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26.04.29 06:00
‘런베뮤’가 쏘아 올린 북촌 상권 성공 공식
기업 매각 노리는 중·저가 브랜드 진입
핵심 상권은 평당 최고 2억 거래
기업 매각 노리는 중·저가 브랜드 진입
핵심 상권은 평당 최고 2억 거래
[땅집고] 27일 오후 1시쯤 찾은 서울 종로구 북촌 한옥마을. 디퓨저와 핸드크림을 주력으로 판매하는 ‘헤트라스’ 안국점 매장에서는 제품의 향과 가격을 묻는 관광객들을 향한 중국어와 영어 응대가 끊이지 않았다. 관광객들은 시향을 마친 제품을 수십 개씩 쇼핑백에 쓸어 담으며 면세 혜택을 문의했다. 디퓨저는 2만5800원, 핸드크림은 9800원대로 저렴한 데다 대량 구매 시 추가 할인이 적용돼 선물용으로 인기가 높다. 부피가 작고 휴대가 간편하다는 점도 지갑을 열게 한 요인이다.
이 매장이 외국인 관광객의 필수 코스로 자리 잡은 데는 북촌이라는 ‘입지 효과’가 크게 작용했다. 헤트라스 안국점은 초반 브랜딩 과정에서 베이커리 브랜드 ‘런던베이글뮤지엄’ 1호점이 북촌에 문을 연 이후 쏟아져 들어온 유동 인구의 수혜를 톡톡히 입었다. 매장과 불과 65m 떨어진 런던베이글뮤지엄 앞에는 늘 긴 대기 줄이 형성되는데, 순서를 기다리던 외국인들이 시간을 보내기 위해 헤트라스를 찾았다가 구매로 이어지는 흐름이 반복되며 자연스럽게 매출이 붙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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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베뮤가 쏘아 올린 공…디퓨저 브랜드도 1540억에 기업 매각 성공
이후 헤트라스는 중국 SNS 플랫폼 ‘샤오홍슈’와 ‘틱톡’에서 입소문을 타며 중화권 관광객 사이에서 탄탄한 인지도를 키웠다. 헤트라스 매장 관계자는 “중화권 관광객은 사전에 브랜드를 알고 와서 대량 구매해 가는 경우가 많고, 서양권 관광객은 경복궁과 창덕궁을 거쳐 워크인(Walk-in)으로 방문해 구매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며 “전체 방문객 중 외국인 비중이 많게는 90%에 달한다”고 말했다.
이 같은 유동인구 유입과 오프라인 브랜드 노출은 곧바로 폭발적인 실적 성장과 기업가치 상승으로 이어졌다. 헤트라스는 북촌 입점을 기점으로 성수, 한남, 명동 일대에 플래그십 스토어를 잇달아 열며 외형을 키웠다. 2022년 41억원에 불과했던 매출은 2025년 846억원으로 20배 넘게 뛰었고, 영업이익률도 28% 수준까지 올라섰다.
결국 헤트라스 운영사 쑥쑥컴퍼니는 이달 패션 기업 F&F에 브랜드를 1540억원에 매각했다. 쑥쑥컴퍼니의 지분 70%를 인수하는 방식으로 전체 기업가치는 약 2200억원에 달한다. 창업 3년 만에 이룬 성과다. 업계에서는 이를 두고 “북촌을 기반으로 한 브랜드 노출 확대가 기업가치 상승으로 이어진 전형적인 사례”라고 평가한다. 런던베이글뮤지엄이 약 2300억원대에 브랜드를 매각한 데 이어 또 하나의 대형 ‘엑싯(Exit) 사례’가 나온 셈이다.
주목할 점은 이러한 성공 모델이 북촌 상권의 성격마저 바꾸고 있다는 것이다. 최근 북촌 일대는 단순하게 물건을 파는 상권을 넘어, 외국인 유동인구를 바탕으로 브랜드를 단기간에 키워 기업 매각을 노리는 이른바 ‘엑싯 플랫폼’으로 빠르게 변모하고 있다.
◇ 고가 럭셔리 대신 중저가 제품군 진입 러시
이 같은 흐름을 좇아 북촌에는 브랜드를 키운 뒤 매각까지 염두에 둔 기업들의 진입이 줄을 잇고 있다. 아이웨어 브랜드 ‘블루엘리펀트’, 패션 브랜드 세터의 ‘세터하우스 북촌’, ‘북촌 설화수의 집’, 속옷 브랜드 ‘베리쉬’가 들어섰고, 글로벌 스포츠 브랜드 ‘뉴발란스’에 이어 ‘아디다스’도 가세했다. 르라보, 그랑핸드, 리베르, 탬버린즈, 딥티크 등도 한옥을 활용한 소형 플래그십 스토어로 자리 잡았다.
이들 브랜드의 공통점은 명확하다. 고가의 럭셔리 제품이 아니라, 외국인이 큰 가격 부담 없이 구매할 수 있는 중저가 패션·뷰티 제품군이라는 점이다. 논픽션의 핸드크림과 향수는 2만~10만원대, 블루엘리펀트 선글라스는 4만원대로 가격 진입장벽이 낮다.
이지혜 빌사남공인중개법인 공인중개사는 “성수나 도산공원처럼 임대료가 높은 지역은 명품 브랜드 중심이라 진입이 쉽지 않다”며 “북촌은 내·외국인 수요를 동시에 겨냥한 중저가 브랜드들이 쇼룸 형태로 들어오려는 수요가 꾸준하다”고 말했다.
◇ 성수·도산 잇는 핵심 상권 부상… 매매가 평당 2억 호가
문제는 이 같은 성공 공식이 상권의 몸값을 빠르게 끌어올리고 있다는 점이다. 공실도 자취를 감추고 있다. 한국부동산원이 발표한 상업용 부동산 임대동향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4분기 기준 북촌 지역 공실률은 1.9%로, 전년 동기(6.2%) 대비 크게 낮아졌다.
실제 지하철 3호선 안국역 인근 핵심 상권의 상가 임대료는 2021년 3.3㎡(1평)당 20만원 수준에서 현재 40만원을 넘어서며 두 배 이상 상승했다. ‘북촌 아디다스 헤리티지 스토어’의 경우 전용면적 127㎡(약 38평) 기준 보증금 3억원에 월 임대료 1500만원 수준이다.
매매가격 역시 오름세다. 핵심 입지는 평당 1억7000만~2억원 수준에서 거래된다. 다만 임대료 부담과 매물 품귀 현상이 겹치면서 손바뀜이 활발하지는 않다는 평가다. 소격동의 한 공인중개업소 관계자는 “런던베이글뮤지엄 인기에 힘입어 북촌이 내·외수를 동시에 흡수하는 상권으로 자리 잡으며 선호도는 최고조에 달했지만, 임대료 상승 속도가 워낙 빠르고 전통 상권 특성상 신축 공급이 어려운 환경이라 신규 브랜드 진입 장벽 역시 높아졌다”고 했다. /mjbae@chosun.com