
국토교통부 건설산업지식정보시스템에 올라온 올 1~4월 건설사 폐업 신고 공고는 1424건이다. 작년 같은 기간 1230건보다 증가한 수치다. 특히 자금 동원력이 취약하고 하도급 비중이 높은 하도급 업체인 전문공사업체의 폐업이 1196건으로 전체의 대부분을 차지한다.
대형건설사는 자금력과 사업 구조 다변화를 바탕으로 건설 경기 침체와 전쟁 여파에 따른 손실을 일부 흡수할 여력이 있지만, 중견이나 중소건설사는 즉각적인 타격을 받는 구조다.
업계의 위기는 중소건설사를 넘어 중견사로까지 번지고 있다. 시공능력평가 97위인 유탑건설은 최근 법원의 회생절차 폐지 결정으로 파산 수순에 들어갔으며, 해광건설도 지난달 파산 선고를 받았다. 이외에도 한국건설, 남양건설, 영무토건, 삼일건설 등이 줄줄이 회생 절차를 밟거나 신청 중이다.
◇ 아스콘·단열재 가격 폭등… 부산 도로 공사 20곳 '멈춤'
중동발 원자재 수급난은 이미 일부 건설현장을 멈춰세웠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4월 기준 아스콘 원료인 아스팔트 공급량은 전년 대비 70% 수준으로 급감했으며, 가격은 최근 두 달 사이 20~30% 급등했다. 실제로 부산 일대에서는 아스팔트 재고가 바닥나 도로 공사 20여 곳이 중단되는 사태가 벌어졌다.
다른 자재들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건물 외벽에 쓰이는 단열재(EPS 등)는 원료 재고가 평시의 50% 수준으로 급감하며 가격이 최대 40%나 인상됐다. 접착제의 경우 생산량은 70~80%대에 머물고 있지만, 가격은 전년 대비 30~50% 폭등하며 자재 중 가장 높은 인상 폭을 기록했다.
레미콘 혼화제는 가격이 최대 30% 상승했으며, 플라스틱 창호(PVC)와 실란트 등도 생산 제한이나 유통 단계의 가격 인상 압박을 받고 있다. 다행히 공사비 영향이 큰 철근, 골재, 시멘트는 직접적인 수급 차질은 없는 것으로 조사됐으나, 철근 단가가 약 8% 인상되는 등 생산 원가 상승에 따른 압박은 가중되고 있다.
공포가 확산하자 조달청은 이날 해명자료를 통해 “아스콘 수급 안정화 대책을 마련해 긴급 시행에 들어갔으며, 정부는 제조업계의 애로사항을 발굴해 생산 원가 부담을 낮추는 데 집중하고 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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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망은 암울… "3高 현상에 공사비 분쟁 잇따를 것"
건설업계가 느끼는 체감 경기는 최악 수준이다. 한국건설산업연구원에 따르면 3월 건설경기실사지수(CBSI)는 38.1로 전월 대비 8.2p 하락했다. 연구원은 다음 달 전망치 역시 36.3으로 제시하며 업황 개선 가능성이 희박하다고 내다봤다.
현재 그나마 건설업계에서 희망적인 건 대형 건설사 주가 정도다. 전후 재건 기대감으로 인해 대형 건설사는 주가라도 급등하고 있으나, 중견ㆍ중소건설사는 상장도 한 곳이 많지 않고 재건사업 참여도 쉽지 않다.
전문가들은 중동전쟁이 종식되더라도 고물가·고환율·고유가라는 ‘3고(高) 현상’으로 인해 공사비 상승 압박이 장기간 이어질 것으로 보고 있다. 이은형 대한건설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수입 타일 등 자재 결제 시 사용되는 달러 환율이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고, 호르무즈 해협 통행료 등 부대 비용 상승 요인이 산적해 있다”며 “종전으로 물동량이 일부 회복되더라도 유가가 즉각 하락하거나 과거 수준의 공사비를 회복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어 이 위원은 “하도급 비중이 높은 전문건설업체들이 먼저 타격을 입으면서 민간 공사 현장을 중심으로 공사비 증액을 둘러싼 분쟁이 잇따를 가능성이 크다”고 경고했다. / pkram@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